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배 서사시집, 시베리아의 침묵, 달아실어게인 시인선
소통 ・ 2024. 5. 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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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선공k의 선전선동 지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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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의 서사시집
- 시베리아의 침묵
달아실어게인 시인선으로 복간할 예정입니다.
7월 7일 칠석날에 맞춰 세상에 내보이려 합니다.
*
김윤배는 장시 『시베리아의 침묵』을 통해 우리 근대사의 가장 불행한 비극에 숨을 불어넣는다. 더러운 진창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듯, 아프고 끔찍한 역사적 비극을 그 자체의 언어로 명명하며, 때로는 거칠고 아픈 신음으로, 때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숨결로 생명의 리듬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그는 시베리아의 샤먼이 되어 죽은 자들의 차가운 영혼을 위무하고, 한인 유민들의 묵살된 역사를 불러내어 거기에 예카테리나와 빅토르의 사랑의 서사를 엮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묵직한 민중 서사시를 갖게 되었다.
- 박철화(문학평론가)
*
신한촌의 분노 / 김윤배
(전략)
깊은 산속 양귀비는 현란한 꽃잎을
자작나무 숲 그늘 향해 흔들고 있다
짧은 계절 더 요염한 양귀비에게서
생아편을 채취하는 무리들은
사내들에게 높은 값으로 넘겨주었다
사내들, 국경 넘어
중국인들에게 생아편을 파는 일은
목숨 거는 일이었지만
유혹은 아편처럼 강렬했다
사내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공동묘지를 올랐다
영아의 시신 묻고 돌아서며 혼절 거듭하던
이웃 아낙 얇은 어깨 흔들리던 묘지였다
영아의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준 것은 사내였다
세마포에 영아를 조심스럽게 감은 것도 사내였다
사내는 영아의 시신을 파냈다
달빛 아래 영아는 잠든 듯
고요로웠다
아가야 가자
영아의 시신 안고 공동묘지 내려온 사내는
영아의 얼어 있는 배를 가르고
배 속에 아편을 채웠다
아가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내는 헛소리처럼 미안하다를 외웠다
사내는 영아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낙에게 길을 재촉했다
아낙은 영아를 업었다
영아는 울지 않았다
영아는 아낙의 등에서 평화롭게 잠들었다
중국 국경수비대는 잠든 영아를 들여다보고는 돌아섰다
연해주에서 살 수 없어 국경을 넘는다는 사내의 말을 믿는 듯했다
중국인은 어둠 속에서 사내를 맞았다
사내는 영아의 뱃속에서 아편을 꺼내 넘겼다
아낙이 혼절했다
사내는 아낙을 일으켜 영아를 업혔다
영아는 아낙의 등에서 다시 잠들었다
사내는 영아를 안고 공동묘지로 올랐다
영원한 요람에 영아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눕혔다
나지막한 봉분으로 영아를 재웠다
사내는 영아를 향해 큰절 올렸다
신한촌에서 멀어지면 양귀비 재배로 살아가는 사내들 있었다
아편은 삶의 방편이었다
소작의 치욕보다 생아편이 나았다
몇 사내 깊은 숲 속에서 생아편 농사 끝날 때쯤
마적 떼들 숲 속 마을 쳐들어와
생아편 강탈해 갔다
사내들 목숨으로 지키려 한 생아편이었다
마적 떼는 생아편 사냥 끝나면 사람 사냥을 했다
아녀자 겁탈하고 말발굽으로 짓이겼다
겁에 질려 우는 어린것 하늘 높이 던져놓고 권총으로 쏘았다
어린것의 피가 비처럼 내려 놈들 얼굴을 적셨다
사내들은 사라지는 마적 떼 망연자실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양귀비를 재배했다
그 일이 사는 일이어서
그 일이 살아 고국 돌아가는 일이어서
사내들은 양귀비 황홀한 꽃잎에 영혼을 넘겼다
신한촌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후략)
- 김윤배 서사시집, 『시베리아의 침묵』(달아실어게인 시인선, 근간)에서
[출처] 김윤배 서사시집, 시베리아의 침묵, 달아실어게인 시인선|작성자 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