뜨는 해 지는 달
낯선 곳에선 방향 감각이 무뎌진다. 그때는 습관적으로 해와 달이 어디서 떠올라 어디로 저무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산골이다. 마을 뒤는 벽화산이 우뚝하고 들판이 좁은 산골이다. 동구 밖에서 마을로 들어서면 작은 개울 사이 집들이 들어섰다. 고향집 본채는 동향이고 사랑채는 남향이다. 아침이면 동녘 산마루에서 해가 솟아 서녘 산으로 넘어갔다.
성장기 이후 중년은 창원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건령이 제법 되는 남향이다. 이사를 가지 않고 한곳에 오래도록 살다보니 해와 달이 떠오르고 저무는 장소를 잘 알고 있다. 정병산이 비음산이 이어지는 용추계곡과 날개봉 으름이다. 해가 저무는 자리는 천주산을 돌아 무학산 방향에서 사라진다. 여름과 겨울에는 뜨고 지는 지점이 약간 차이가 난다.
내가 올봄 거제로 오기 전 창원에서 두 곳 학교를 거쳤다. 바로 직전 근무한 여학교는 원이대로를 건너 교육단지다. 학교 부지가 넓고 정원이 잘 가꾸어진 남향이었다. 먼저 학교는 집에서 반송공원을 비켜 창원천을 건너 봉곡동 주택가에 위치했다. 학교 건물은 대개 남향인데 거기는 동향이라 볕이 적게 비쳤다. 나는 두 곳 다 걸어서 다녔기에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곳을 잘 안다.
그럼 내가 머무는 거제 연초로 돌아와 보자. 나는 아직 거제 전체 방향 감각을 잘 모른다. 어림짐작으로 섬이 달걀을 옆으로 뉘어 놓은 형국이지 싶다. 그 서쪽이 통영 연안과 닿아 거제대교가 놓여 있다. 나중 그 곁에 신거제대교가 하나 더 생겼다. 동쪽으로 진해만과 가덕도에 침매터널과 연륙교로 거가대교가 뚫렸다. 이제 김해와 부산으로 인적 교류와 물류 이동이 활발해졌다.
내가 살던 창원에서 거제 고현으로 오려면 예전엔 남마산터미널로 가야 했다. 거기서 고성과 통영을 거쳐 고현으로 간다. 이후 거가대교가 놓이기 이전엔 팔용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창대교를 거쳐 고성 통영을 둘러갔다. 지금도 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훨씬 단축 코스가 생겨나 창원대로에서 창원터널을 지나 장유에서 녹산을 거쳐 신항만에서 거가대교를 달린다.
가덕도에서 침매터널과 사장교를 구간 지나면 거제 장목이다. 장목에서 터널을 지나면 송정삼거리다. 왼쪽으로 돌면 옥포이고 곧바로 나아가면 연초이고 고현 시외버스터미널이다. 거제의 행정 중심으로 인구가 가장 밀집해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이 있다. 고현만에 대형 조선소 삼성중공업이 있다. 고현만은 북쪽이고 고현 시가지 남쪽에 계룡산이 우뚝하다.
나는 주말이면 시외버스로 창원과 고현을 오간다. 고현에서 연초로 되돌아 나와 연사에 위치한 원룸으로 간다. 좁은 공간 혼자 살도록 설계된 구조가 원룸 아닌가. 4층 가운데 1층이다 보니 바깥에서 들면 소꿉장난 같은 부엌이고 미닫이문을 밀치면 몸을 눕힐 방과 욕실이 딸렸다. 옷장과 텔레비전 모니터는 달렸다, 남으로 작은 창이 나고 베란다엔 세탁기와 건조대가 설치되었다.
원룸에서 낮이나 주말엔 머물 겨를이 없다. 삼면은 벽이고 남으로 난 문도 창이라기보다 벽 구멍정도다. 새벽이면 조촐한 밥상을 차려 아침을 해결하고 여섯 시 무렵 방을 나선다. 그때는 이제 날이 밝아도 아침 해가 뜨기 전이다. 어둑한 골목을 빠져나가 거제대로를 건너 연초천 둑길을 걸어 학교로 간다. 저녁은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들판을 둘러 날이 저물어 방으로 든다.
원룸 창문이 작기도 했고 워낙 이른 시각 방을 나서 햇살이 든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지 싶다. 연초천 둑길을 걸을 때도 해가 솟지 않은 시각이었다. 일과 중 교실로 향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니 볕을 볼 수 있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시야가 흐렸다. 연초에서 스무날을 보내니 이제 방향 감각을 알게 되었다. 송정삼거리에서 해가 떠 계룡산으로 넘어갔다. 19.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