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연제구의회 의원선거(제1회)에 출마의 결심을 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오랜 일꾼들인 허 장,김안식 이 두분이 찾아와 양보를 권유 했다. 두분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동네를 위해 한 일 없어 부끄럽다"며 "두 분이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해 달라"고 부탁을 하며 양보를 깨끗하게 했다. 또 부산시의 선거(제2회)에 출마를 결심하고 준비를 했던 것이 나의 정치적 야망의 기틀이다.
당시 오순곤 후보예정자가 찾아와 양보를 해달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 때 오순곤은 제1회 지방의원 선거에서 박대해 후보에게 패했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편이고 나는 학원을 하면서 인맥을 구축한 정도이다.
나는 아무런 조건 없이 양보를 했다.
그 순간 의형제를 맺자고 제의을 해와 내가 동생이 되었다. 그로 인해 오순곤씨는 무투표로 당선 되었다.
제3회 의원 선거 시즌에 오순곤이 공천을 못 받아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찾아가서 내가 출마를 하겠다고 했더니 현직 의원으로서 출마를 하겠고 해서 포기를 하고 돌아 왔다.
제4회 때 나는 출마를 결심하고 운동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오순곤 전의원이 찾아와서 다시 한번 싸워야겠다며 양보를 해달라고 했다. 한나라당 공천 은 곧 당선이라는 시퍼런 칼날 앞에 무소속(맨몸)으로 도전 할 각오였다.
박대해 청장의 당선을 위해선 자신이 무소속 후보 적격자라면서 몇차레 찾아왔다.나중에 송진호(전 시원 후보)씨 까지 찾아와 '힘든 싸움을 왜 할려고 하느냐'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재를 뿌리고 있었다. 귀찮을 정도의 출마여부의 실앙이 끝에 내 '자신이 돈이 없다'는 자과감을로 억지적 양보를 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순곤씨에게 "내가 출마를 않면 박청장 선거를 도울 수 없고 한나라당으로 돌아 간다"고 분명한 쐐기르 박았다.
그리고는 고향에 가서 5일동안 쉬면서 형님 선거를 도왔다. 훗날 감정의 골들은 선거를 통해 아주 깊었다.
금번 지방선거가 당가오자 출마 준비를 하기위해 한나라당 연제구 김희정 의원 사무실에 책임 당원 등록을 해놓고 시의원 출마 여건을 만들려고 지난 10월 26일 찾아가 등록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3개월이 지나도 등록이 되지 않자 인터네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더니 당장 최문삼 사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민등록 번오나 계좌 번호가 잘못 되었을 거리면서 변명을 해왔다. 그 시기에 경남도의회가 선거구 획정을 하기 위해 버스안에서 날치기 통고를 시킨 사건이 보도 된것을 보고 통탄을 금치 못했다. 지역 맹주당의 횡포, 나는 탈당을 결심하고 내 자신의 홈페이지에 탈당계를 써 놓고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왜 연제구 지구당에선 여순모의 성의를 무시했을까? 애 당원으로 받아주지 않았을까? 많은 의문을 가졌다. 홈페이지 글을 남긴 며칠 후 여성 사무원이 전화가 와서 주민들곡 번호와 계좌번호를 불러주면 맞느냐고 물어 오는데 틀린 점이 없었다. 다음달부터 2천원씩 내 구좌에서 돈이 나가기 시작 했다. 그런나 나는 반갑지 않았다 이미 탈당을 결심했고 부산시의원 출마의 말을 붙일 곳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예비후보로 등록 한 것은
우리 사회가 2등, 3등도 자랑스럽게 함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평소 나의 의지를 펼치는 것이다.
누군가가 도 양보를 권유해 올 것을 대비해 나는 당당하게 등록 했다.
'무소속 갖고 당선 되겠는 기요" "무소속 안 된다."
이말을 나를 팔아먹는 매국노 보다 더한 행위이다.
나는 "나로 인하여 이 사회가 더욱 밝고 깨끗해지기를 바란다"
나는 최를 다하겠다는 각오을 다진다.
2006년 3월 29일
부산광역시 의원선거 예비후보자 여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