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유럽여행이 처음이고, 나는 패키지여행은 몇 번 다녔지만
그때마다 현지가이드가 항상 따라다녔으니 이런 걸 볼 기회가 없었다.
정말, 촌티를 팍팍내며 모녀는 킥킥 소리 죽여 웃어댔다.
왕궁안 3층으로 가면 ‘블라디슬라프 라’는 넓디 넓은 홀이 나타나는데,
둥근 타원형 지붕에 기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게 특색이다.
당시 이 곳에서 기사들의 경기가 있었다고 한다.
홀의 오른쪽 안에 있는 작은 방은, 그 당시 총독실로 사용되었는데,
그 곳에서 30년 종교 전쟁의 도화선이 된 창문투척 사건이 있던 곳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지만, 우리에겐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창문으로 사람을 던져서 죽이려고 했다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 내가 공부한 거>
30년 종교전쟁 (1618년~1648년) 은 신성 로마 제국이 있던 독일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이다
당시 보헤미아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교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개신교도의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 마티아스도 양쪽 진영에 대한 융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617년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 왕에
선출되는 동시에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프라하 대주교령에 속해있던
개신교 예배당들이 철거되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묵살되었다.
결국에는 다음해 1618년 탄압에 반발한 개신교 시민들이 프라하의 왕궁을 습격해 국왕
고문관 3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던져버리는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이란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머,
개신교 신자인 보헤미아 제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모든 역사적 비극은 한사람의 사이코 때문에 일어난다.
히틀러가 그렇고, 연산군이 그렇고, ,오사마 빈 라덴이 그렇고, 카디피도 그렇다.
수세기에 걸쳐 완공된 성 비투스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