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천안행 전동열차
(1)
천안행 전동열차가 들어온다.
내 언 구두의 타력은 심한 강도와 메타포로 상승한다.
심장을 꿸 듯 달려온다.
나사 풀린 근대를 애미로 삼아,
영 지칠 것 같지 않은 양서류 하나.
그가 스르륵 이마를 쳐들고 조여 온다.
<나>는 그 몇 번째 토막인지 모를 내장 속으로 들어간다.
현대는 이미 입구가 여러 개다.
그 궤짝 안엔
자유당을 무사하거나 비겁하게 넘겼을
회심어린 백발 노신사와
새마을 유신으로 영웅표창 및
포상을 거머쥐었을 법한 흘러간 장년,
덜 깬 술을 원망하며
빗나가는 입맞춤에 짜증내는 청소년,
국가공무원에 최종으로 목을 맨 듯
특히, 비장한 외곬의 취업삼수생과
돌아오는 길에는
면장갑에서 강력접착제로 바꿔 파는
곱게 늙지 않은 잡상인,
그리고 어이없게도 눈물겨운 <나>라는 사람,
무가지 타블로이드판을
단물 빠진 껌보다 질리게 곱씹는 중년부인,
급히 서둘 일 때문인지 눈곱 낀 애완견을
바바리코트로 품은 때늦은 모성의 노처녀,
달리는 역방향에서
짙은 선글라스에 지팡이 들어 통로를 비집는
걸인 같지 않은 걸인.......
이런 <나>의 동포들이 이 궤짝,
질겁할 양서류 내장 안에 과포화로 있다.
불량소시지처럼 돌돌 매듭진
천안행 전동열차 안은 빼곡하다.
현대를 극구찬양하며
겁탈한 자들의 보기 좋은 유배다.
비비꼬여 세척도 버거울 숙변이다.
아차, <나>부터 이 침침한 암굴 속에 몸부림치는
한 마리 기생충은 아니었던가.
<나>라는 사람을 포함해 이들은 무엇이 급해
전동열차 안을 메운 걸까.
놓칠세라 부랴부랴 계단을 달려오는 사람도,
무엇 때문인지 합승 못한 것을 개탄하던 사람도
씩씩거리기는 마찬가지더라.
(2)
<나>는 이 궤짝, 아니 이 내장을 분석중이다.
첫째결론은 다양성,
둘째는 무질서,
셋째는 잘못 이식되어
자유라는 이름으로 커버린 리버럴리즘,
넷째는 미묘하게도 길 잃은 모던,
마지막결론은 어디가도 없는 원칙과 중심의
불행한 실종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급하게 천안을 향해 달리는 창밖을 본다.
말없이 뻗어, 거기를 수없이 오고 갈
철길 위 군상과 그 잔영을 본다.
모두가 거짓말처럼 슬프게 웅크려 있다.
하나같이.
욕망이 떨어뜨린 쓰레기와 산업폐기물,
멀어서 멀리로부터 멀어져가는 아파트집촌,
지름길로 택한 샛길에 막혀서있는 자동차 행렬,
철사처럼 마비되어 새들마저 뜬 외로운 전선,
골탄냄새도 얼려버린 겨울침목,
광합성을 멈춰 빛바랜 특선메뉴 현수막,
말라비틀어진 잡초로 점령당한 공터,
곰보처럼 빗물자국 패인 고급승용차,
공학을 고려하지 않은 회색시멘트 옹벽,
얼마나 숨차게 그간을 달렸을까 의왕철도박물관,
비용절감에 희생당한 키 낮은 방음벽,
전화번호 하나가 떨어진 해피부동산 컨설팅간판,
바쁜 아내 덕에 <나>까지 게을러 매번 거르는 아침공복,
그게 무슨 대수며 야유냐고 우기는
삼양라면 액자광고,
무언가를 위해 자꾸만 과속하는
<나>의 출출한 결의,
묻지도 않는데 짝퉁이 아니라는 롤렉스시계,
마도로스를 호기롭게 부르는 속빈 인도어 골프장,
아무리 방학이라지만
한명도 내리지 않는 성균관대역,
신호관계로 서행중이며
동시에 오산역 구내의 사상자 발생으로
신속히 수습중이니 양해 바란다는 안내방송,
눈길 가지 않는 허리인데도 서둘러 나온 배꼽 티,
다음 정차 역 멘트만 나오면
재잘거리다 일시에 감기는 눈꺼풀들.
(3)
<나>는 그들의 동포며 그것들의 연고자고,
그들의 동포는 <나>며
그것들의 연고자 또한 <나>다.
우선 그 내장궤짝 안엔,
월북을 택해 저 형제나라 건설에 몸 바친
전사들의 또렷한 눈빛은 아예 없다.
이틈에도 <나>란 속절없는 자는
이따위 한심한 생각으로 무료와 거북함을 때운다.
-못마땅해도 여기 반쪽을 위해
참고 기다렸다면 좀 좋았으련만.
특히, 문화예술계 쪽에.......
무슨 월북 작가는 아녀도 잔류문인 정도로 말이지.
그 샤프한 몇이라도 남았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충성스런 독자가 돼있을까.
아직 천안은 멀었지만
천안행 전동열차는 달린다.
내 언 구두는 녹았지만
심한 강도와 메타포로 여전히 상승중이다.
여러 심장들을 꿰차고 진작 달리고 있다.
너무 조인 근대를 역시 애비로 삼아
영 멈출 것 같지 않은 비대한 양서류 하나.
그가 가늘게 눈떠 헤집고 간다.
<나>는 그 몇 번째 토막인지 모를
동굴 속에 끼여 있다.
미래의 출구도 정작 하나만이 아닌 것을.
(4)
[天安, 天安.......]-행에 몸을 싣고
<나>는 그곳을 돌아 다시 오고 있다.
-----------------------------------
천안까지 전철이 개통되었을 때
종점인 천안역까지
어떤가 하고 타보았던 그 무렵 전동차.
오고갈 때 여러 승객들의 표정과 모습들
스치는 차장 밖의 풍경들
그 너머를 둘러보며
머리가 맑아오던 느낌이 새롭습니다.
그때 돌아오며 지은 <시>입니다.
-----------------------------------
<시사평론> 드림
첫댓글 저도 천안행 전동열차 타보았는데 매우 재미있더라고요. 서울에서 천안가는 통일호 타는 기분들어서 너무 좋았음. 요즘은 빠른 열차인 ktx만 타서 느린열차의 묘미를 못보는데(무궁화호, 누리로, itx-새마을, itx-청춘이 있긴 하지만 이용을 할때가 없음) 이렇게 서울에서 천안, 천안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전동차 만큼 쉽고 편안한게 없어서 이용하는데 느린열차의 묘미도 보고 매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