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더블 LP '화이트 앨범'만을 무려 3400장 넘게 모으는 유별난 컬렉션으로 유물도 나이를 먹으며 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대만계 미국인 컨셉트 예술가 루더퍼드 창이 마흔다섯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지난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인은 지난달 24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누이 다니엘레 창은 여러 달 동안 특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고인은 2013년 맨해튼에 있는 리세스 갤러리에서 전시회 '우리는 화이트 앨범들을 삽니다'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또 페니 동전 1만개를 녹여 구리 덩어리(30kg 무게)로 만들어 붉은색 동전의 값어치를 만방에 선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고인은 장난끼가 넘쳤다. 한 동료와 27분짜리 동영상 '앤디 포에버'를 만들었는데 홍콩 영화 스타 앤디 라우(유덕화)의 영화 속 죽음 장면들을 모아 영화가 공개된 순서대로 편집한 것이었다. 다른 동영상 '데드 에어'(Dead Air, 방송 중 침묵 시간 또는 어색한 침묵)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핵무기와 화학무기 개발 야욕을 질타한 것으로 유명한 2003년 연두교서 연설 가운데 그가 멈칫한 장면, 숨쉬는 장면, 하원의원들의 찬사만 모아 편집했다.
그리고 그는 2004년 NYT 1면 기사를 자르고 붙여(cut and pasted) 모든 텍스트를 알파벳 순서대로 재배치했다. 큰 목소리로 낭독했는데 그 중 일부는 영화 '스타워즈'의 독보적인 캐릭터 요다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누이는 고인에 대해 “집착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수집가였다. 그의 아파트는 너무도 정돈돼 제자리가 아닌 것이 없었다. 뭣 하나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고인이 처음부터 1968년 '화이트 앨범'으로 더 잘 알려진 '비틀스' 수집을 했던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 딱 한 장을 샀는데 몇 년 뒤 두 번째 앨범을 샀다. 그는 두 장이 시간이 흐를수록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 흰색 앨범에 사람들은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적었다. 그는 2017년 크리에이티브 인디펜던트 홈페이지에 “더 많이 얻을수록, 일단 일란성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다른지 더 많이 알게 된다"면서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 난 그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는데 적어도 그것들의 차이점만은 알아볼 수 있길 원했다. 그래서 난 계속해 멈출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창은 2013년 하이퍼앨러직 홈페이지 인터뷰를 통해 “각 장의 앨범은 독특한 나이를 먹으며 지난 반 세기의 유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틀스 멤버들의 고향인 리버풀을 비롯해 여러 도시를 돌며 전시회를 개최하면서도 오디오 컴포넌트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의 '화이트 앨범' 컬렉션은 3417장으로 끝났다. 공장의 프레스 과정에 따라, 또 창의 턴테이블 회전 속도에 따라 완전 다르게 들린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1979년 12월 27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대만 출신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에서 가까운 로스 알토스 힐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 제이슨은 반도체 회사 ASE 테크놀로지 홀딩 창업자였으며모친 칭핑 창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다 은퇴했다. 어릴 적 과일 스티커들을 모아 바인더를 장식하곤 했다. 그는 일생에 걸쳐 야구 방망이, 호텔 주차권, 엽서, 낡은 중국제 확성기, 몇 년치 영수증 등을 모았다. 누이는 오빠에 대해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모든 물건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웨슬리언(Wesleyan) 대학에서 예술가 과정을 밟으면서도 심리학을 전공해 2002년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2년 동안 화가 쑤 빙의 조수로 맨해튼에서 일한 뒤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위해 싱가포르와 베이징에서 일했다.
2008년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4000장 가량의 잉크로 점점이 찍은 초상화들을 알파벳 순서로 재배치해 연감 식으로 편집해 '2008년의 동창생'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발표했다 . 버락 오바마가 그 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94회로 가장 많았고, 그와 경쟁한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74회였다. 2012년 중국 베이징의 화이트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전시됐는데 WSJ는 그의 프로젝트를 “그 해 일어난 이벤트들을 기록하기 때문에 저널의 우선 사항과 사고 과정을 보여주는 창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자신을 공연 예술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2016년 그는 1990년대 전자오락 게임인 테트리스 세계 최고 점수를 얻겠다고 나선 자신의 도전을 트위치 프랫폼에서 라이브스트리밍했다. 그의 목표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보즈니악이 작성한 점수를 뛰어넘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경기 모습을 무려 1700개 이상의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같은 해 일본 도쿄의 갤러리 '컨테이너'에서 전시됐다.
그는 무려 61만 4094점을 얻어 한때 세계 두 번째 득점자로 기록됐다.
고인이 10만개의 페니 동전을 녹여 만든 3차원 모델의 큐브는 지난해 비트코인 원본, 디지털 자산으로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5만 400 달러에 팔렸다. 물론 실물은 고인이 소장하고 있다. 페니 동전들의 디지털 자산은 수천 명의 개인들이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예일 대학 예술학부의 아키 사사모토 교수는 웨슬리언 시절부터 고인의 작업을 지켜봤다면서 고인이 문화 현상과 뉴미디어의 날카로운 관찰자였다고 추모했다. 매우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사모토는 “난 그것이 개인적 의식과 헌신에 줄을 맞춘, 통찰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난 그것을 매일 명상하는 사람과 연결짓는다. 그에겐 뭔가 영적인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모와 누이 다니엘레 외에 또 한 누이 매덜린 창, 그리고 그의 파트너 츠바사 나리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