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늘 뭔가 희망을 봐야 힘이 나는 것일까.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한다는 뜻도 되는 것 같다. 작은 것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됐을 때 행복감이 벅차오르는 것을 우리는 자주 느낀다. 나 역시 그렇다. 평범한 촌부라서 그럴까. 인간이란 동물 자체의 본능이 그런 것일까. 욕망한다는 것은 지금보다 한 단계 오르고 싶다는 뜻이다. 작가로서 나는 아직도 습작기에 머물고 있다. 해마다 동인지 몇 개에 소설을 발표하지만 주목 받지 못하는 그저 이름만 문단에 올린 작가다. 가끔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고 누군가의 지지도 받고 싶다. 내게 올 수 없는 행운이지. 자조하기도 한다. 돌아보니 이순이다. 등단 한지도 20년이 된다.
소설이나 글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나는 늘 글을 쓴다. 원고 청탁이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일기를 쓰는 것처럼 글을 쓴다. 몇 년 전부터는 일상을 일기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다. 가끔 홈페이지에 걸기도 하고, 여기저기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면 나도 기분 좋다. 일상 줍기가 아닌 깊은 사색의 글을 쓰고 싶고, 철학적 명제에 매진하고도 싶지만 그릇이 작아서 그런지 늘 제자리에 있다. 소설 역시 그렇다. 늘 소설에 목말라하면서도 내가 만족할만한 소설 쓰기가 어렵다. 내 그릇이 그만큼 얕고 보잘것없어서 그런 것이지. 실망하고 자조하지만 글을 포기할 수는 없다.
소설가로 등단을 했으면서 아직 소설 집 한 권 묶지 못했다. 나를 아껴주는 선후배도 없고, 그만큼 열심히 선후배를 챙길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하기 나름이다. 내 주위에 나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의 매력이고 능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노사모란 단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의 그릇이 크고 너른 탓일 게다. 요즘 정치면 소식은 참으로 부끄럽다. 나라를 위하기보다 개인의 권력에만 취중한 패싸움 같다. 모두 자기 이득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누가 진정 나라와 백성을 위해줄 수 있을까. 어떤 꽃이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꽃의 향기에 벌도 나비도 사람도 몰려오게 된다. 꽃은 그래도 들뜨지 않는다. 제 자리에서 향기를 뿜다가 때가 되면 시든다. 사람도 꽃처럼 그렇게 제 자리에서 빛나다가 사라져도 괜찮다. 꽃으로서의 본분을 다 했으니 행복하게 살다 갔다고 자찬할 수 있다면 진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경제가 바닥이다. 소시민으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돈에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닐까. 그냥 살자. 언제 우리가 풍족했었나. 더 어려운 시절도 살아왔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 역시 자꾸만 쌓여가는 빚 덩이에 더럭 겁날 때 있다. 아직 두 아이 뒷바라지를 해야 할 형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씀씀이를 줄여 보고 싶지만 그다지 낭비를 하는 편도 아니다. 감산과 고사리 밭일하는 틈틈이 일당벌이 나가는 남편에게 미안할 때면 '돈벌이 나갈까.'라고 묻곤 한다. 좀 더 젊었을 때 세상 속에 뛰어들었으면 좋으련만. 자기 생색도 내고 광고도 해야 다른 사람이 알아준다고 했던 말을 우습게 여겨 그런가.
글 쓰다가 소쿠리와 작은 칼 챙겨 못 둑에 나갔다. 소복소복 올라와 있는 쑥을 캐는 중인데 남편의 여자 친구 둘이 왔다. 고사리 밭에서 일하던 남편이 왔다. 차와 다식을 준비해 주고 나는 쑥 캐러 나갔다. 초등 동창끼리 추억 주우라고. 쑥은 금세 한 소쿠리 된다. 못 둑에 퍼질러 앉아 노래 한 곡 구성지게 뽑고 싶은데 새들이 놀랄까봐 그냥 산천 구경하며 시간 때우기 했다. 해가 설핏 기울어 집에 왔다. 안주인 등장으로 두 친구는 일어나 가고, 나는 쑥국 끓일 준비를 하고 남편은 다시 고사리 밭으로 간다. 쑥 향이 집안 가득 퍼진다. 야생 해쑥은 약이라고 한다. 진달래, 개나리가 화사한 집 주변이다. 이런 날 나는 꿈 아닌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