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28만 명, 면적 376.35 제곱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오래된 도시, 군산. 1899년 5월 1일,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 나르고 한국을 침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강제로 개항하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1949년에 시로 개칭되었고, 1995년에 옥구군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그의 대표작 『탁류(濁流)』에서 군산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탁류]는 '식민지 사회의 자화상'을 그린 소설이자 오늘날에 와서는 30년대 군산을 가장 잘 묘사해 주고 있는 한 권의 역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채만식이 태어난 지 100년 세월이 지난 2001년 3월, 군산시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금강 하구둑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채만식 문학관'을 건립하여 이를 군산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째보선창은 번영과 쇠락의 길을 걸어온 군산의 내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언청이를 이르는 우리말인 '째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선창 앞에 골이 두 갈래로 갈라진 물길이 흐른다고 해서 오래 전에 붙여진 호칭인데, 지금은 시멘트로 복개되어 있어 더 이상 째보 물길을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이 째보선창은 일제 강점기 때 전라, 충청 연안의 어업기지로 변신을 거듭하여 근대 어항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당시 엄청나게 번창했던 동부어판장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란 진창에 나있는 무수한 말발자국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동부어판장에 넘쳐 나던 싱싱한 활어들과 경매꾼들이 뒤얽혀 왁자지껄했던 풍경은 이제 옛이야기로만 남았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숱하게 자행된 인근의 갯벌 매립으로 군산 앞바다는 깊은 병을 앓게 되었고, 남획으로 인한 어자원 고갈로 어선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90년대 초반부터 해망동 서부어판장에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횟집이 몰리면서 째보선창의 명성은 점차 빛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날에 이르러선 벌겋게 녹이 슨 닻을 힘들게 매달고 있는 낡은 어선 몇 척과 어구 판매점 두세 곳만 덩그렇게 남아 옛 명성을 돌아보게 할 뿐이다. 군산의 발전을 기원하고자 세워진 수시탑에 오르면 군산의 모든 것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보면 점점이 박혀 있는 고군산 열도의 섬 너머로 툭 터진 서해 바다의 수평선이 눈에 들어오고, 이어서 동쪽을 바라보면 군산 시가지가, 약간 왼쪽(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군산에서 제일 높은 오성산이 보인다. 오성산 밑으로는 소백산 노령산맥으로부터 장장 400여 킬로미터를 달려온 금강 물이 웅장한 하구둑에 막혀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북쪽은 또 어떠한가. 강 건너 장항산업단지와 그 아래 군산 앞바다를 오가는 작은 어선들과 대형 선박들, 그리고 옥구평야의 확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군산의 애틋한 정취를 담기 위해 필자가 선택한 장비는 라이카 M3와 루사 20mm/f5.6, 주미크론 50mm/f2.0 렌즈다. 1954년, 독일의 포토키나(Photokina)에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냈던 M3는 분명 라이카 역사상 최고의 카메라이자 20세기 카메라산업 전반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실로 위대한 카메라였다. 당시 라이카의 명성을 넘보던 일본의 니콘 SP 개발팀이 포토키나를 참관하며 M3를 작동시켜 본 후, SP 카메라가 안고 있던 문제점 7 가지가 해소되었던 까닭에 충격을 받아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의 생산을 SP 모델을 끝으로 중단하고 SLR로 전환하여 니콘 F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다는 일화는 라이카 M3가 얼마나 훌륭하게 제작된 카메라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점 조절과 프레이밍이 동시에 가능한 크고 정확한 파인더, 시차가 보정되는 프레임 라인과 렌즈 교환 시 자동 변환되는 50/90/135mm의 프레임, 신속한 렌즈 교환이 가능한 베이어닛 M 마운트와 필름 감기 레버의 채용, 정숙한 셔터, 그리고 이전의 바르낙 형 라이카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편리해진 필름 장착 등 비약적으로 진보한 라이카 M3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메커니즘과 완벽한 디자인 및 설계로 숱한 사진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결국 출시 후 3년 만에 1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M형 라이카로 일컬어지는 M6 모델의 10년에 걸쳐 판매된 수량이 10만대 가량인 것을 두고 볼 때 당시 M3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고도 남을 것이다.
0.91× 배율의 매우 밝은 뷰파인더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플레어가 발생하지 않는 정교한 메커니즘의 파인더(이후에 제작된 모든 버전 - M2에서 현재의 M7에 이르기까지 - 의 파인더에서는 플레어가 발생한다)를 탑재하고, 플래시 싱크로 연결선의 고무 피복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 대부분을 마모가 적고 내구성이 뛰어난 황동 재질로 사용한 점, 그리고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 무결한 디자인은 M3를 라이카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생산되는 타사의 모든 카메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수한 카메라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만든 요인일 것이다.
소설 '탁류'에서 알 수 있듯 군산 사람들은 금강과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왔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팔공산에서 시작하여 충북 영동과 대전, 공주, 부여 일대를 활 모양으로 휘돌아 군산으로 흘러나온다. 지금은 말 그대로 탁류였던 금강이 하구에 둑이 만들어지면서 대규모의 금강호가 조성되었고 이제 이 물은 결코 탁류가 아닌 청류로 바뀌어 해마다 수만 마리씩 떼지어 몰려드는 철새들의 낙원이요, 주변 경관이 상전벽해를 이루어 시원한 바다 바람을 즐길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것이다.
|
첫댓글 군산의 역사와 함께 군산을 알리는 제대로 된 글,그림입니다,퍼 다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