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떠날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5월 중순에야 다녀 올 수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국외여행이라 참 오래도록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기대 또한 무척 컸던 해외여행길이었다. 중국행 보다 하루가 단축되는 아쉬움이 따르기는 했지만 예산상의 형평성 때문이었음을 알았고 집결장소가 국제선 공항이 아니라 여객선 터미널로 알았을 때는 바다에서 지체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현해탄을 건너면서 역사의 현장을 지나고 있다는 감회가 나를 사로잡았다. 性의 억압과 인습에 맞서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부르짖으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던 개화기의 신여성 한국최초의 여성화가이자 문필가이던 나혜석의 숨결이 잔잔한 파도에 밀려와 뱃전에 부딪쳤다.
바다에 떠 있는 섬 대마도를 지날 때는 기쁨보다는 한때 이곳은 우리의 영토이었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으로 이랑 져왔다. 신라 때부터 왜적의 해적질이 얼마나 심했던가 고려가 망한 원인중의 하나가 왜적질이었다는 것을 나는 역사시간에 배운적이 있다 우리가 지금 건너가고 있는 이곳 현해탄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한민족이 품었던 애환을 말없이 지켜 봐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이라는 민족사적 명제 앞에서 서구적 근대문명의 상징 일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적 일본의 만행이 들어온 우리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 민족의 크나큰 고통과 시련을 요구했던 수난의 통로이기도 했다.
바다제비모양 수면위로 낮게 날아가는 코비호에 우리 금정구청 가족 일행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기대에 부푼 마음을 싣고 말로만 듣던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후쿠오카항에 3시간 운항 끝에 입항 할 수 있었다. 부산의 남향보다는 수면이 조금 낮고 넓게 탁 터인 잘 정돈 되어 있는 항구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입국수속 과정에서 일행 중 두 사람이 난처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동성동명 2인이 불법체류자와 에이즈환자라는 오해를 받은 사건이었다. 우리 일행은 영문을 모른 체 한바탕 언어의 벽에 부딪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사람들 얼굴은 우리와 다름없는데 낮선 언어의 간판들이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나 비로소 다른 나라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금정구가 부산의 관문인 것처럼 후쿠오카는 큐슈의 관문이며 중심도시이기도 했다. 뜻밖에도 후쿠오카를 상징하는 꽃이 부산광역시의 시화인 동백꽃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멀게만 느껴지던 나라였는데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가사키를 향하는 도로의 중앙선은 키다리 가로수들로 잘 가꾸어져 있었고 차창 밖으로 스치는 가로변 곳곳에는 자전거 정거장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앞지르기, 끼어들기로 교통사고가 빈발한 우리나라의 무질서한 교통지옥을 생각해 볼 때 공원화된 일본의 교통 정책은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부러웠다.
나가사키는 서양문물을 동양에서 최초로 받아들인 현장이기 때문에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아 국외연수를 오는 이들은 이곳에서 역사의식을 재충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았으면 싶다.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 히로시마 다음으로 두 번째 선택된 비운의 도시 인구 45만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원폭 낙하 중심점에는 검은 돌로 된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 모자상이 있고 피해 당시 허물어진 잔해와 밑기둥만 남아 있는 형무소(당시 143명의 수감자와 관계자들이 모두 전멸했다함) 자리도 흔적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일본의 잔재라고 우리는 지금 다 헐어버린 일제식 건물들 예를 들어 부산역을 지나기 전 영주터널 입구에 자리잡고 있었던 조흥은행 같은 건물은 산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원폭투하의 의미를 자신들의 피해로만 여기며 미래 청소년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일본인들의 저력과 국민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ㅡ후세 교육에까지 연결하여 다시 한번 재인식시키고 각인시키는 근성을 보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6.25 전후세대들의 잊혀져 가는 아픈 역사의 장을 다시 재 각인시키고 싶어진다. 남북이 대치관계에 놓여있는 우리나라 현실이나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생생한 미국과 이라크 전쟁, 8.15해방 이전의 우리 조상들이 받았던 수모와 고통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이국적 풍치가 물씬 풍기는 일본의 개화기 유적을 돌아보면서 이 땅위에 이 지구촌에 전쟁만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평화의 중요성을 재인식 할 수 있는 뜻 길은 여행이었다.
일본은 친절을 관광자원으로 삼는 나라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웃을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친절이 생활화 정착화된 일본의 국민성을 우리가 본 받을 것이 아니라 한발 성큼 우리가 일본을 앞서가는 더 성숙된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달리하면 분명 희망이 넘치는 살기 좋은 부강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감히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3박 4일간의 일정을 통하여 일본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서슴없이 낭비하지 않는 나라 일본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는 곳마다 공원화 된 먼지 없는 친환경적 도시, 수돗물을 끓이지 않고 그냥 마셔도 되는 나라 도시를 만들고 공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원을 먼저 만들고 도시를 만드는 나라 최근까지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흘려내려 인명피해와 가옥이 침몰된 망가진 마을을 고스란이 그대로 보존하는 나라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시 평화공원 옆에는 참혹했던 그 당시의 모습, 파편조각 한 조각까지도 그냥 버리지 않고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원폭자료관등, 너무 쉽게 빨리 잊어버리고 버리는 소비지향주의 왕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을 되새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교복이 구속이라 여기는 우리 아이들과는 달리 주어진 기간 동안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여기며 어디를 가던지 교복을 즐겨 입고 다니는 그곳 청소년들은 일본의 힘인 동시에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느낀 일본의 상술을 열거해 보면 우천시에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통로식으로 연결된 상권형성이라든가 관광명소, 식당, 하물며 호텔입구에서 부터 어느 곳을 가보아도 상점을 통과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도록 진열된 입구에 자리잡은 상점들 자동판매기의 천국, 전자제품의 왕국, 온천이 많은 나라, 一村一品 운동을 하는 나라(한마을에 한가지 특산품 만들기)그리고, 중국 다음으로 녹차를 가장 즐겨 마시는 나라 草地로 대부분 형성된 북큐슈 지방에는 맛과 육질이 매우 뛰어난 소, 말고기 말 기름으로 만든 헤어제품들, 유제품, 특히 우유의 맛은 참 담백했다
그러나 일본은 끼워주는 인정이나 공짜가 없는 나라다. 단무지 한 조각, 김치 한 접시도 덤으로 주지 않는 나라다. 고도의 현대화와 산업화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흔히 우리들은 각자 계산하는 것을 '더치 페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친구나 동료들끼리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도 각자 자기의 것만 낸다. 심지어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동행인의 표를 사주면 반드시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준다. 몇 년 전, 선동렬이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동료들과 같이 술집에 갔다. 자기가 가자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가 계산하려고 하는데 모두 각자 계산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첫째날 여장을 풀었던 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나샤아마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장관이었다. 수정동 고지나 영주동 코모도 호텔에서 내려다본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부산 남항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른 새벽, 창밖의 원생림 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은 여기가 바로 낙원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고 창문을 열고 내다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싱그러운 아침이었다.
특히, 북규슈(九州)는 휴양지이다. 넓은 초원과 아직도 활화산이 곳곳에 있어 온천자원이 풍부하고 화산활동으로 입은 재산과 인명피해는 막대하지만 이런한 악조건들까지도 다시 재생시켜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나라다. 일본은 온천수 70%를 다 쓰지도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내는 나라다. 호텔에 비치된 일회용 치약은 저녁, 아침 두 차례에 걸쳐 사용하기에 한 치의 모자람도 남김도 없을 만큼 알맞은 분량이었다. 대중탕을 이용할 때에도 얼굴, 어깨, 허리 그 다음 순서대로 옆 사람에게 물 한방울 튀지 않도록 조심하는 사람들, 넘쳐나는 물이지만 아껴 쓰는 모습들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대중탕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은 작은 세수대야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잠기는 분량으로 자동 조절되는 급수량을 보면서 사소한 것에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국민성을 볼 수 있었다.
4개의 주요 섬과 4000여개 이상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일본은 나가사키에서의 맑은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운젠으로 이동하는 다음날부터 퍼붓기 시작한 빗줄기는 아소산에서 - 벳부 - 유노하나 - 다시 후쿠오카로 이동 태재부 천만궁을 견학하는 마지막날 일정까지 줄기차게 따라 다니며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비는 일본식 전통 우동 맛을 중식으로 시식하고 3박 4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공향으로 돌아 올 때쯤에야 날씨는 거짓말처럼 웃고있었다. 섬나라 일본은 우리나라 제주도 보다 훨씬 빠른 5월부터 장마철로 접어든다고 했다.
자욱히 안개가 끼는 날은 스님의 이마가 홀랑 벗겨지도록 청명하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의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햇살 까지 깨어진다고 했던가. 하루종일 가도가도 끝이 없이 이어지는 안개의 나라 일본, 중형버스에 몸을 싣고 지척도 분간 못할 미지의 안개 속으로 종일토록 달리기만 했다. 차창에 이마를 쳐 박고 아예 꿈나라를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통혼례를 치른 신방을 훔쳐보듯이 흐릿한 차창 밖을 연신 손으로 문지르며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달려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턴널 속의 여행길이었다.희미한 실루엣만 그리다 차창 밖의 하늘과 산과 촌락을 다 집어삼키고 달아나는 안개는 우리 일행의 속마음을 도대체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까움으로 가득 채워 주기지만 했다.
마지막 일정인 태재부 천만궁은 스가와라 라는 일본 대학자를 모셔놓은 신사다 초입에는 과거 미래 현재를 나태내는 세개의 다리가 있으며 붉은 색과 금박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지상세계와 하늘 세계로 이어준다는 도리이를 지나는 길 연못에 우리나라 사찰에서 헌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던진 인연을 맺어 준다는 뜻을 담은 오엔(고엔)짜리 동전들이 맑은 웅덩이에 여기저기 던저져 있었다 우리 일행중에도 동전을 던져보는 동료도 있었다 아마 소중한 인연을 찾고 있나보다 그 기다림이 꼭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아기의 건강과 미래의 복을 빌어주고, 장년이 되면 성당이나 교회에서 현대식으로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나이 들어 장례식을 치룰 때는 사후세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불교의식으로 치룬다고 하는 내세를 축원하고 바라는 염원과 풍습은 우리의 토속신앙과도 많이 닮아도 있었다. 분명 동방의 한 아시아 낮은 울타리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시기는 우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3박 4일 일정을 2박 3일로 줄여 배가 아닌 비행기로 왕복한다면 1일 간의 경비를 줄여서 더 많은 곳에 견학의 경비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현재의 경비나 일정이면 좀더 알찬 프로그램 개선도 가능할 것 같았다. 또 관공서에서 일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모습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바쁜 가운데서도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 주신 구청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긴 여행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제자리로 다시 돌아와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가지며, 우선 나부터 먼저 변화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신선한 느낌과 충격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적극적이고 친절한 봉사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값진 여정이었다.
첫댓글 금정구청 연수코스 다녀오셨군요. 太宰府神社에 奉安된 管原道眞은 우리의 鄭松江을 연상케하는 일본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대학자라지요 아마? 神社안에 詩碑에 쓰여진 [東風이 블거들랑 ~ ]하는 매화의 노래는 정철의 [사미인곡]과 그 연유를 가치하는 유배지에서 임금 그리며 부른 노래. 다자이후는 온통 매화일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