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기본법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이 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민주 국가는 법에 따라 정치를 한다. 법은 대통령과 대법관과 국회의원과 장관과 공무원들은 말할 것 없고, 국민 모두 잘 지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다시 말해서 법이 제 대접을 받고 힘쓸 때 그 나라가 잘된다. 따라서 우리 말글살이가 바로 되려면 그 관련법이 바로 서고 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말글을 바로 세우는 법은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울 때 만든 법률 제6호 한글전용법뿐이었다. “공용문서는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쓴다.”는 간단한 법(법률 제3호)이었으나 매우 중요한 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이 처벌 조항도 없고 강제 규정이 없어 힘을 쓰지 못해서 조선시대 중국 한자에 찌든 우리말과 일제에 사라질 뻔한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기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글을 사랑하는 국민이 나서서 이 법을 지키자고 외치고 권위를 세우기에 힘썼다. 그리고 그 법만으로는 우리말이 힘쓸 수 없다는 판단이 서서 그 법보다 좀 더 세밀하고 힘 있는 「국어 기본법」이 법률 제7368호로 2005년 1월 27일 17대 국회에서 제정되었다.
「국어 기본법」이 제정된 지 5년이 된 지금 그 법안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그 법을 만든 국회의원과 한글 단체와 정부 관계자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정부가 한글과 한국어를 중요한 국가 상표로 육성하고 빛내겠다는 마당에, 영어로부터 우리말이 밀려 죽어가는 판에 이 일은 꼭 해야 할 일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 국어를 지키고 살리자는 우국충정에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1. 국어 기본법의 목적과 기본 이념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나?
제1조 (목적) 이 법은 국어의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기본 이념) 국가와 국민은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씀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위의 「국어 기본법」 제1조와 제2조에 적힌 「국어 기본법」의 목적과 기본 이념을 정부와 국민 모두 제대로 인식하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현 정부 들어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빛내겠다고 강조하지만 눈에 보이는 실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 분위기는 국어 사용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영어 사용을 촉진하고 있으며, 국어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국어 발전과 기반을 파괴하고 영어 발전과 보전에 힘쓰고 있다. 국어로 국민의 창조력을 증진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힘쓰기보다 영어로 사대 근성과 영어 숭배 풍조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향신문』에 나온 아래의 「영어 교육에 쓰는 국가 예산과 국어에 쓰는 예산 비교」 보도를 보면 그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영어엔 1861억, 한글엔 119억… 예산 24배 차이
-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2008. 10. 12.)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올 한 해 동안 영어 사업에 썼거나 쓸 예산이 한글 사업에 들이는 예산의 15.6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국어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①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사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의 향상과 지역어의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신체상의 장애에 의하여 언어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이 불편 없이 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제5조 (다른 법률과의 관계) 국어의 사용과 보급 등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기본법 제4조를 보면 정부와 공공기관이 국어 발전과 보전에 노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정부와 공공기관이 국어 발전과 보전을 가로막고 앞장서서 파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앞에서 보기로 든 『경향신문』 2008년 10월 12일자 보도 내용을 보면 교육부와 서울시 강원, 충북, 전북, 전남 들은 영어엔 엄청난 돈을 쓰는데 한글 교육은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제5조에 정신과 신체장애 때문에 언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이 불편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정부와 공공기관이 외국어나 어려운 일본 한자말을 많이 씀으로써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조직 명칭까지 외국어가 넘치고, 그들이 내는 광고문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외국어가 거리낌없이 쓰이고 있다.
2009년 8월 현재 정부 기관과 서울시 누리집에서 조직 명칭을 살펴보니 국어정책 주무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는 영문 명칭이 가장 많았다. 그 밖의 중앙정부 기구엔 영문 명칭이 없는 곳이 많아서 다행스러웠다.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한스타일, 한국콘텐츠진흥위원회, 미디어법, 문화콘텐츠산업실, 게임콘텐츠산업과, 디지털콘텐츠과, 영상콘텐츠과, 디자인공간문화과, 미디어정책국, 미디어정책과,홍보콘텐츠기획관, 뉴미디어홍보과, 정책포털과, ….
서울특별시: 다산콜센터, 디자인기획담당관, WDC담당관, 마케팅담당관, 뉴미디어담당관, 공공디자인담당관, 정보화시스템담당광, 유시티추진담당관, 비전전륙담당광, 에너지정책담당관 클린도시담당관, 동대문디자인파크담당관, 남산르네상스담당관, 뉴타운사업담당관, ….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 디자인브랜드과, 소프트웨어정책과 바이오나노과, ….
보건복지가족부: 사회서비스정책관, ….
외교통상부: FTA서비스투자관, DDA협상대사, ….
행정안전부: 희망프로젝트, 유비쿼터스기획과, ….
국회와 대법원, 청와대, 감사원, 통일부, 국토해양부, 법무부, 여성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노동부, 국토해양부, 법제처, 교육과학기술부(지난 때에 정보통신부에 영문이 많았으나 지금 없었다.), 국가보훈처, 국방부 등은 외국말이 없었다. 고맙다.
3. 정부는 2년마다 국어 발전과 보전에 관한 시책과 그 시행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고 국어 의식과 국어 사용 환경 실태조사를 했는가?
제8조 (보고) 정부는 2년마다 국어의 발전과 보전에 관한 시책 및 그 시행결과에 관한 보고서를 당해 연도 정기국회 개시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제9조 (실태조사 등) ①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국어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국민의 국어능력·국어의식·국어사용환경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거나 실태를 조사할 수 있다.
②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자료수집이나 실태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기관 및 국어 관련 법인·단체 등에 대하여 자료의 제출이나 의견의 진술 등을 요구할 수 있다.
③국어능력·국어의식·국어사용환경 등 실태조사의 실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 공공기관 공식 명칭에까지 우리 국어가 아닌 외국어가 넘치고 있다. 거리엔 외국어 간판과 상호가 늘어나고 국민의 일상용어도 영어가 자꾸 늘어난다.국어 의식과 사용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이 실태조사를 하고 우려를 표시하거나 개선책을 발표한 것을 본 일이 없다.
▲ 광화문 정보통신부 청사에 걸린 영문 간판.
▲ 노동부와 한국생산성본부의 광고문 ‘희망愛너지’.
▲ 동대문구가 건 알림글 ‘중랑천愛놀자’.
요즘 언론에 보면 국회에서 ‘미디어법’이란 법을 만드느라고 여‧야 국회의원이 격투를 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그 이름부터 이상하니 제대로 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 법 내용을 따지기 전에 이름부터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한국관광공사는 ‘2009 無더위 夏 夏 夏 好 好 여름휴가 캠페인’이란 광고문을 건물에 크게 써 걸었다. 노동부와 그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가 지하철에 건 광고문을 보면 ‘희망愛너지’란 문구가 보이고, 서울시 동대문구청이 거리에 건 펼침막에 ‘중랑천愛놀자’는 문구가 보이는데 이것은 우리 말법을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옛날 하이텔이나 천리안 통신에서 보이던 우리 말법 파괴 현상의 글이 정부와 공공기관 광고문에 수없이 보인다.
4. 국어책임관이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시행령>
제3조(국어책임관의 지정 및 임무) ①법 제1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중앙행정기관과 그 소속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해당 기관의 홍보 담당 부서장 또는 이에 준하는 직위의 공무원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하고, 이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개정 2008.2.29제20676호(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②국어책임관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1. 해당 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의 효과적인 대국민 홍보를 위한 알기 쉬운 용어의 개발과 보급 및 정확한 문장의 사용 장려
2. 해당 기관의 정책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국어사용환경 개선 시책의 수립과 추진
3. 해당 기관 직원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한 시책의 수립과 추진
시행령 제3조 2항에 보면 정책을 국민에게 효과가 있게 알리려고 쉬운 용어를 개발하고 보급하며 정확한 문장 사용을 장려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오히려 공공기관이 어려운 용어를 만들어 퍼트리고 우리말이 아닌 문장을 만들어 선전하고 있다.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아래 서울시 산하 구청과 공기업이 내 건 광고문이 한자와 영문, 한글이 뒤범벅이어서 우리말을 어지럽히고 있다. 국어책임관이 그 임무를 다한다면 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서울시가 버스와 거리에 붙인 광과문과 서울시 산하 기관이 낸 광고문이다.
5. 국어심의회 운영은 잘하고 있는가?
제8조(분과위원회) ①법 제13조제5항의 규정에 의한 분과위원회의 종류 및 심의사항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언어정책분과위원회
가. 기본계획에 관한 사항
나.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과 국어사용환경 개선에 관한 사항
다. 국어의 국외 보급에 관한 사항
라. 국어의 정보화에 관한 사항
마. 그 밖에 다른 분과위원회의 소관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항
2. 어문규범분과위원회
가. 한글맞춤법에 관한 사항
나. 표준어규정 및 표준어발음법에 관한 사항
다. 외래어 및 외국어의 한글 표기에 관한 사항
라. 로마자표기법 등 국어를 외국 문자로 표기하는 방법에 관한 사항
마. 한자의 자형(字形)·독음(독음) 및 의미에 관한 사항
바. 어문규범에 관한 영향평가에 대한 사항
3. 국어순화분과위원회
가. 국어순화에 관한 사항
나. 전문 분야 용어의 표준화에 관한 사항
②제1항 각 호의 규정에 의한 분과위원회는 위원장 1인을 포함한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③국어심의회의 위원은 1개 분과위원회의 위원이 됨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2개 이상의 분과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있다.
④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은 분과위원회의 위원중에서 호선한다.
⑤분과위원회의 회의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또는 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소집하되, 재적 위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개정 2008.2.29>
제9조(간사 및 서기) ①국어심의회와 각 분과위원회에 간사와 서기 각 1인을 둔다.
②간사와 서기는 국립국어원 소속 공무원 중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개정2008.2.29.>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외국어와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은 국어심의회가 하게 되어 있는데 국어심의회는 1년이 넘게 공백 상태이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자 표기법을 어디서 어떻게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새로 제정된 「국어 기본법」에서 국어심의회는 대단히 중요한 기구다. 1년 반 전에 국어심의회 위원 임기를 똑같게 해서 할 일을 잘하자는 뜻으로 모두 일괄 사표를 냈는데 아직도 심의위원 구성도 안 된 상태다. 이건 대단한 국가 문제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한 공무원을 직무유기로 처벌해야 할 일인데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국민은 말할 것 없고 국회의원도, 장관도 국어원장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선 장관과 국어원장, 청와대에서 아무리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겠다고 해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2007년에 이 글을 쓴 이도 심의위원이라 회의 때에, 또 누리집에 이 문제를 여러 번 제기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무시하고 있었다. 그 증거를 아래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