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내용물 중 하나인 자아는 꿈속의 커피잔을 보면서 커피잔 이외에 다른 무엇(=아는 자=꿈꾸는 투명한 의식)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즉 꿈속에 있는 나, 커피숍, 친구, 커피잔, 밤하늘, 보름달, 나무, 공원, 산책, 반려견, 귀여움, 중력 법칙, 공간, 시간, 이들은 전부 각자 스스로 있고 그 외 다른 것은 있을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설령 꿈속의 친구가 이 커피잔은 꿈속에 있는 것이라고 알려줄지라도 그냥 하는 말이거나 이론이겠거니 하고 흘려듣기가 쉽지 실제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꿈속)우리가 모두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꿈속)동물들이 여전히 (꿈속)태양, 달, 지구, 탁자, 커피잔을 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꿈에서 깬 우리는, 꿈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체험자인 우리가 꿈에서 죽거나 사라지면 꿈이 깨어지면서 꿈 세상 전체가 일시에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과 꿈속에서의 우격다짐(동물이 여전히 커피잔을 본다는)은 얼토당토않은 바보짓이었음을 잘 알게 됩니다.
이처럼 꿈속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은 낮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에 서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지점에서야말로 전신에 소름이 돋는 대반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꿈에서 현실로 깨어났다고 여기지만 한 번도 깨어난 적이 없다! 하는 사실입니다. 몸은 스스로 꿈꿀 수도 없고 깨어날 수도 없습니다. 몸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몸은 잠자고 꿈꾸고 깨는 주체가 아닙니다. 몸은 잠재워지고 꿈꾸어지고 깨어지는 꿈속의 한 내용물입니다. 오직 투명한 의식만이 스스로 꿈꿀 수 있는 주체입니다.
그렇다면 꿈(잠)에서 깨어나 매일 아침 마주하는 현실은 꿈 깬 현실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일까요. 속지 마십시오. 현실이라는 것은 또 다른 버전의 꿈입니다. 밤의 꿈은 작은 꿈이고 낮의 현실은 큰 꿈입니다.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현실입니다. 꿈은 꿈이라는 현실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꿈입니다. 꿈은 현실이고 현실은 꿈입니다. 전부 같은 말입니다. 매일 아침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꿈에서 현실로의 위치이동이 아니라 작은 꿈에서 큰 꿈으로의 채널변경입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채 장면만 바뀝니다. 이는 꿈속에서 길을 걸어갈 때 실제로 움직이거나 이동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꿈속의 장면만 연속해서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Being : 스크린 위에서 상영되는 영화)
그러므로 사실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잠들거나 꿈꾸거나 깨어나지 않습니다. 몸은 그런 일을 하는 쪽이 아니라 그런 일을 당하는 쪽에 속하며, 현실에서 잠으로, 잠에서 꿈으로, 꿈에서 현실로 장면이 바뀔 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투명한 의식 스스로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의식의 위상전이(위상전이, phase transition)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달의 위상전이와 흡사합니다. 달은 보름달, 반달, 그믐달, 삭(없음), 초승달로 자기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지만, 달 자체는 불변으로 있듯이, 투명한 의식은 스스로 자기 모습을 현실, 꿈, 잠으로 연이어 바꾸지만, 투명한 의식 자체는 변함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따라서 꿈속에 커피잔 하나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곳에 커피잔을 만드는 투명한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커피잔뿐만 아니라 꿈속의 자아, 커피숍, 친구, 밤하늘, 보름달, 나무, 공원, 산책, 반려견, 귀여움, 중력 법칙, 공간,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꿈속의 자아와 세계는 곧 의식이며, 알려지는 모든 것은 곧 아는 자입니다. 꿈속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는 꿈속의 작은 내용물에 불과한 꿈속 자아가 아닙니다. 꿈과 현실은 투명한 의식이 스스로 자기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꿈속에 있는 하얀 커피잔 하나 그것은 바로 투명한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꿈속에 커피잔을 본다는 것은 커피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꿈에서도 여전히 아는 자(투명한 의식)는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출처 : "자유롭게 살고 유쾌하게 죽기", 이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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