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我慢)과 교만(驕慢)
그래서 오늘 소참법문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칠판을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법상에 앉으면 가령 한문자를 이야기하려고 해도 이 글자는 좀 어려운데...
이거 참 안 되겠다.
또 불교용어를 말할 때에도 꼭 칠판에 써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새로 오신 분이나 학력이 짧은 분들은 참 어렵지요.
그래서 오늘 소참법문이지만 처음 칠판을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아만(我慢)’에 대한 주제로 짧게 법문합니다.
아만. 이렇게 하면 또 모른다고요. 그렇지요?
아시는 분은 아셔요. 아만.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아만.
자, 이 ‘만(慢)’자.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만(慢)’자가 우리 불교에서는 굉장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慢)’자. 교만하다는 만(慢)자인데 교(驕)자 하고 틀립니다.
이 교(驕)자가 있어요. 이것(만자)과 뜻이 좀 다른, 이게 교(驕)자입니다.
이 교(驕)자 하고 이것(만자)은 달라요.
우리가 삼악도를 윤회하고
사람으로 와도 고생고생하고 병약하고 뭘 하려고 해도 안 되고,
자식들은 말 안 듣고 남편은 속을 썩이고 하는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다섯 가지 대단히 못된 뿌리깊은 근본번뇌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 족쇄가 있어요.
이놈을 추방해버려야 되요.
이 마음을 뿌리 채 뽑아서 던져버려야 되거든요.
자, 다섯 가지 족쇄를 아시는 분?
이게 불교 교리의 기본이어요 여러분.
나는 지금까지 교학에 입각해서 법문 하지 않았어요.
매번 내 이야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조금씩 교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 다섯 가지 족쇄. 여러분, 삼독(三毒)은 알지요?
탐․진․치는 알지요? 거기에다가 둘만 보태주면 되요.
뭔 줄 알아요? 탐진치에다가 요놈(-慢)하고, 그 다음에 뭐지요?
의심(疑)이어요. 칠판에다 글씨를 쓴 지가 오래되다가 보니까... 이것이어요(-疑).
탐진치에다가 만(慢), 의(疑) 이 두가지거든요.
여러분 탐진치는 아시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이 ‘만(慢)’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만(慢)’은 잘 몰라요. 그렇지요?
뭐가 ‘만(慢)’인 줄 압니까?
이 뜻은요, 이것(교-驕)과 이것(만-慢)은 교만하다는 말로 새기면 나와요. 그래요.
그런데 이것(-교)하고 이것(-만)하고는 다릅니다.
이 교(驕)자는 학식이라든지 용모라든지 지위라든지 혈통이라든지
모든 것이 남보다 출중해서 스스로 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해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교(驕)입니다. 아셨지요?
요놈 만(-慢)은 아니어요. 요놈 만(-慢)은 요것 교(-驕)보다도 아주 더 뿌리가 깊습니다.
근본번뇌, 다섯 가지의 근본번뇌 중에서 네 번째에 속한 거예요. 그렇지요?
탐진치만의(貪瞋痴慢疑)니까. 네 번째에 속해요.
요놈 만(-慢)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느냐?
세상 사람들은, 중생들은 이 몸뚱이를 나(我)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교학에서는 이 몸뚱이를 색․수․상․행․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오온(五蘊)이라고 그래요.
색․수․상․행․식, 이것을 오온이라고 해요.
이 몸뚱이 하고 마음 생각 정신 이것을 이야기한 거예요.
색, 물질적인 것, 이것은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 생각은 정신은 수․상․행․식으로 기능이 이루어진다 그래요.
그래서 이 몸뚱이와 정신을 합한 것, 이게 오온이어요.
사람들은 이것(-몸뚱이)을 나(我)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은연중에 항상 이런 생각이 있어요.
‘나는 내일 어디를 가야 되는데... 나는 열흘 후에 누구한테 곗돈을 줘야 되는데...
내 아들 누구는 1년 있으면 대학입학시험을 보는데...’
중생은 항상 ‘나라고 하는 생각’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요.
나라는 생각, 그 나라는 생각 속에는 은연중 교만심이 있어요.
뿌리가 깊어서 스스로도 깨닫기가 쉽지 않아요.
이게 만(慢), 아만(我慢)이에요.
그런데 그 나라는 생각은 사실 가아(假我)입니다. 가짜입니다 여러분. 가짜예요.
여러분은 지금 가짜에 그냥 족쇄가 채워져 가지고 살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공부를 해서 깨달아버리면 여기에서 해방이 되요. 해방이 되어버려요.
여러분 잠자면서 꿈을 꾸지요. 꿈을 꾼단 말이에요.
꿈속에서 온갖 일을 하신단 말이에요.
세상도 구경하고 누구하고 어디를 가기도 하고 이리저리 많~이 활동하잖아요.
그 꿈에서 깨버리면 어떻지요? 허망하지요? 그렇습니다.
깨치면 세상이 허망해요. 꼭두각시놀음같이 보여요. 허망해요.
나(我)라는 생각은 뚝 떨어져 나가버려요.
나라는 것은 뭔 줄 압니까? ‘나’하면 ‘너’가 있어요.
그래서 내 것 네 것 이렇게 챙기는 거예요. 나(我)가 나누는 거예요.
그것을 소아(小我)라고 해요. 소아(小我) 아시죠?
중생은 소아적이어요. 나밖에 몰라요. 사실은 거짓인데.
이 몸뚱이는 거짓이어요. 진짜 여러분으로, 나(我)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건 거짓이어요. 과거생에 내가 업을 지어서 그대로 내가 받은 거예요.
과거생에 내가 설계해서 모든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들이 모여진 거예요.
내가 업을 짓지 않았으면 안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좋은 일들을 많이 하시고 수도를 많이 했으면
여러분의 얼굴은 수도인 같이 보일 것이고 죽은 데가 없을 것이고,
사람들이 보면 거룩하게 보이고 그래요.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습니다.
이 몸뚱이도 나라는 생각도 거짓이어요. 나가 아니어요.
이것은 조그마~한, 하나의 조그마~한 굴레, 이 바운다리 안이어요.
깨치면 그것이 무너져버려요. 그 바운다리가 벽이 무너져버려요.
그래가지고 텅~비어버려요.
깨치면 한순간에 이 대상이 뒤집어져가지고 전~부가 없어요. 몸뚱이도 없어요.
그러나 꼭 남는 것이 있어요.
텅~빈 공간하고, 딱 의식하는 것 알아차린 것만 남아요.
그런데 그 알아차린 것도 나라는 것이 없어요.
나라는 생각, 그 알아차림이 아니어요. 그것만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가 원래 그렇게 큰 거예요.
이 우주를 다 먹고 있는 거예요. 그게 진짜 나예요.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