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7일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호세 8,4-7.11-13; 마태 9,32-38
제1독서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4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5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6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11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13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4주 화요일
세상에서 주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삶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엄중한 고발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다.”(호세 8,4) 백성의 근본적인 죄는 단순히 외적인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들의 계획과 안전장치로 대체한 데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8,7)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 없이 세워진 삶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원리입니다. “심는다”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선택을 뜻하고, “바람”은 공허하고 덧없으며 실체 없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경제력이나 기술, 인간의 자력에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 하느님을 잊어버릴 때 바람을 심고 있는 셈입니다. 그 결과는 깊어지는 고독, 사회적 분열, 그리고 삶의 의미 상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마귀가 쫓겨나자 그는 다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벙어리”라는 모습은 오늘날의 영적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많은 이가 자기 마음속 진실을 표현하는 능력, 하느님과 이웃과 진실하게 대화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행적에 감탄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 기적을 악의 힘으로 돌립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일을 보면서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닫힌 마음의 비극이 드러납니다. 믿음은 단순히 외적인 증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식별할 수 있는 내적 개방성을 필요로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여러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매우 감동적인 말씀을 덧붙입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가엾은 마음”은 사람의 가장 깊은 내장에서 우러나는 강렬한 연민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향해 몸을 굽히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군중은 무거운 짐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고, 참된 인도자가 없었기에 “기가 꺾여”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불안정한 노동 환경, 가정의 위기, 불안과 우울, 영적 고립 속에서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시선은 지금도 변함없이 자비롭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 복음을 매우 아름답게 비추어 줍니다. 경제적 욕망과 사회적 갈등이 가득했던 시대에 그는 가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참된 보화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지배하거나 강요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이의 형제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나병 환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원수들을 화해시키며 평화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인간이 자신을 중심에 둘 때가 아니라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비로소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실패로 보던 곳에서 그는 주님의 현존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삶은 흩어진 양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시선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었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심고 있는지 성찰하도록 초대합니다. 성공과 명예, 물질적 안전만을 심는다면 결국 공허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충실함, 기도, 사랑의 실천, 봉사를 심는다면 주님께서는 오래도록 남는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의 군중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외로운 이를 경청하고, 고통받는 이를 동행하며, 분열된 곳에 화해를 이루고, 자신의 삶으로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증언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9,37) 우리 모두가 겸손하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응답하여, 이 시대에 착한 목자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