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참으로 복잡하고 황망한 시간을 보냈다.
나의 실망스러운 반응에 아이마저 우리가 패배한 것으로 생각해 낙담했다. 그것이 아님을 이야기했더니, 금세 기뻐하며 나를 위로한다. 이 녀석이 진짜 어른이 됐구나!
O진아!
우린 이긴 거야!
우린 승리한 거야!
고생 많았다.
긴 시간 잘 버텨 줘 고맙다.
사실 어찌 보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아이를 극적으로 탈출시켰던 그날, 오히려 가해자들로부터 납치범으로 신고당했다. 가해자들을 감금과 폭행, 노동착취, 금품갈취로 고소했지만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 탓에 그 어떤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남은 것은 아이의 몸과 마음에 짐 지워진 상처와 통장기록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장애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를 보며, 경찰은 신빙성을 의심하며 사건을 포기하려 했고 가해자들은 지역사회의 막강한 인맥과 재력을 동원해, 수사를 방해했고 2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반격해왔다. 반면 우리는 법률지식도 전무한데 형편 때문에 변호사마저 선임하지 못했다.
그땐 그랬다. 그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앞서,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한 생명을 짓밟고 망가뜨린 악인들에 대한 분노가 컸다.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온전한 삶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건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이상한 일이 자꾸 발생했다. 우리들의 정보가 가해자들 쪽으로 넘어갔다. 사건 발생 4년 만에 가해자들이 기소되고 법정에서 가해자 측 변호사에게서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알려줬다는 것을 ㅜ
아이는 자신을 위하려는지, 자신을 기만하고 해하려는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발달장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보육원에서 10년 넘게 만났지만 그저 인사성 좋은 아이로만 생각했지 그토록 해맑던 아이에게 지적(발달)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장애수당, 수급비, 자동차, LH전세 임대 등 장애등급에 따른 여러 혜택을 탐내, 아이를 폭행해가면서까지 억지로 장애등급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그들에겐 부메랑이 되었지만 ㅋ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자신들이 장애등급을 받게 하고선 아이가 장애가 없는 일반인이며, 그에 따라 그 모든 것은 자발적 공여라고 주장했다.
가해자 측 변호사가 내게 물었다.
“박형민 씨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나요?”
“아니요”
“그렇다면 통장 기록 외 물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OOO씨가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박형민 씨 혼자만의 생각 아닌가요? OOO씨는 지금껏 오갈 데 없는 자신을 함께 먹고 자고 입히고 도왔던 은인을 가해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무엇으로 확신하는 것인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OOO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자신을 위하는지, 해하는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아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습니다. 이 아이의 눈을 보면 마음이 보입니다. 아이의 눈이 진실입니다. 모든 진실에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가진 진실의 힘을 믿습니다. 부디 이 아이의 입장에서, 헤아려 주십시오.”
끝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통장기록을 들고 탐문 할 때 아이는 내게 “누가 나를 장애인이라고 해요? 나 장애인 아니라고요?” 거리에서 소릴 질렀다. 그럼에도 “너 인마! 장애인 맞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알아들어?”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2019-01-25 16:20 예향정 110,000원 흐리고 진눈깨비 이슬비 내림 OO과 광주 첨단
2019-04-29 15:01 농협 OO지점 2,500,000원 목포 아웃렛에서 OO반팔티, OO의 나이키
2020-01-20 11;04 400,000 신협 OO이 도장과 통장 지참. 임의 인출
이렇게 150여 곳의 갈취 장소를 찾아다녔다. 가능한 같은 시간 때 방문해, 아이의 기억을 찾아내려 애썼다. 신기할 정도로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생각해 보니 비 오는 날은 가해자의 업종 특성상 공치는 날이다. 그날이 갈취하기 좋은 날이다. ㅜ
아이가 기억을 떠올리기 좋게 가능한 같은 시간에 포털에서 날씨를 조회해, 같은 날씨에 같은 장소를 탐문했다. 더불어서 상가 주인 면담, 주변 사람들 면담을 위해 영암군청, 읍사무소, 보건소 등 관공서는 물론 아이의 동선이 될만한 모든 상가와 기관을 찾아가 진술을 받았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놀랍게도 아이는 동일 환경이 주어지면 기막힐 정도 기억해 냈다. 뒤늦게 알았다. 발달장애인들에게 나름의 특별한 능력 있음을..
그렇게 1,050페이지의 조서가 완성됐고 사건 발생 만 4년 만에 가해자들을 기소했다. 그로부터 1년 만에 1심 판결이 나왔다. 오랜 시간 함께한 아내와 여러 후원자님들과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우리에겐 머나먼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진실의 힘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