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깨우는 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아내와 나는 서로 쳐다보며 깜짝 놀랐다. 어버이날이라고 일부러 내려왔는데 오히려 마루에는 아침상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아니? 어머님 저를 깨우시지 않구요?"
아내가 급히 이불을 치우며 민망한 듯이 물었다.
"새벽에 와서 이제 겨우 잠든 것을 어떻게 깨우니? 워낙 피곤했던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소리를 내고 다녀도 모르는 것을 보니"
"그래두 흔들어서라도 깨우셔야지...."
"아무렴 어떠냐 어서 애들 깨워서 먹자!"
어머니가 소리를 내고 다니셨다고는 하지만 분명 뒤꿈치를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다니셨을 것이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준비를 해서 시골에 도착을 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중학생인 민해는 효방학이고, 준호는 5일제 수업으로 토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아서 아내도 일을 당겨 하느라고 퇴근이 늦어진 것이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마당에 불을 훤하게 켜놓은 채 이불도 덮지 않고 선잠을 주무시던 어머니와 인사만 나누고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다음 주에 에미 생일이 아니냐? 내려온다기에 미리 미역국만 끓였다. 에미 많이 먹거라!"
"그래요? 생일인가......"
올해는 아내 생일이 윤달이 있어서 다음주가 맞나, 아닌가, 내가 미심쩍어 날짜를 계산하는 동안 어머니는 이것저것을 아내 앞으로 밀어 놓으신다.
"이 쑥떡은 우리 둘이서 한나절 뜯은 거다. 어멈 먹어봐라!" 5월이면 쑥이 커서 순만 뜯어서 써야했으므로 아마 두 분이서 한 나절 이상을 온 밭두렁을 헤매고 다니셨을 것이다. 쑥을 삶을 때도 색깔을 제대로 내기 위해 적잖이 신경을 쓰셨으리라.
"어머! 어머니 어쩜 이렇게 색깔이 고와요. 맛 맛나겠네!"
아내는 어머니가 내밀 쑥떡을 덥석 받아 입에 넣고 다시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준호가 한마디했다.
"할머니 저도 쑥떡 좋아하는데....."
언제나 저를 먼저 챙겨주던 할머니가 오늘은 엄마를 먼저 챙기는 것을 보고 샘이 났는지 입을 삐죽이 내밀며 한마디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특별한 관심을 주시지 않으신다.
"그래, 많으니까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먹어라!"
아내는 자기 앞에 놓여진 반찬을 먹기에 정신이 없다. 미역국을 '맛있다!'를 연발하며 두 그릇이나 비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내가 더 먹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섭섭하신 눈치이다. 내가 보기엔 삼인 분은 거뜬하게 해 치웠음에도. 아내는 시골에만 오면 입맛이 산다고 하며 밥을 잘 먹는다. 김치하고 된장찌개 하나만 올라와도 밥 한 공기를 뚝딱해치운다.
'똥배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그런 소리 해봐야 어머니에게 핀잔만 맞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반찬은 없어도 시어머니가 마련한 생일 상을 미리 받은 아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평소 같았으면 어머니 그늘이라고 아내에게 이런 저런 큰소리를 쳤을 텐데 생일상 때문에 기가 죽어 한 나절을 보내다 돌아왔다.
"어버이날이라고 와서 부산만 떨다가 가네."
"왜, 나는 좋기만 한데. 내년에도 잘 맞춰서 가야지!"
아내는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흥얼거리는 노래를 창문 밖으로 날려보낸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 아내 생일을 챙겨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