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눈물>
“오랜만에 주교님을 뵈니 너무 많이 늙으셨어요. 눈물이 나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많이 늙었어요. 주교님 오래사세요.”
배우 윤여정 씨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김성수 주교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한 듯 옆자리에 앉은 윤형주 씨가 혼잣말을 했습니다.
“주교님 연세가 90이 넘었잖아. 연세에 비해 젊어 보이시는데 뭘...”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님의 서품 60주년과 헌정문집인 <우리 마음의 촌장님> 북 콘서트가 열린 정동 성공회 대성당.
눈물을 닦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윤여정 씨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1967년도 인가요, 주교님은 당시 인천 성당의 신부님이셨어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지요. 쎄시봉 친구들이 주말이면 몰려가 노래도 부르고 사제실에 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웠어요. 적은 월급을 우리 먹는 것 채우는데 모두 쓰셨을 거예요. 그런데도 저희들에게 단 한번도 미사를 참석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주교님에게 진짜 사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김성수 주교님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여정이는 불쌍한 아이에요. 고향이 개성인데 어머니가 딸 셋을 데리고 잠깐 피난 나왔다 돌아가지 못했어요. 당시 아버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얼마나 힘들었을 지 그저 생각만 합니다.
딸 같아서 더 정이 가요.”
이런사연으로 김성수 주교님이 윤여정 씨를 양딸로 삼았는지 모릅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그것도 노래로만 살아갈 수 없었던 시절, 윤여정과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영남은 총각 신부님 사제관을 찾아가 노래부르며 노느라 밤을 꼬박 새우곤했다고 합니다.
젊은 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인연이 지금까지 50년 넘게 이어져 좋은 친구로, 때로는 아버지와 딸로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형주 씨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80년대 즐겨 불렀던 송창식의 <우리들의 이야기>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 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저도 상념에 젖어 <우리들의 이야기>를 추억했습니다.
윤형주 씨 농담처럼
노래 가사속의 긴머리 소녀는
이제 흰머리 할머니가 되었고
긴머리 손녀딸을 두게 되었듯이.
김성수 주교님의 양복소매 솔기가 많이 닳았습니다. 팔꿈치에 가죽을 댄 자켓입니다. 영국 장인어른 (사모님 후리다 여사의 아버지)으로부터 물려받아 55년을 넘게 입으신 옷입니다.
김성수 주교님을 뵐 때 마다 ‘역시 우리 주교님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노자 노덕경에 나오는 <上善若水>가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아마 김성수 주교님의 삶이 욕심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 노자의 사상과 많이 닮았습니다.
살아오면서 존경하고 선한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분이 곁에 계신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평생 겸손과 청빈을 실천하신 김성수 주교님을 뵐 때마다 저도 당신에게 전염돼 조금씩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당신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