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정치화
어제 (11/15) 열린 이재명 민주당대표의 공직선거법 관련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재판부가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는지 궁금해하다가 조선일보에서 제공한 판결문 전문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판결 선고문에는 한성진 부장판사의 고심이 컸을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재판은 오늘날 우리 사법부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건 재판부의 법적 질문은 "김문기와 골프를 쳤느냐"와 "백현동 용도 변경에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느냐"의 사실 여부 규명으로 집약되고, 피고인이 사실에 배치되는 발언을 하였으니 허위사실 공표로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작량감경을 거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상당한 처벌이 합당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직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거짓말을 하면 안되고, 그 내용이 심각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비추어 "허위사실 공표"가 입증되었으니 처벌한다는 형식논리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재판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습니다.
첫째, 이 사건이 선별적 수사와 선별적 기소, 공소권 남용 기소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정치적 맥락을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철저히 정치적 판결이 되어 버렸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의 수사와 기소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 본인과 배우자에 대하여 제기된 다음과 같은 사건 (양평 공흥지구 특혜 의혹, 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특혜 의혹, 대통령 및 배우자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해병대원 채 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 대통령 후보 공직선거법 고발사건)에 대해서는 비수사 또는 불기소로 일관하고 있고, 대통령 배우자 관련 특별검사 임명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별적 수사와 차별적 기소는 우리 헌법의 평등권 위반 사안이며, 우리 법원은 헌법적 정신에 근거하여 검찰의 특정인을 겨냥한 집요한 수사와 기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였어야 합니다.
둘째, 이번 사건은 선거 기간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공직선거법의 규정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엄격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선거기간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여집니다. 공직선거법 제250조는 선거에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에 후보 및 가족 등의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 등·재산·행위·소속단체 등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규제합니다. 이 조항의 목적은 선거 시기에 공식문서 등에 거짓 정보가 제공되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선거기간의 모든 발언을 내용적으로 재단하여 정치적 반대자를 보복하는 장치로 쓰여지게 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법부는 지난 민주화의 과정과 두 차례의 탄핵 심판 등의 민주주의에 대한 시련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균형추의 역할을 해 왔지만, 이번 판결은 그러한 사법부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사법부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리하에 법을 통한 독재권력의 정당화에 기여하는 역할을 했던 것에 비하면,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모두가 공감할 합의를 만드는 데 중요하게 기여해 왔습니다. 사법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대의정치의 순기능에 입각하여 사법정의를 보장하는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별적 기소 또는 불기소와 권한남용적 수사와 기소가 만연한 오늘의 현실에서 사법부가 검찰이 제기하는 모든 사안에 수동적으로 손을 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사법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 큰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번 가을은 사법 정의의 관점에서도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도 매우 어려운 시련의 기간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법원이 사법의 정치화를 피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경종을 울리고 싶습니다.
_백태웅(법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