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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나리~ 잘해!!!"
"신비야 화이팅!!!!!!"
헉헉...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테두리 안에 혼자 남아 있는 나.
그리고 반대 편에 개나리.
진짜 죽일 년, 얍실하게 생겨 가지고 의외로 체력도 쎄고
순발력도 있고 공 던질 때 파워도 장난이 아니다.
진짜 나를 죽여버릴 듯이 무섭게 날아오는 공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내 체력이 먼저 바닥난 상태.
이기는 반은 다음 수업시간에 자유시간이라는 영광이 주어져
절대적으로 우릴 응원하는 반 아이들과
굳이 그거 아니라도 절대 지기 싫은 우리 둘이 붙어서 게임은 끝날 생각을 안 하고
"야... 그냥 포기해!"
공을 들고 있는 신나리 때문에 뒤로 물러나 있는데
잠깐 금을 넘고 들어와 내 엉덜일 발로 걷어차며 포기하라는 서현이년.
"아 죽여버려!!!!!!"
잠깐 돌아 흥분해서 소리치는 사이 얍삽한 개나리가 공을 던졌고..
뒤 늦게 피했지만 그대로 내 발에 와서 꽂힌 공.
그러나 '땅볼'이라는 선생님 말에 얼른 공을 줏어 들어 개나리를 노려보고 있는데
퍼억-
갑자기 날아 온 축구공 하나가 개나리 등을 향해 돌진했고
무방비로 있던 개나리가 맞고 앞으로 넘어지자
"죄송합니다~~~ 미안, 괜찮냐??"
윤사랑이 나를 향해 보일 듯 말듯 살짝 윙크를 하고,
공을 들고 다시 사라진 그 때.
벙쪄 있는 개나리를 향해 공을 던졌는데
이번엔 아예 얼굴로 날아가서 맞더니 쌍코피를 줄줄 흘리는 애.
게임 끝~ 오늘은 개나리 수난시대.
"너 아까 일부러 그랬지?"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고 말하는 젖은 놈의 얼굴을 휴지로 닦아주고 있는데
뒷문을 쾅 소리가 나게 열어 제끼고
아주 흥분한 얼굴로 윤사랑 나오라며 버럭 소릴 지는 개나리.
난 신경 쓰지 않고 세수로 젖은 사랑이 얼굴을 계속 닦아 주었고
사랑이 역시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서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너 아까 뭐야?? 일부러 맞힌거지???"
"그게 뭐 중요해?"
"중요해!! 대답해!!"
"일부러 맞혔어. 왜?"
"그년 때문이야?"
그년이란 말에 고개를 돌려 쳐다봤는데
코 밑에 번져있는 피 때문에... 웃음을 터리고 만 나.
사랑이 놈 얼굴에 묻은 물 닦아내느라 젖어버린 휴지로 닦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넌 뭐야... 왜 웃는데?"
갑자기 자길 보고 웃는 내 모습에 살짝 당황해서 내게 묻는데, 두번째로 빵 터져버린 나.
아직 피가 덜 멈췄는지 한쪽 콧구멍에서 피가 다시 주욱- 새어 나오고 있었다.
웃느라 말도 못하고,
친절한 사랑이 놈이 대신 손으로 개나리의 코를 가리키며
"피나"
"뭐?"
"코피 난다고"
손등으로 코를 한번 문지르더니 걸쭉하게 묻어 나오는 빨간 피에
쪽팔린지 얼굴을 붉히며 화장실로 뛰쳐 나가는 개나리.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저런 추한 모습 보이고 얼마나 창피할까?
갑자기 좀 불쌍해질라 그러네~
*
"이놈의 지지배가 빨래 좀 널으라니까 또 자빠져 자는 거 봐!!!"
학교 끝나고 집에와서 자고 있는 내 엉덩일
사정없이 내려치시는 울 엄마 때문에 번쩍 눈을 뜬 나.
"빨리 빨래 안 널어???"
"아 엄마! 자는데 왜 깨우고 그래 내일 하면 되지!!"
"내일은 무슨 내일이야!! 잘거면 빨래 널고 자!!!"
"이씨 졸려죽겠는데!!!"
자다깨서 기분이 안 좋은 난 신경질 적으로 쿵쿵 걸어서 거실로 나왔고
거실바닥에 대충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빨래를 분리하기 시작해
신호놈의 빨래만 모조리 모아 들고 방문을 벌컥 열자
"미친.. 또 나갔어??"
서현이랑 사귀더니 집에 한번도 일찍 안 들어오는 우리 오라방.
침대 위로 빨래를 홱 집어 던져 버리고 방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앉아 빨래를 개면서 티비를 보는데
어느새 잠은 다 깨고 드라마에 흠뻑 빠져버린 나.
아무리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요즘 감수성이 많이 풍부해진 탓에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런 내 모습에 나조차 감격스러워서
더욱 격하게 질질 짜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리고
"흑흑... 여보세요...."
-......
"흐윽... 왜 말이 없어..."
-너 왜 울어....?
"아파서..."
-아파?
"마음이 너무 아파 사랑아... 흑흑"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장면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코까지 훌쩍 거리며
계속 울어댔고, 자세한 내막은 알리 없는 사랑인 걱정스런 말투로
-집 앞이야... 잠깐 나와 봐
슬리퍼를 대충 직직 끌고 밖으로 나가자 정말로 집 앞에 사랑이가 서 있었고
내가 보자마자 덥썩 안기니 아주 따뜻하게 나를 같이 안아주는 놈.
"마음이 왜 아픈데..."
"죽었어..."
"....누가?"
"혜진이가...."
".....혜진이?"
"응, 유혜진이 죽었어... 어떡해 슬퍼"
"너 설마........ 내 사랑 개똥이에 나오는 그 유혜진 말 하는 건 아니지?"
".......어?? 너도 그 드라마 봐?? 재밌지???"
갑자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놈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정말 어이없다는 듯
"야.... 그만 울지?"
"눈물이 안 멈춰 미쳤나봐"
"죽여버려... 가끔 보면 진짜 제정신 아닌 거 같애."
32.
"거봐.... 내가 싫어할 거라고 했잖아"
"상관없어"
"으휴.."
치훈이 손 실밥 풀으러 병원 가는 길.
학교가 끝나고 둘이 병원 간다는 말에 같이 따라나선 윤사랑씨.
내가 분명히 싫어할 거라고 했는데 상관 없다며 끝까지 따라 온 무대뽀 윤사랑씨.
치훈이는.... 역시 표정이 안 좋다.
"치훈아 같이가~"
저만치 먼저 앞서 걷는 놈을 따라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팔짱을 끼자
옆에서 째려보는 윤사랑 때문에 난 지금 양쪽에 남자를 끼고 걷는 중이다.
둘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
그러나, 절대 빼란 말도 안 하는 정말 귀여운 놈들.
"얘들아, 우리 쫌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냐?"
"우리가 병신이냐?"
두 남자 사이에서 기분이 좋은건 나 뿐인가 보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나만 신이나서 재잘재잘 혼자 떠들어댔고
치훈이가 실밥 풀으러 들어간 사이 둘만 남아서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삐진듯한 사랑인 계속 아무 말이 없었고,
뚱한 표정으로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는 놈의 어깨 위로 머릴 기댔다.
"사랑아"
"왜"
"나 심심해"
"....."
"왜 말이 없어?"
"나 삐졌어"
"바보... 귀엽기는~"
"나 귀엽냐?"
"응, 너 은근 귀여운 짓 잘해"
귀엽다는 내 말에 기분이 좀 풀렸는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놈.
피식... 단순하다 진짜.
머리를 기대고 앉아 눈을 감으니 너무 편안해서 졸음도 밀려 오고
잠깐동안 눈을 감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입술 위로 가볍게 겹쳐지는 입술 하나.
살며시 눈을 뜨니, 실밥을 다 풀었는지 치훈이가 이제 가자고 웃으면서 앞에 서 있었고
흥분한 사랑이가 벌떡 일어나서 붉어진 얼굴로 막 뭐라고 하려길래
"아 진짜... 사이좋게 지내라니까!!"
다시 두 남자를 양쪽으로 끼고 시내로 향하는 길.
내 행동에 울화통이 터지는 듯 사랑인 또 삐진것처럼 표정이 굳어 있었고
치훈이도 뭐 그렇게 썩 좋은 표정은 아니였다.
뭘 할까 한참을 고민하며 뺑뺑 돌기만 하다가 내 눈에 들어 온 건
.
.
"아.... 내가 이 새끼랑 이걸 왜 찍어야 되는데?"
"병신아 나도 존나 싫거든???"
"둘다 시끄러워"
스티커 사진 찍는 데까지 둘을 억지로 끌고 들어오니
들어와서도 찍기 싫다며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막상 찰칵 찰칵 할때는 또 나름 포즈를 취하는 진짜 웃긴 놈들.
정색하고 있다가도, 욕을 하고 있다가도 찍힐 때만 되면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서로 더 잘 나오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 애들.
그러다가 마지막 촬영 때 사랑이가 먼저 내 왼쪽 볼에 뽀뽀를 했고
이제 질세라 내 오른쪽 볼에 뽀뽀하는 치훈이.
고로 난... 양쪽 볼에 뽀뽀 세례를 받으며 마지막장을 장식했다.
이번에도 역시 마음에 드는 건 나 뿐인지 나 혼자만 웃고 있었고
결국 사진은 나 혼자 다 챙기고 가게에서 나왔다.
그런데...
"뭐야~ 칼 맞았다더니 멀쩡하잖아?"
정말 나오자마자, 내가 미쳐 스티커 사진을 가방에 다 챙기기도 전에
이 앞을 지나가던 네놈과 마주쳤고, 비열하게 웃는 놈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랑 치훈이의 얼굴은 싸악 굳어버렸다.
언젠가 나한테 껄떡대다가 치훈이한테 제대로 깨진 적이 있어서
사이가 절대 좋을리 없는 우린 낮짝만 봐도 아주 거북한 사이.
치훈이가 칼 맞은 걸 소문으로 들었는지 꼭 죽기라도 바랬던 사람처럼 약올려대는 놈이다.
"오랜만이다 윤신비?"
"옆에 걘 뭐냐? 양다리야???"
"하여간 얼굴 예쁜 것들은 얼굴 값 한다니까..."
돌아가면서 지들끼리 얘기하는 놈들..
양다리란 말에 둘다 주먹을 꼭 쥐는 치훈이랑 사랑일 달래면서 그냥 가려고 했는데
"그냥 가시게? 그럼 우리가 섭하지~"
"성치훈, 한판 붙어야지~ 아.. 아직 칼 맞아서 안 되나?"
"그런데 어쩌냐... 우린 너 다 날 때까지 기다려 줄 마음이 없는데~"
얍삽한 새끼들.... 아직 상처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 상태로 싸우다간 분명 큰일 날 거 알고 일부러 더 저러는 거다.
평소엔 게임도 안 되는 놈들이 날 제대로 잡은 거지.....
쉴새 없이 떠들어대며 상처부위를 가지고 약올려대는 놈들 때문에
치훈이 주먹엔 점점 힘이 들어가고.
그러다 내가 아차 싶어서 본 왼쪽 주먹에선.... 벌써 피가나고 있었다.
바보.. 진짜 멍청이.
왼손으로 숟가락 하나 제대로 못 잡으면서
주먹을 얼마나 쎄게 쥐었길래, 내가 진짜 너땜에 미쳐...
"성치훈.... 너 그 손 안펴?"
주먹 사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좀 처럼 풀 생각을 안 하는 놈.
엄지손가락이랑 검지손가락 사이 살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깊에 베였어서
주먹을 꽉 지고 있는 지금, 당연히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은 그 상처가 다시 터질 수 밖에..
"치훈아, 제발...."
난 얼른 치훈이의 왼쪽 손을 잡고 억지로 주먹을 피기 시작했고
피가 나는 걸 보고 사랑인 놀란 듯, 하지만 놈들은 재밌다는 듯 더 깐죽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냥 보고만 있던 사랑이가
"니들..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나랑 한판 뜰래?"
"뭐야 이 새낀?"
"넌 빠져 애송이야"
애송이라는 말에 빈정상한 윤사랑씨. 피식 웃더니
"진짜 애송이가 누군지 한번 볼까?"
"뭐래냐 이 병신"
아직 사랑이가 어떤 놈인진 정보가 부족했나 보다.
하긴.. 그렇긴 할꺼야.
놈들은 사랑일 정말 애송이로 생각하는지 계속 비웃었고,
사랑인 나 보고 치훈이를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가란 말을 마지막으로
앞에 있는 놈을 발로 걷어 차면서 먼저 싸움을 걸었다.
잘 싸우는 건 알지만, 혼자 남겨두고 가기 미안해서 선뜻 가지 못하고 서 있는데
그런 나를 향해 걱정하지 말란듯이 예쁘게 웃어주는 멋진 놈.
"가자... 괜히 서있다가 한대 맞지 말고"
놈들처럼 비열한 놈들은 분명히 치훈이놈 배만 노리고 달려들 테니까.
그럼 진짜 곤란하니까.
치훈이도 맘이 편치 않은지 자길 대신해서 싸우고 있는 사랑일 계속 보고 서있길래
또 억지로 질질 끌고 병원으로 왔고.
잠시 후, 실밥 풀은지 한시간도 안 되서 피를 흘리며 다시 온 치훈이를 보고
소릴 버럭 지르시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와
저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있는 나.
치훈이를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사랑이 얼굴.
혼자 싸우고 있는 사랑이 걱정에 마음이 씁쓸한데
어느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니
한대 맞았는지 약간 스크래치가 난 얼굴로 옆에 앉아 웃으면서 날 바라보는 윤사랑.
"....맞았냐??"
"네놈이랑 싸우는데 한대도 안 맞으면 내가 신이게?"
"병신..."
"뭐? 상은 못 줄 망정 병신이라니!?"
"이 병신이 왜 맞고 다녀 짜증나게!!!!!!!!"
괜히 속상해서 버럭 짜증 내는 나를 곧 기분 좋게 빤히 쳐다보다가
웃음을 머금고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
아 왜... 긴장이 되지?
왜...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고 지랄이냐고.
33.
놈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정말 짧은 그 몇초의 시간이 이 순간 만큼은 정말 몇분처럼 느껴졌고
입술에 쪽.. 가볍게 뽀뽀만 하고 다시 멀어지는데 내 표정이 안 좋았나 보다.
풉~ 웃으면서
"실망했어? 뭘 기대한 거야??"
그러게 씨발. 나 뭘 기대한 거야??
아... 나 왜 이래???????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잖아!!!!!
"몰라 병신아, 꺼져"
"아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러실까~"
"귀찮아.. 꺼지라고!"
지금 내 반응이 너무 재밌다는 듯 큭큭대며 날 꼭 끌어안는 놈.
"신비야"
"왜"
"...사랑해"
내 귓가에 대고, 장난기 섞인 말투지만
동시에 아주 진지함이 묻어나는 말투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놈 때문에
또 괜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데.. 날 떼어놓으려는 놈을 더 꽉 끌어 안아 버렸다.
얼굴 빨개진 거 들키면 쪽팔리니까. 그런데
"넌?"
내 마음은 어떠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
사실...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들으면 기분 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어.
어떨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대답 못하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괜찮아, 너 바본 거 진작에 알았으니까"
"죽을래? 너도 모른다고 했었어!"
"지금은 안다는게 중요해~"
"그래.. 너 잘났다!"
"윤신비"
"왜 또?"
"나 그거 해줘"
"뭐?"
"그거..."
"그게 뭔데??"
"...같이 쪽쪽 하는거 있잖아"
같이 쪽쪽 하는 거라니....
"말 똑바로 해 쌍놈아"
"다 알면서 괜히 튕기기는~ 부끄러워?"
"나참... 내가 왜????? 그딴 거 나한텐 껌이거든요!!!!
길가다 아무나 붙잡고 할 수도 있어!!!"
"그럼 나한테 죽지"
내 어깨 위로 두르고 있던 팔을 내려 허리에 두르고
난 여전히 놈의 목을 감싸고, 서로 얼마나 오랫동안 빨아댔을까..
갑자기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드르륵 울려대면서 문자 하나가 왔고
[나 손 다시 꼬매야 되서 오래걸려.. 먼저 가]
.
.
[치훈이 번외]
"다 아물 때까지 절대 조심하세요.
이거 또 터지면 그땐 정말 곤란합니다"
실밥 풀자마자 다시 꼬매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아까 그 새끼들만 안 만났어도 금방 났을텐데..
소독을 하고 찢어진 살을 다시 꼬매고,
아예 움직이지도 말고 조심하라며 빙빙 둘러준 붕대까지...
불편한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오다가
병원 복도에서 둘이 키스 하는 걸 보고 왼쪽 가슴이 아려왔다.
둘이 좋아하는 것쯤... 신비가 윤사랑 좋아하는 것쯤 알고 있었는데도
눈 앞에서 둘이 키스하는 걸 보니, 곧 눈물이라도 쏟아져 나올 만큼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2년 동안 그렇게 좋다고 따라다닐 땐 거들떠도 안 보더니,
윤사랑이.... 그렇게 매력 있나?
"후우..."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한숨을 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서 한참 떨어진 후, 신비한테 거짓말로 문자를 보내고 혼자 걷는데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남자로 태어난 걸 후회할 만큼..
정말 내가 여자였다면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든
신경쓰지 않고 그냥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죽을 힘을 다해 참았다.
차라리 속시원하게 눈물이라도 쏟아내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은데
억지로 참으니 더 미칠 것만 같았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한쪽 팔을 나무에 기대고 나머지 한쪽 팔로
가슴에 손을 대고 서 있으니, 내 상태가 안 좋아 보였는지 지나가던 여자가
"저기.... 괜찮으세요?"
"...아니요....."
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혀 괜찮지가 않다.
너무 아프다고 말 하는 심장 때문에... 너무 솔직한 내 대답에 조금 당황한 여자.
"저기... 그럼 저랑 같이 병원 가실래요?"
"병원 가면... 이거 낫게 해주나요?"
"네...?"
"마음이... 여기가 너무 아픈데.... 병원가면 안 아프게 해줄까요..?"
"....."
"고장난 내 심장... 고쳐준대요...?"
이제야 내가 몸이 아픈게 아니란 걸 아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여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사랑하는 사람 있으면.. 옆에서 지켜보는 걸로 만족하지 마세요.."
"....."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요... 그 사람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맘에 들어 할 때까지 무조건 최선을 다 하세요..."
"...."
"너그러운 척... 차분하게 기다리는 일 같은 거.... 하지 마세요.."
"...."
"그럼....... 지금 저처럼 되요..."
지난 2년 동안 내가 걸어 온 길..
그냥 옆에 있는 걸로 만족하고, 그냥 친구 사이라도 나를 향해 웃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만족하며 살아 왔다.
그래도 남들보단 친한 친구 사이라고..
가까운 친구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야.
지금 보면 우린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런 애매한 사이로 2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빠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랑을 두려워 했던 신비를 아니까,
나만 싫다는 게 아니라, 다른 남자한테도 관심 없던 애니까..
정말 계속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나한테 와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내 실수였고,
그 실수 때문에 이렇게 마음 아픈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픈 건.. 신비 마음이 누굴 향해 있는지 알면서도
그 사람한테 절대 그냥 보내줄 수가 없다는 거...
내가 포기 안 하면, 같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절대 포기가 안 돼.
아마 나 또 내일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너 보면서 웃고 있겠지.
탱탱 부은 눈 보고 니가 놀려대도, 업어달라면 업어주고 안아달라면 안아주고
키스해달라고 하면 키스해주고.... 웃으라면 웃고, 울으라면 울고 또 그러겠지.
니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원망같은 건 안 할 테니까, 한번만 돌아봐줘 윤신비.
곧장 앞만 보고 가지 말고, 항상 니 뒤에 서 있는 나도... 한번만 봐줘.
사랑해..... 이말 질리지가 않아서, 그래서 내가 너무 아프다.
힘들어도 포기 안 하고 기다릴 테니까... 언제라도 한번만 돌아봐주라.
"사랑해 윤신비..... 사랑해... 신비야..........."
34.
"너네 아직도 사귀냐?"
"장난해?"
다음이 체육시간인데 체육복이 없어서 1반까지 체육복을 빌리러 오니
둘이 붙어 앉아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신호와 서현이.
참나, 민서현 진짜 웃겨죽겠네~ 내가 알던 민서현이 아닌 거 같아.
"아주 맨날 붙어 사는구만? 체육복이나 내놔"
"빌리러 온 년이 태도가 그게 뭐야???"
"너 좀 거칠어졌다? 우리 오빠 믿고 까부는 거야?? 빨리 달라고!!! 나 나가야 돼"
"주지마"
"주지말래"
"둘 다 미쳐가지고.... 빨리 헤어져 안 어울려. 존나 안 어울려"
짜증나는 커플을 향해 빨리 헤어지라고 악담을 하고
그냥 교실을 나가려는데, 내 팔을 잡는 치훈이
"왜 그냥 가? 체육복 갖고 가야지"
갑자기 날 질질 끌고 서현이 사물함 앞으로 가더니
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그 안에 대충 쑤셔박혀 있는 체육복을 꺼내 주는데,
우리 오라방 무릎 위에 앉아 멀리서 그냥 지켜보고 있던 서현이가 벌떡 일어나서
"성치훈!! 너 뭐야!!!"
"뭐~"
"왜 니 맘대로 빌려주고 난리냐구!!"
"둘이 짜고 신비 골리면 내가 열받지~"
그러면서 가볍게 내 볼에 뽀뽀하고 얼른 가라는데
이 새끼... 또 눈이 부어 있다.
"야!! 어젠 또 뭐 봤냐???"
"개똥이 재방송"
"아.. 혜진이 죽는 거 봤어? 맞아, 그거 슬펐어! 암튼 난 간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잽싸게 반으로 돌아와
교실에서 대충 체육복을 갈아 입고 운동장으로 나온 나.
이번 시간은 약속대로 자유시간이다.
선생님은 출석 체크만 하고 볼일이 있는지 어딘가 가고 안 보이시고
친한 애들끼리, 끼리끼리 모여 앉아 수다 떨기 바쁜 아이들..
그 와중에 사랑인 내 앞으로 걸어와 쭈욱- 손을 내밀었고,
난 그 손을 잡고 같이 운동장을 걸으며 얘기 하다가 무의식 중에 본 어느 반 창문.
"어?? 치....!! 뭐야???"
분명 창가쪽으로 고갤 빼꼼히 내밀고 있던 치훈이 놈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냥 고갤 홱 돌려버리는 놈.
기분 나쁘게 열려있던 창문까지 괜히 확 닫아버리고 커텐까지 치는 놈이다.
"쟨 왜 공부 안 하고 딴짓이야??"
"공부는 원래 하는 놈이 아니니까.. 근데 넌 하냐?"
"뭐야, 지금 저새끼 편드는 거야????"
"편드는 게 아니라, 그냥 넌 하냐는 거지!! 맨날 잠만 자는 주제에~"
"아... 갑자기 짜증날라 그래"
"짜증내면 죽는다"
한참을 노려보다 갑자기 나를 아주 격하게 끌어안는 사랑이.
"윤신비. 니가 나 사랑 안 하는 건 용서 할 수 있는데,
나 두고 딴 놈 쳐다보는 건 용서 못해"
"뭐래니"
"내 앞에서 딴 놈 편 들지마! 질투 난단 말이야"
"아 진짜.. 편든 거 아니라니까?"
"아무튼"
별것도 아닌 일에 질투를 하는 질투의 화신 윤사랑 어깨 너머로 다시 본 1반 창문.
커텐이 한번 걷어지더니, 1초만에 다시 또 확 쳐지는 커텐.
쟤 지금 뭐해?
"야..... 한눈 팔지말라고"
사랑인, 내가 지 어깨 너머로 계속 1반 창문을 보고 있다는 것도 알았는지
바로 한눈 팔지 말라고 얘기하는데, 진짜... 질투 많다.
그냥 좀 본 걸 가지고 까칠하게.
"근데 윤신비... 너 그거 아냐?"
"뭐?"
"너....."
"아 뭔데, 빨리 말해 답답해"
"바지 거꾸로 입었다"
"아.... 미친.... 그걸 왜 이제 얘기해????"
퍼억-
역시 난 성격도 안 좋고, 손 버릇도 못 된 여자.
"아 왜 때려!!! 누가 바지 꺼꾸로 입으래??????"
괜한 놈한테 화풀이를 하고 있는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계속 실실 쪼개면서 일부터 다 들으란 식으로 아주 큰소리로 얘기하는 놈.
덕분에 내가 바지 뒤집어 입었다고 삽시간에 소문은 퍼지고
하루종일 창파하다고 놀려대는 놈 때문에 화나서 지금은 벙어리 놀이를 하는 중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화가 난 거지.. 절대 삐진게 아니라는거
"신비야 화 풀어~"
"...."
"내가 잘못했어..."
"..."
"심심해...."
처음에 놈이 벙어리 놀이 할 때처럼 아무리 옆에서 말 걸고 귀찮게 해도
계속 무표정으로 눈길 한번 안 주는 나.
점점 속 타는 놈 보면서, 꽤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2교시 체육 시간부터 담임의 종례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까지
나를 달래다가 이제 지쳤는지 책상에 엎드려 누워서
나를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내 팔뚝을 살짝살짝 흔드는 애.
내가 똑같이 옆으로 엎드려 누워 눈이 마주치자
진짜 어린 애처럼 금방 웃어버리는 놈을 보고 가운데를 가방으로 막아 가려버렸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가방을 치워버리고 나랑 다시 눈이 마주치자
묘하게 씨익 웃으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와 입을 내 귓구멍에 대고
"간지럽지...?"
라고 말하는 놈. 저번에 내 반응이 재밌었나 보다.
그때처럼 또 돋아나는 닭살에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리면서 나름 태연한 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에 대고 입김 불 듯이 한숨을 쉬는 변태 새끼.
"하아....윤신비"
"......."
"귀에 혀 집어 넣기 전에 일어나지?"
눈을 꾹 감고,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저 말 한마디에 바로 벌떡 일어나서 놈을 노려보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주 밝게 웃으면서 나를 꽉 끌어 안고는
"처음은 무조건 나여야 돼"
"뭐?"
"피식.. 무슨 말인지 몰라?"
"모르겠는데?"
"진짜 의외로 순진하단 말이야~ 근데 신비야"
"왜?"
"너랑 같이 있음 자꾸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이 하나 있는데,
너무 자주 하면 질릴까봐 많이 참고 있어 나"
"뭔데?"
"...사랑해..."
"....."
"사랑해 윤신비"
첫댓글 혹시...처음.... 깍~~~~~ 다음편도 기대할꼐요 ㅋㅋ
처음 ㅋㅋ 감사합니다~~
다음편기대할꼐요쪽지주세요
넵넵 감사합니다~~~
어흣!!닥살..,ㅋ치훈이.,ㅠ
둘이 좀 닭살이죠 ㅋㅋㅋ 치훈이만 불쌍하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