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막힌다.
여름철만 되면 나는 유난이 아끼는 물건이 있다.
우리집 선풍기가 3대 있는데, 다른 선풍기는 장시간 사용하면 과열되어 사람 열을 뺐어가는데, 요 놈의 선풍기는 오랫동안 시원한 바람을 연신 품어낸다.
오래 되어서 여기저기 궂은 때가 끼어 치약으로 닦고 그것도 모자라 광약까지 동원해서 닦은 탓인지 반짝 반짝 빛이난다.
그것은 바로 70년대 어머니가 구입하여 쓰시던 선풍기다.
그사이 선풍기를 여러대 사서 사용했지만 고장 나서 버렸는데, 이 선풍기는 한번도 고친적이 없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하여 가전제품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선풍기만은 옛날기술을 못 따라가고 퇴보를 하는지....
정말 알수가 없다.
여름철 동생이 우리집 방문 할때마다 "언니야 제발 저 선풍기 좀 버려라"고 성화지만 "니가 이 선풍기 맛을 알기나 하냐"고 반박한다.
여름철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우리집 선풍기에 다들 놀란다.
오래된 선풍기에 놀라고, 바람이 시원해서 놀란다.
생긴 내 모습이 도회적으로 생겼는데 요 놈의 선풍기만 틀면 나를 한번 쳐다 보고 선풍기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무슨 외개인이라도 되는 듯이..
지난 2월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식탁이랑 소파등등 왠만한 것은 다 버리고 오면서 유독 버리지 못한게 있다.
옛날 어머니가 쓰시던 선풍기 더불어 어릴때 즐겨 쓰던 파이랙스우유잔Set와 제너널 다리미와 싱어미싱이다.
꼭, 어떤 추억이나 내가 효녀라서 간직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 돌아 가시고 유품 정리하다가 멀쩡 하길래 가져다 쓴게 어엿 20년이 흘렀다.
그저,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뿐인데,신통하게도 말썽 한번 부리지 않는다.
사실, 이 선풍기가 몇년이 지났는지 궁금해서 금성으로 바뀐 L.G전자 홈피에 들어가 모델명을 검색했더니 아예 이 모델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단지, 70년 전자선풍기 광고에 이 모델이랑 비슷한게 보인다.
올 여름 선풍기를 다시 꺼내어 작동을 시켰더니 멀쩡하게도 잘도 돌아 간다.
어린 시절 선풍기가 있으면서도 전기세 아낀다고 곱게 모셔놓던 어머니 생각이 떠 올라 살며시 미소도 지어 본다.
오래전 유행했던 노래 가사처럼 "옛 것은 좋은 것이여"란 말은 가전제품만은 예외인 요즘 세상에 유독 이 선풍기만은 해당되는 것 같다.
난 올해도 어김없이 값진 보물인양 닦고 또 닦아서 잘 사용하고 있다.
단지 흠이라면 전기가 220V가 들어 오면서부터 도란스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
나도 언제까지 쓸지는 모르지만 고장이 나지 않으면 계속 쓸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리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데, 옛날 물건도 좋은게 많다고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