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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함께 떠나요 이포강에서 천렵 즐기고 원두막에서 금싸라기 참외 먹는 추억여행 이혜숙(여행작가) 아카시꽃이 지고나서 밤꽃이 피기 시작한다. 과부들을 바람나게 한다는 밤꽃향기. 별로 향기롭지도 않은 향기가 농익은 여인네 품속으로 달려오고 있다. 갑자기 더워진 여름날씨. 시원한 강바람이 그리운 계절. 강가에 발을 담그고 천렵도 즐기고 낚시도 하면서 더위를 이겨보자. 여주군 금사면은 금싸라기 참외의 원조촌. 도로변에는 수십개의 원두막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단내 물씬 풍기는 참외가 여행객들의 발을 붙들어 잡는다. 원두막에 앉아 시원하고 달디단 참외를 까먹으면 옛 추억이 떠오른다. 참외서리, 수박서리 등등. 마을에는 으레 원두막 두서너개씩 자리잡고 있어 아이들의 서리밭이 되기도 했다. 아스라히 옛추억이 떠오르고 이포강 너머로 붉은 낙조가 서산으로 떨어진다. 양평에서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여주방면으로 내려가면 이포대교가 나온다. 대교 밑 이포강가에 평일, 휴일에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피곤을 잊고 시간을 낚고 있다. 아직까지는 물이 맑아 쏠쏠히 피래미, 모래무지 등 물고기가 잡힌다. 시원한 다리밑에 차를 세워두고 오수도 즐기고 매운탕도 끓여먹으면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 이포강은 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우리나라 중요한 수로였다. 한양과 강원도를 잇는 번화한 다리였다. 강물을 따라 이동하는 배가 중요한 운반, 교통수단이었던 조선시대까지 번화했다. 강의 상류에는 여주와 충주, 탄금대로 이어져 문경새재에 닿고 하류 쪽으로는 양평, 양수리, 한양으로 이어지니 서해로 빠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한때 이포나루터가 있어 사람들의 휴게소로 이 지역은 주막거리를 형성했다. 그 주막거리는 천서리 막국수촌이 명맥을 이어받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남한강 물줄기. 수많은 세월의 얘깃거리를 간직한 채 한강으로 하염없이 흘러간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단종의 흔적이다. 이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대신면에 단종이 우물을 마셨다는 어수정이 남아있기도 하다. 세조2년에 폐위된 단종은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길에 오른다. 한양의 광진나루에서 뱃길을 따라 내려온 단종은 이곳 이포나루에서도 멈췄다. 그의 처절한 마음은 굳이 그 시절을 연결하지 않는 한 느껴볼 수 없는 일. 이맘때가 되면 이포나루 주변을 비롯해 금사면 일대는 참외원두막으로 노랗게 도로가 물든다. 금사면은 금싸라기 참외 원조촌. 천북리, 이포리, 외평리 등 길가에 수많은 노점상에서 참외를 팔고 있다. 천렵이 지루해질 무렵 동쪽에 있는 파사산(230m)도 들를만 하다. 파사산은 나즈막한 야산이지만 몇가지 유래가 있다. 먼 옛날 파사국의 자리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5대왕인 파사왕때 성을 쌓아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산 능선을 따라 둘레 1,800m, 높이 6.25m의 퇴뫼형 파사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동문터와 서문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오랜 세월 돌보는 이 하나 없었는지 석축은 몇군데를 제외하곤 무너져 내렸다. 파사산에 오르면 이포나루, 여주, 이천, 양평이 한눈에 들어와 아름답다. 하룻 나들이코스로로 좋을 곳이다. 드라이브메모:서울-6번도로-양평-여주로 가는 37번 도로-여주방면으로 직진하면 천서리 사거리-용문쪽으로 난 383번 지방도로 따라 1km 정도 가면 파사산 표지판이 나온다. 차가 중턱까지 간다. 또 이포대교 건너자 마자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산북면이고 곧바로 가면 이천이다. 이 도로주변에는 여름이 되면 금싸라기 참외가 즐비하고 산북면에는 표고, 상황버섯 재배단지가 여럿 있다. **교통편 대중교통:강남터미널-여주간 고속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1시간 15분이 걸린다. 상봉터미널, 동서울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직행버스 이용. 여주터미널에서 천서리행 버스 이용. 드라이브메모:서울-영동고속도로-이천-여주IC-여주대교를 건너면 우측에 신륵사관광지.이천이나 양평등 주변도시에서 갈 경우에는 37번, 42번 국도 이용/서울-6번도로-양평-여주로 가는 37번 도로-천서리 막국수촌-여주방면으로 가다가 좌측에 클럽700푯말-고개를 넘어서 마을을 지나면 고달사지. 서울에서 한시간정도가 소요된다. 맛집 & 숙박 천서리에는 수십개의 막국수집이 있다. 그중 이포대교가 생기기 전부터 막국수를 만들었던 봉진막국수(0337-882-8300)와 홍원막국수(0337-882-8259)가 괜찮다. 또 이포대교 건너편에 있는 이포나루의 매운탕맛(0337-882-6054)과 여주방면길에 있는 보배네집(0337-884-4243)은 소문난 맛집이다. 카페는 산북면 가는 길목에 있는 섹소폰 연주를 하는 봉바위산장(0337-885-1282)이 괜찮다. 추천 맛집 천서리 막국수촌 천서리에는 수십개의 막국수집이 있다. 그중 이포대교가 생기기 전부터 막국수를 만들었던 봉진막국수(0337-882-8300)와 홍원막국수집(0337-882-8259)을 손꼽는다.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시원하고 매콤한 막국수를 즐기면 된다. 수시간 동안 고아낸 육수맛이 대단하며 양념이 빨갛지 않으면서도 매콤하다. 가격은 4천원선이고 냄새 안나는 돼지 편육이 7천원이다. 영업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8시30분까지/매월 첫째주 월요일은 휴일/NO 카드/50여대이상 주차가능 추천 맛집 (구) 보배네집 고달사에서 여주방면으로 들어오면 왼편에 보배네집(0337-884-4243)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보배네집은 손만두, 열무김치국수, 보리밥, 손두부 등을 파는 허름한 토속음식점. 묵은 김치와 두부, 돼지고기 등 양념을 듬뿍 넣어 만든 커다란 만두가 일미. 한번 이 만두 맛을 본 사람들은 잊지못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온다. 느끼한 돼지고기 맛이 없어 담백하다. 커다란 무쇠솥에는 콩두부가 쑤어지고 항아리에는 직접 만든 술이 맛있게 익어간다. 여름철이면 시원한 열무김치에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열무국수가 시원하다. 인공양념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맛을 낸다. 특히 소금에 절인 옛 맛 그대로인 동치미 맛도 빼놓을 수 없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고 맛도 있는 곳이다. 주방에서는 시골 어머니들이 모여 7년동안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다. 고향집 같은 향수가 물씬 풍겨나 돌아와서도 내내 생각나는 그런 곳이다. 메뉴:만두(5천원), 두부(3천원), 도토리묵(3천원), 메밀묵(3천원), 열무국수, 냉콩국수(3천5백원), 보리밥(4천원) 영업시간:11시-9시30분/연중무휴/NO카드/너른주차장 011-411-1717 *추천 카페 *금싸라기 참외 싸게 파는 집(박스로 처리) *한방재료만으로 키우는 당도 높은 무공해 참외 사과참외, 금싸라기 등 독특한 참외가 있는 한빛농장(6호집) 금사면 일대에는 온통 참외 원두막이다. 하지만 대부분 맛이 비슷할 거라는 판단은 금물. 집집마다 키우는 방법도 다르고 비법이 있어 참외 맛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아무집이나 찾아갔다가 기대감이 떨어지면 실망하게 된다. 한빛농장 6호집(0337-882-1779)는 30여년의 연륜을 가진 곳이다. 영농후계자인 이광훈(48세)씨는 처음 이곳에 금싸라기 참외가 시배지로 될 때부터 참외농사를 지었다. 그는 평범한농사법에 멈추지 않았다. 남들보다 더 나은 품질의 참외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는 자세로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방 재료를 쓰는 일. 인삼, 영지, 두충, 오미자 등의 한약 찌꺼기를 제약회사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비료로 이용용한다. 처음에는 상추에 실험을 하고 그 실험효과를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참외에까지 접목시켰다. 그리고 이 지역의 토종 참외인 사과참외도 심었다. 사과참외는 토종으로써 열매가 적고 기간도 금싸라기 보다 오래걸리지만 당도가 뛰어나고 향기가 강해 맛도 좋다. 또 장기간 저장성이 강하고 모양은 사과처럼 생겼다. 향기가 진하고 메론맛이 느껴진다. 참외밭 중간에는 파가 심어져 있다. 이는 선충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위해 파를 이용한 것. 그 파는 뿌리가 잘린 채 손님 손으로 가게 된다. 무공해 배추도 고소하고 맛이 좋다. 하우스 안은 사우나보다 더 많은 땀을 요구한다. 매일 참외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 부부의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들 부부는 평생 맛있는 참외를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이곳도 들러보세요 *고달사터와 클럽700(코스1) 도의 경지를 통달한다는 고달사(高達寺). 고달사터는 몇개의 부서진 문화재가 시골 논밭사이에 흩어져 있어 절터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절터는 한적한 전원풍경이다. 일부러 찾아오는 이도 많지 않다. 이 절의 전성기였던 고려시대엔 사방 30리가 모두 절땅이었고 수백 명의 스님들이 도량에 넘쳤다고 한다. 이곳엔 호방했던 고려시대 선문의 정신과 면모를 말해주듯 뛰어난 문화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 생긴 석불대좌(보물 제8호),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 비교적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원종대사 부도(보물 제7호)가 있다. 이 허물어진 유물을 보면서 가히 옛 찬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다고 한다. 불사를 끝내고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 스님이 되어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고달사가 있어서 고달프게 산다고 하니 얼핏 그 말도 수긍이 된다. 머지 않아 고달사는 복원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 살던 마을 주민들도 딴 곳으로 이주를 해야 된다. 고달사에는 최근 개울 옆에 나무 원두막을 지어 놓았다. 개울과 산풍광에 어우러져 녹차 한잔을 마시면 묶은 시름을 사라지리. 또 가는 길에 클럽700 골프장이 있다. 파란 잔디와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골프장이 한폭의 그림이다. **왜가리마을과 흥왕사, 그리고 도전리 오지여행(2코스) 여주군 중암리의 뒷산에 작은 암자 흥왕사는 가는 길이 구불구불해 찾아가는 기쁨이 있다. 지어진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찰임에 틀림없다. 자료에 따르면 신라 제 35대 경덕왕때 고달과 소달형제가 있었는데 고달은 고달사(상교리 위치)를 짓고 소달은 절터를 구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렸단다. 기도를 마친 5월에 지금 흥왕사에 들렀더니 서리가 있었단다. 이 곳에 절을 짓고 설랭이절 또는 상왕사라 하였는데 그 뒤에 흥왕사로 고쳤다는 얘기가 전해 진다. 시멘트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오르면 커다란 은행나무 3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여름내 푸르던 은행잎은 열매를 맺어 땅바닦에 수십가마니를 털어 뜨렸다. 그 은행나무는 겨울을 준비하면서 도회지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으로 잎을 물들였고 이내 떨어뜨렸다. 이곳 은행나무는 세그루 전부다 암그루다. 멀리 용문산 은행나무를 보고 열매가 열린다는 설과 신륵사 절을 보고 열매를 맺는다는 설이 있는데 어쨌든 숫그루가 어느 곳에 있는지는 은행나무가 아니어서 알 수가 없다. 절에는 별 말이 없고 사람을 잘 기억못하는 큰 스님과 하얀 진도견 한마리, 그리고 공양주 보살과 어린 딸, 매일 이 곳에 와서 일을 도와주는 처사 한분이 있다. 발빠른 진도견은 손님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한다. 지금은 은행알이 다 떨어져 특별한 재미거리는 없어졌지만 한적한 마음을 갖고 싶다면 한번쯤 찾아볼만하다. 사찰 옆 산으로 들어가 5-10분정도 가면 바위에서 솟아나는 약수가 있다. 공해에 찌들지 않아 약수가치가 충분하다. 흥왕사에서 나와 계속 직진하면 도전리다. 도전리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오지. 봄이면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리고 산뽕이 열린다. 가는 길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천렵과 굵은 고동도 잡을 수 있다. 마을 안쪽에 작은 폭포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텐트 한동정도 칠 수 있는 평평한 자리가 있어 돗자리 깔고 더위를 식히며 목마르면 폭포물로 입을 축이면 된다. 하지만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잘 살펴보기를. 또 가는 인 신접리에는 봄이되면 왜가리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오며가며 들러보기를. 대중교통:고속터미널이나 동서울 터미널에서 여주행 버스 이용. 터미널에서 중암리, 혹은 도전리행 버스를 타고 흥왕사 절 입구에 하차. 도보로 한시간 정도 소요. 드라이브메모:여주IC-여주대교 지나서 신륵사 방면으로 우회전-직진하다 북내면으로 좌회전-북내면에서 도전리 방면으로 우회전-신접리 왜가리촌 지나 흥왕사 푯말따라 좌회전-흥왕사. *신륵사와 목아박물관(3코스) 여주의 고을 사람들이 여강이라 부르는 남한강은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고 그 수려함이 매우 뛰어나 문장가들이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지금의 여주땅은 강이 막히고 도시가 들어서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신륵사의 종소리는 천년을 깨우고, 절앞을 흐르는 여강은 여전히 예전의 잔영이 남아 있다. 특히 관광인파가 전혀 없는 이른 아침의 풍광은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시간이 허락된다면 꼭 아침에 찾아보도록. 이곳에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나룻배로 건넜던 조포나루터가 있다. 지금은 오리배가 둥둥 떠다니면서 놀이를 즐기고 있다. 신륵사에 들러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목아불교박물관이다. 각종 불교용품들이 전시되어 볼만하다. 양쪽이 입장료를 받고 있어 부담스러우므로 한곳만 선택하는 것도 방법. 신륵사입장료:어른(1천8백원), 청소년(1천4백원), 어린이(9백원)(관광지 입장료+사찰관람료 포함)/개장시간:하절기(6시부터 오후 8시까지), 동절기(7시-오후 7시까지)/연중무휴/주차료:승용차(1천원), 대형버스(2천원)/전화:0337-880-1592, 885-2505(신륵사) 목아박물관 개관시간:오전 10시-오후 5시/입장료:어른(1천5백원), 중고생(1천원), 어린이(7백원)/주차공간 따로 없음/연중무휴/전화:0337-885-9952 *만나보았습니다 **김운성, 김서경 도자기 부부의 사는 모습 흥왕사에서 도전리가는 길에 여주관광농원이라는 푯말이 있다. 이곳에서 곧바로 직진하면 중암2리 마을이다. 몇채의 농가가 오밀조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동네. 마을안쪽으로 들어가면 싸릿문 앞에 있는 조각품 몇기와 마당에 형식없이 진열되어 있는 테라코타 작품들. 외관이야 주변 여느 시골집과 별다르지 않지만 조각품 몇기로 이 집이 농가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c하 게 한다. 이곳은 김운성, 김서경씨 조각가 부부가 사는 집(0337-884-6467)이다. 중대 예술대학 동기인 부부. 대학1년 열띤 토론을 벌이다 결혼에까지 이른 이 부부는 지금도 학교때처럼 친구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커가는 것과 조금씩 더 익숙해지는 삶 이외에는 아직도 그때를 연장하는 듯하다. 남편은 뜯어도 계속 자라는 마당의 풀을 없애고 아내는 채마밭에 심어논 야채, 과일을 챙겨 밥상을 차린다. 그림같은 전원생활, 창고 한켠은 작업실로 마련해 두고 시골집은 어느 사람이 와도 편안할 정도로 널브러져 있다. 그들의 일상은 겉보기에는 한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일이 들어오면 무섭게 작업에 몰두한다. 그 모습은 작품속에서도 쉽게 읽혀진다. 살아있는 인간미가 쏠쏠 넘쳐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원생활이 그리 분홍빛만은 아니었다. 그런대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이 끊이질 않았다. IMF한파 이후 일이 줄어 배주린 겨울을 보내야 했다. 서서히 작업을 시작하는 부부의 눈빛이 빛난다. 작업장 구경도 하고, 작품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 손붙잡고 가 볼만 한 곳이다. 하지만 따뜻한 맘을 한자락을 갖고 찾아가야 좋을 곳이다. 전통을 따르는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이 물씬 풍겨나는 즘골가마 고달사에서 멀지 않은 상교리 마을 안쪽에 눈길을 잡아 끄는 도예가 부부(0337-884-9584)가 살고 있다. 허름한 시골 집을 개조해 살림집을 만들어 놓고 남편 김원주(38세)씨는 열심히 도자기를 굽고 아내는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즘골이라는 상호는 이 지역의 지명을 따붙인 것. 이곳은 가마골, 사기막골, 점골이라고 불렸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은 생활자기를 굽던 터전이었기 때문.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는 않지만 사기 파편은 산속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김원주씨네 세식구는 복잡한 서울생활을 탈피해 이 곳에 찾아들었다. 아직까지 대들보가 탄탄하고 절집 같은 나무 마루가 맘에 들어 이 집을 선택했다. 마당에 손수 흙가마를 만들고 얼키 설키 작업장을 지었다. 김씨는 자신의 고집을 작품에 불어 넣으면서 생활자기를 굽는다. 매끄러운 맛보다는 질펀한 투박함이 느껴지는 작품들. 주인장의 우직한 겉모습만큼이나 작품 또한 그런 향기를 그대로 내뿜고 있다. 밥그릇, 국그릇, 컵, 접시, 항아리 양념통 등. 아기자기하고 투박한 냄새 물씬 풍겨나는 작품들이 마루 한켠에서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을 가득 불어 넣어 집에 돌아와 쓰면서도 그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 가격도 저렴하다. 5천-1만원에 구입할 수 있으며 4인기준으로 10만원이면 충분하다. 또 원하는 사람은 맞춤도 가능하다. '향기는 일부러 품어내지 않더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는 김원주씨. 그의 외골수 고집의 향기는 조만간에 멀리 펴져나갈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며 4인기준으로 두가족 정도는 현장 답사도 가능하다.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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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