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신나게 춤을
7월 3일 오슬로 관광을 마치고 오후 4시 SK편으로 스웨덴 스톡홀름 공항에 도착.
비행시간 45분 소요.짐을 찾고 출국장으로 나오자 곧바로 대기중인
교민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남편은 소기업 경영주.
아이가 넷이라는 중년 부인.한국말을 하고 싶어서 가이드 알바를 한다고 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바닷가에 있는 숙소 Scandic Ariadine Hotel 에서
저녁을 먹고 선착장 구경길에 나섰다.
호텔 정원에 넝쿨장미가 한창이다.참새가 방아깐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장미를 유난히 좋아하는 영원한 나의 찍사 명을 받고 한컷 찰칵~~
스톡홀름 유람선 터미널 내항
멀리서 실자라인이 입항하고 있다.잡아 당겨 보았다.
우리 일행이 내일 오후 5시에 승선할 유람선과 같은 모델이란다.
이 곳 역시 백야 현상인 듯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초저녁 같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내일을 기대하며...
호텔 조식후 호텔 로비에서 대기했다. 출발 10분전
오늘은 관광을 끝내고 , 저녁 때 곧바로 발틱해를 건너가는
유람선 실자라인에 탑승 필란드 헬싱키로 이동한다.
17시간 동안 배에서 살아야한단다.
전용 버스편으로 스톡홀름 시청사로 갔다.시청사는 바다를 끼고 있다.
시원스러운 고딕풍의 창문. 건물 내부의 비잔틴 양식의 금색 장식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바이킹,르네상스 양식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청사라기 보다는 화려한 궁전 같다.
북유럽 최고의 건축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청사 입구 안 벽에 조각된 노벨
노벨은 스웨덴의 상징이며,지성의 상징이다.
노벨상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12월10일 오후 4시 30분 정각에 거행된다고 한다.
물리학,화학,생물학,의학,경제학,문학 6개부문이 시청사에서 시상식이
거행되고 나머지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거행된다고.
귀빈 접견실 벽 문양
여자 골퍼 소렌스탐,테니스의 황제 비욘 보그,영화배우 잉그릿 버그만이
스톡홀름 출신이란다.
유엔사무총장을 지낸 함마슐드,거듭 말하지만 지구상에 노벨상을 남겨 놓은
노벨은 스웨덴의 자부심이자 세계적인 인물로 영원히 추앙받을 인물이다.
귀빈 접견실 벽 문양
수상자를 위한 만찬장 [불루 홀](Blue Hall) 약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황금으로 도금한 [황금의 방]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축하 무도회가 펼쳐지는 방이란다.일행의 권유로 집시람과 막춤을~~~
황금의 방 벽면의 화려한 금박 모자이크
시의원 회의실 천정.바이킹 양식이 화려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청사에서 밖으로 나와 청사앞 멜라렌 호반을 산책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갖었다.
호반에서 바라본 청사 .163m의 탑이 보인다.
멀리 배들이 정박해 있다.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칼스버그 맥주 공장이라고 한다.
칼스버그 맥주는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이 여인 말고도 이곳에는 조형물이 여러개가 있다.
산책후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감라스탄으로 이동했다.
감라스탄(Gamla Stan) 스토르 토리에르 광장에 도착.
광장 둘레에는 카페들이 성업중이다.
13~19C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 뿐만아니라
이곳 사람들도 즐겨 찾는 곳이란다.
이들 건물 내부는 레스토랑,주점,아이스크림점,카페,부티크등으로 개조 되어
성업중이다.자유시간 1시간후 이 광장으로 헤처 모여다.
취향이 각기 다르기도 하겠지만 실은 상점 통로가 좁아 몰려 다닐 수가 없단고 했다.
노천카페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랑 머리 파란 눈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이 곳에는 아이스크림이 유별나게 맛이 있다고 했는데 마침
상점을 기웃거리다 아이스크림점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의 갖가지 빛깔이 눈길을 끌었다.
요란한 색깔을 택할까 하다가 자신이 없어서 평소에 먹던 바닐라를 택했다.
일금 5천원.향이 있고 입맛에 맞아 밑뚱까지 다 먹어 치웠다.
크리스탈의 나라 스웨덴. 크리스탈 작품에 푹 빠져있는 집시람
광잘을 벗어 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길.오래된 중세풍의 집들
그리고 상점들이 잇따라 있다.
중세의 문화가 살아서 숨쉬는 곳이란 말이 실감이 갔다.광장으로 나왔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애완견과 앉아 있는 모습이 좀 쓸쓸해 보였다.
배낭 여행자의 특권? 세상 부러울게 없다.
참고: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9세에 아버지가 군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그는 과학만이 아니라 어학과 문학에도 소질이 있어서 곧 5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영어로 시를 썼다. 17세에 뉴욕에 가서 4년 동안 저명한 스웨덴계 엔지니어인
에릭손에게서 일을 배운 후 러시아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지만, 곧 그의
형들은 바쿠의 유전 개발에 성공하여 초대형 정유소를 건설했고, 세계 최초로 유조선과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원유 공급 방식을 사용하여 대부호가 되었다
노벨 자신은 니트로글리세린의 안전성을 확보한 폭약, 곧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고,
이어서 무연화약도 개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는 수에즈 운하나 알프스 산맥의
고타르 터널 같은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평화적인 용도
보다도 전쟁용 화약 수요가 엄청나게 컸다. 그의 말년에는 파산 직전에 있던 스웨덴의
군수회사 보포스(Bofors) 사를 인수하여 세계 최고의 대포 제조회사로 키웠다. 유럽
각지에 공장을 설립하고, 또 전쟁이 일어나면 양편 모두에 군수물자를 팔며 큰돈을
벌었지만, 그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마음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이상
주의와 비관적인 시니시즘 사이를 오갔다. "한순간에 양측 군대가 서로를 몰살시키는 게
가능한 날이 오면 문명국들은 공포심을 느끼며 전쟁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가 하면 자기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이 죽으면 시체를 뜨거운 황산에
녹여버리라는 비탄 조의 말을 했다. "1분 만에 시체가 녹을 겁니다. 거기에 석회를
섞으세요. 황산과 석회가 섞이면 버릴 것 하나 없는 훌륭한 비료가 되니까요."
실제 장례식을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의 재산을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맡겨
노벨상을 제정했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는 아인슈타인은 1945년 노벨상
수상식 만찬에서 노벨이 가공할 파괴수단을 만든 데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이 상을 만들
었다고 말했다. 하긴 아인슈타인 자신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만들라는 편지를
쓰지 않았던가. 출처-웹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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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톡홀름은 업무차 서너번 다녀 왔습니다만 실자라인은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구시가지 감라스탄도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선배님 덕분에 구경 잘 했습니다.
스톡홀롬의 여인들은 무지하게 이뻐서 독일에서 여행온 남정네들이 랜트카 타고 다니다가 한눈 팔아서 곧잘 교통사고를 낸다고 랜트카 직원이 독일인에게 주의를 준다는 이야기를 한국계 독일인에게 들었습니다. 정말 스톡홀롬의 여인들이 그렇게 이쁜가요 ?
S 라인에 쭈쭈빵빵 그 곳 여인을 훔쳐보다가 집사람한테 등짝을 한 대 맞았어요...헉!
스톡홀름 시청사 가보고 싶어요.
강력 추천.신랑 손 꼭 잡고 함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