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30
수행하는 것은 좋은 마음의 힘을 더 길러주는 것이다.
좋은 마음의 힘이 좋아지면 나쁜 마음의 힘이 줄어들게 된다.
나쁜 꿈을 꾸고 나서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유는
좋아지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일어나게 하고 싶어 하고
나쁜 것은 조금도 일어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하다.
부처님조차도 과거의 악업의 결과를 받으셨다.
내가 부처님보다 좋은 업을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나쁜 일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도록 해두라.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도록 노력해 두어야 한다.
지혜가 있어야만 견딜 수가 있다.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부처님께 나쁜 일은 생기지 말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말라.
빌고 싶으면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 지이다라고 기도하라.
그것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사띠사마디, 지혜를 길러 두어라.
받아들이고 난 뒤에 거기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법의 이치를 이해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들어두었던 것을 한 번씩 생각해 봐야 한다.
생각을 해서 이해를 하게 되면 써 먹을 수가 있게 된다.
없애고 싶은 마음으로 자연의 이치라고 한다면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하고 그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알 때 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 하신 법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에는 지혜가 작용하는 것이 많다.
지혜가 있어야 할 수가 있다.
한 가지를 깊이 이해하면 많은 곳에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은 다 똑같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든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상은 여러 가지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이치는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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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가 옛 날처럼 깨끗하지 않고 이물질이 끼어있다는 요기의 보고에 대해서
이물질이 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다.
생각해서 아는 것과 내가 실제로 체험해서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생각을 하면서 절을 하면 한 번 했는지, 두 번 했는지 모를 수 있다.
알면서 절을 하고 난 뒤에 생각하라.
좋은 마음에는 좋은 에너지가 있다.
좋은 힘을 나게 한다.
사띠가 좋은 사람은 조금만 무엇이 있으면 바로 느낀다.
수행을 하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이 맑아지면 몸의 기관들도 맑아진다.
더운 것은 자연의 이치다라고 알고 그 때 있는 싫어하는 마음을 보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알기 위해서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은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알도록 노력하라.
내가 해야 할 것은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른 견해로써 보고
사띠가 이어지게 노력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그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방해가 되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대상이고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그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도사가 일어난다.
대상은 대상일 뿐이고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할 것일 뿐이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집착을 하게 되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치려고 한다.
견해가 바르게 되었을 때 중도로 볼 수가 있다.
지혜가 있어야 중도의 길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만 평생을 살게 된다.
망상을 볼 때는 망상을 아는 마음도 같이 보도록 하라.
아는 줄을 알지 못하면 망상에 빠지게 된다.
지혜가 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로바로써 해서는 안 된다.
낄레사가 없을 때 지혜가 나게 된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지혜가 난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마음을 봐야 한다.
몸의 힘이 없어도 마음의 힘은 있다.
가끔은 자신의 견해가 잘못되어서 마음의 힘이 떨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몸이 사라지는 것을 가지고 무아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무아는 대상과 아는 마음의 성질을 이해하고
그것이 원인/결과라는 것을 알 때 이해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해 도사가 일어날 때
대상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생각해주고 나서 보라.
그리고 도사가 줄어들었을 때 그 대상을 다시 한 번 봐 보라.
그때는 생각이 바뀌어있을 것이다.
도사가 있을 때 대상을 어떻게 보고 도사가 없을 때
대상을 어떻게 보는 지 조사해 보라.
자연적 이치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그것의 원인으로 인해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적 이치라고 말한다.
수행을 처음 할 때는 생각하는 것이 많이 필요치 않다.
아는 것이 이어지도록 만 노력하라.
낄레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가 일어나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빠라마타는 지혜의 대상이다.
낄레사의 대상은 빤냐띠다.
생각을 빠라마타로 볼 수 있으면 일어나는 성질을 알 수가 있다.
낄레사로 보게 되면 내용을 보게 된다.
대상을 대상인 줄 알고 자연의 이치일 줄 알 때
성질이 지혜의 대상이 된다.
낄레사의 대상은 개념이나 내용이다.
먹을 때 실제로 있는 것을 먹어라.
닭고기를 먹지 말고 맛을 먹어라.
낄레사는 닭을 대상으로 한다.
지혜는 실제로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알아야 할 것과 아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지혜가 있으면 아는 힘이 더 강하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