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저는 써둔 시를 상자 안에 출력해서 쌓아 두기도 하고
책꽂이나 공책에 적어 두기도 했었습니다.
몇 편이나 되는 지도 모르는, 지금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제 첫시집을 묶고 나니 거기에 싣지 못한 시들을 또 정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 시집을 위해 한 걸음 나가는 시도도 되겠지만,
살아온 나날을 정리하는 마음도 있으면서...
오늗도 한 편의 시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다음의 카페에서 건져올려 개인카페에 올리고
여기에도 공유합니다.
엄마의 방
꽃무늬 벽지 황홀한 그 방,
작은 두레반에
엄마는 詩를 차린다
김치 한 보시기에 흰 구름 동동 띄우는 엄마는
詩人처럼 입가의 자잘한 글씨들 쓰윽
지워 버린다.
당새기에 담긴
일곱빛깔 염주알
엮인 줄마다
한 아이의 탯줄인 양
간곡하게 어루만진다.
탕탕탕
외아들이 못질한 액자의 테두리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린 여섯딸아이 옹기 종기 앉은
사철나무 배경의 사진도
바라본다.
다음달이면 또 비워야 할 방,
없는 꽃무늬도 마음으로 그려내는
남의 집 월세방
벗기다만 도라지껍질
퀴퀴한 청국장냄새
묶다 만 부추단 뭉텅이
윗목을 지킨다.
오일장마다 이름난 떡할매 울엄마
하얀 차돌, 가을하늘, 은행잎,옥색우물,단감 ,홍옥, 단풍잎을
손바닥에서 만들어
밤마다 염주알 궁글려서
향그런 나라 하나 만든다.
엄마나라
엄마방엔
천정이 없어 시인처럼
날아갈 날개가 없어
흠뻑 젖은
속적삼 흥건한 엄마의 몸 그대로
집 한채가 되는 것이다.
*15년전쯤이었을까.
일요일이었던가.
나는 구미금오산에서 한 신문사에 주최하는 한글백일장에 참가해서
처음 산문을 쓰려고 생각을 펼치던 중이었다.
남편이 얼른 쓰고 가자며 재촉하는 바람에 산문을 바로 시로 고쳐 쓰게 되었다.
때마침 김천 직지사 인근 식당으로 열두시까지 계추 모임을 가야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7년동안 7남매를 위해 기도한 다음
각기 다른 빛깔의 염주를 자녀들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쓰려던 것이
이렇게 짧은 시로 만든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장원이란 큰 상을 타게 되었다.
** 시와 더 친하다 싶은데 평소 어디 응모를 하면 실르 쓰려다가 산문으로 쓰면
상을 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압축의 묘미를 살려야하는 데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어해서 그랬던가.
***
이 때는 예외적으로 산문을 쓰려다가 시를 쓴 것이 상을 탔었다.
****엄마의 방을 정리하러가도 난 늘 시간에 쫓기는 기분으로 대충 정리하곤했는데
며칠 전 엄마의 몸을 누이면 겨우 티비와 밥상과 서럽장의 공간이 전부인
작고작은 어머니의 방을 여섯째딸인 막내동생이 청소를 해서 너무 해말갛게 되었다.
엄마의 방이 시집이고 엄마의 몸이야말로 한 권의 시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
이제 첫시집을 내고 나니 더 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외부의 상에 연연하지 않고 진심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그게 어떤 형식을 취하든 진심에 진실이 우러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