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하늘에서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린 기러기들이 먼 길을 날아와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를 특별하게 여겼다. 혼례를 치를 때 기러기를 등장시키고, 폐백에서도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올렸다. 기러기가 지닌 신의와 예의, 그리고 한 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지키는 절개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기러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짝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짝을 잃은 기러기를 ‘외기러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평생 함께하려는 기러기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일편단심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고 수많은 이별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쉽게 버리거나 바꿀 수 없는 인연도 있다. 사랑이란 어쩌면 새로운 사람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마음보다, 이미 맺어진 인연을 오래도록 지켜 가는 마음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기러기의 삶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함께 날아가는 방식이다. 기러기는 혼자 날지 않고 V자 대형을 이루어 날아간다. 앞선 기러기가 길을 열면 뒤따르는 기러기들이 소리를 내어 서로를 격려한다.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지치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어 다른 기러기가 앞장선다. 함께 날면 혼자 날 때보다 힘을 덜 들이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로의 날갯짓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혼자서는 오래 날기 어렵다. 앞에서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뒤에서 힘을 북돋아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때로는 내가 앞장서야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앞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좋은 공동체란 모두가 앞서려고 다투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함께 먼 길을 걸어가는 곳이다.
무엇보다 기러기에게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역시 일편단심이다. 한 번 맺은 짝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날며, 서로를 격려하고, 긴 여정을 함께 견디는 모습이다. 사람의 사랑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젊고 건강할 때만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어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부부의 언약이다.
부부의 사랑도, 친구의 우정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결국은 ‘끝까지’라는 말과 만난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찾아가라고 말하지만, 신실함은 오래된 인연을 귀하게 여긴다. 쉽게 떠날 수 있을 때 남아 있고, 바꿀 수 있을 때 지키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한 번 맺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랑.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사랑.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신실하심을 닮아 가는 사랑. 기러기가 하늘에서 보여주는 일편단심처럼, 우리의 삶에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 하나쯤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