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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맘때면 내 어린 시절 시골 집 우물가에 홀로 서있던 고목 매화나무가 생각난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수령이 모르긴 해도 100년을 넘긴듯하고 어른 키의 두배가 넘는 장신에 몸통은 절반 이상이 썩어나가 골이 움푹 패었고 겨우 조금 남아 있는 나무껍질로 수분을 빨아올려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늙어 제 몸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운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내 어머니께서는 그 매화나무 목에 빨랫줄을 묶어 우리 여덟 식구들의 물빨래를 널었으니 그 무게를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그뿐이 아니다. 매화나무 밑둥 언저리에 ‘부추’를 심고 가꿔 봄.여름.가을 삼철, 솎아낸 부추를 살짝 삶아 양념장과 함께 참기름을 치고 주물럭주물럭 영양가 높은 웰빙 ‘부추비빔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매실 밭 보다는 부추 밭이 돼버린 매화나무 밑둥에 푸나무를 태워 나온 나뭇재를 흩 뿌려주고 수시 호미질로 찍고 쪼아대며 김매기를 무수히 했건만 ‘힘들다. 고통스럽다’ 내색하지 않고 매화나무는 해마다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피워냈으니 참으로 가상하다.
삼사월이면 집 마당 남쪽하늘을 하얗게 뒤덮던 매화꽃, 특히 무르익은 봄밤의 그윽한 매화향기와 그 아름다운 정취를 어찌 필설(筆舌)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봄이면 우리 집 뜨락은 그야말로 매향만정(梅香滿庭)이었다.
농촌에 모내기철이 돌아오면 콩알만한 청매실(靑梅實)이 매화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시간이 지나 보리가 이삭을 패서 익어갈 때쯤이면 매실은 벌써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자라서 볼연지를 찍기 시작하여 보름여 날짜가 더 지나면 토실토실 살찐 청매실은 속이 보일만큼 말갛게 예쁜 주황색으로 옷을 갈아입어 매실 육이 말랑말랑 해지면서 새콤하고도 달콤한 매실 맛이 들게 된다. 나는 매화나무를 타고 올라가 잘 익은 매실을 따서 동네 친구들에게 인심도 썼고 남의 집에는 없는 우리 집에만 있는 새콤달콤 매실나무가 있다는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었다.
그렇지만 생명이 있는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어느 해인가 우리 집 고목 매화나무도 제명을 다 했던가 안타깝게 말라 죽고 말았다. 오늘 날 같았으면 고목나무 움푹 파인 나무통속에 치료제를 넣고 깁스하여 그 수명을 얼만큼 연장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땐 그걸 몰랐었다. 어린 나이에도 우리 집 매화나무의 죽음은 너무도 안타깝고 슬펐다. 정이 많이 들었던 매화나무와도 결국 이별이었다. 죽어서 슬프지 않는 이별이 있을까.
인생도 매한가지다. 성경은 우리네 인생을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영화(榮華)는 잠시 잠간이요, 금방 슬어 없어진다는 말이니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요, 죽어 서 가지고 갈 수 없는 허망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병으로 아파 누운 환자에겐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늙어 명(命)을 다하고 죽는 죽음이야 의사의 능력으로 안 되니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밖에.
그립다. 그 시절 고희(古稀)를 코앞에 둔 이 나이에도 그때 그 매화꽃이 그립다. 그 매향(梅香)이 그립다.
오늘 날엔 섬진강물 따라 마을마다 매화를 심어 ‘매화마을’을 조성하고 제철소로 이름난 광양 땅에도 매화나무를 심어 집단재배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매실은 열매가 채 익기 전 과육이 가장 충실한 청매실로 전량 수매하여 한약재로 또는 매실주 원료로 팔려나가 가난한 농가의 수입원이 되어주니 일석이조(一石二鳥) 고마운 매실이 아닐 수 없다. 섬진강 매향이 예까지 날아든다. 섬진강으로 오는 봄은 언제고 하얀 매화와 노란 산수유를 동행하여 전국의 상춘객(賞春客)을 부르고 구례.곡성.섬진강.하동포구를 아우르는 남도천리(南道千里)를 꽃으로 장식하고 봄소식 꽃소식을 전해주니 설익은 봄, 조춘(早春)에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북풍한설 엄동설한 끄트머리 저 언덕 너머로 봄이 오고 있다. 남쪽 바다로부터 출발한 봄은 강진.해남 땅 끝으로부터 상륙하여 동백꽃.진달래.개나리를 잠 깨우며 계속 북상하고 있다. 오는 봄을, 불어오는 봄바람을 뉘라서 막을 쏜가. 우리의 봄은 그렇게 소리로 향기로 빛깔로 온몸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산 너머 조붓한 오솔 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나직이 노래 부르며.
봄이 오면 고목나무도 잎 피고 꽃을 피워내듯, 겨우내 입었던 두터운 외투를 훌훌 벗어 던지고 삶의 스트레스도 확 떨쳐 버리고, 날아갈 듯 가벼운 차림으로 꽉 막혔던 마음의 체증도 펑펑 터뜨리고 이웃 간의 갈등과 벽도 헐어버리고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靑羅)언덕으로 봄이 오는 길목으로 “사람들아, 봄맞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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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호 친구의 편지)
친구!, 小寒 大寒 지나고 일주 후면(2/4) '立春'이니 봄 일세 冬將軍이 제아무리 질기다한들 오는 봄을 막을 수 있겠는가. 비록 젊어 좋았던 body condition은 날이 갈 수록 衰退해가고 末梢 신경계가 무디어가니 스스로 놀랍네 다행히도 두암거사와 정다운님을 비롯한 몇몇분들은 아직도 山野를 누비며 늙는 줄 모르고 살고 있으니 祝福일세 '건강 3보'중에 步行이 좋다는데 그것 돈 안 드는 거 잘해 보려니 관절에 퇴행이 진행 중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
그래도 봄은 노인에게 좋아 살맛나게 생각을 이끌어주니 오는 봄을 환영하세. *내가 속한 문학회 2월호 원고를 첨부했네. 늘 고맙고 <동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