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리(Bruce Lee)

(1940~1973)
"절권도는 우리에게 뒤돌아 볼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길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브루스 리, <절권도의 길> 중에서 -"
"이소룡의 절권도는 과거 무도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단순한 무도가 아니라 오직 싸움에 이기기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소룡이란 홍콩 스타가 우리를 사로잡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내게도 이소룡은 최고의 우상이었다. 우리는 이소룡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땐 그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사나이였다. 그때 꿈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이소룡처럼 되고 싶다는 거였다. 사는 동안, 누구나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겐 1978년이 그런 해였다. - 유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에서"
최근 한국에 온 주성치는 '이소룡은 영원한 나의 영웅이며 영감의 원천'임을 밝힌 바 있다. 홍콩 영화 시장의 붕괴와 지지부진한 할리우드 내 활동 때문인지 유난히 한국을 자주 찾는 성룡 또한 틈만 나면 이소룡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다. 실제로 이소룡의 영화 <용쟁호투>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 성룡에게도 비슷한 질문이 던져지곤 한다. 이소룡과 함께 연기한 경험은 어땠는가? 맞는 장면에서 많이 아팠는지? 성룡의 답변은 다음과 같이 알려지고 있다. "오케이 사인이 난 뒤 이소룡은 나를 포함한 엑스트라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무척 신사적이었고 모든 영화 스탭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맞는 장면에서는...죽을 만치 아팠다."
이소룡은 194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차이나 이민 2세대였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이소룡은 어렸을 때 무술을 익히거나 배운 적이 없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운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대신 이소룡은 4살때부터 중국의 전통 연극, 경극을 배우고 무용에 관심을 가져 홍콩 차차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처음 무술을 가르친 선생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 브루스가 날 찾아와서 '난 차차 챔피언이고 당신은 무술 챔피언이니 서로 가르쳐 주면 좋겠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난 춤을 잘 배우지 못했지만 브루스는 무술을 금방 익혔지요." 이처럼 이소룡을 존경하는 팬들이 꼽는 이유 중 하나는 이소룡이 대단한 노력가라는 사실이다.

이소룡은 무술을 터득한 뒤 할리우드로 진출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형사 역할을 금방 따내 유명해졌지만 영화 주연을 맡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소룡은 백인 스타들의 들러리 노릇을 하는 대신 고향 홍콩으로 돌아가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이때 세워진 회사가 바로 골든 하베스트였다.
당시 홍콩 영화계는 중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권선징악적 무협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5,60년대 중국인들은 무협물에 열광했지만 국제적으로 냉전이 심화되고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언제나 동일한 결말로 끝나버리는 무협 영화에 중국인들은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무협 영화의 초인적 고수들과 도덕 윤리는 관객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대신 고리타분하고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좀더 현대적인 배경과 영웅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소룡은 이와 같은 요구를 타고 스타가 되었다.
그의 첫작품 <당산대형>은 태국에 간 중국인 노동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외국에 나가 고난을 겪는 중국인들의 이야기와 이전 무협영화보다 훨씬 빠르고 사실적인 이소룡의 액션은 중국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이다. 중국 반식민지 시절을 배경으로 한 <정무문>또한 인기를 얻었다.
이소룡이 노린 것은 전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중국인들을 기반으로 영화를 성공시킨 다음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이었는데, 이 전략은 주효했다. 그는 <용쟁호투>와 <맹룡과강>을 할리우드 자본으로 찍고 할리우드 배급망을 통해 유포했다. 그래서 이소룡은 중국인 뿐만이 아니라 서구인 특히 미국인들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부기 나이트>에 보면 남자주인공 방 벽에 커다란 이소룡 사진이 붙어 있는 볼 수 있다)

그래픽으로 재연한 이소룡 캐릭터. 최근 국내에서는 그래픽으로 이소룡을 스크린에 재연해내는 영화가 제작중에 있다.
이소룡에 대해 드는 의문점 한가지는, 만약 그가 미스테리에 싸여 요절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수시로 성룡과 주성치를 비롯한 걸출한 영화인들이 애정을 고백하고, 수천 개의 인터넷 사이트와 팬클럽을 거느릴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죽기 직전 그가 구상한 영화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외로운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시대극이었고 특수하게 디자인한 무기도 구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소룡은 영화 경력을 빨리 끝장낼 뜻이 전혀 없었으며 몇십 년 동안 대중들과 통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현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소룡은 요절함으로서 자신이 목적했던 대중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작성:김연(엄광용 사람의 향기)
첫댓글 돌아간 아버지와 어릴적 무지 많이 본 영화들! 지르는 특유의 기압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어...,
맞어! 오오오~~ 하는. 역시 자신들 특유의 개성을 개발하면 매력 만점이다. 부르스 리 의 아들 부랜던 리 도 앞날이 촉망된 잘생긴 사나이였는데, 의문의 죽음을 당했지. "Crow 2" 촬영중 불사조의 부랜던 리를 총으로 쏘는 장면에서, 누군가 실제로 총알을 재어놓아서, 아까운 나이에, 믿기지않는 죽음을 당했지.
그랬데?? 불행한 부자로구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