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거실에 설치한 한젬마의 작품 ‘못사람’. ‘못사람’은 한젬마가 1995년 처음 선보인 ‘관계’ 작품의 하나로 못더미 안에서 문득 사람이 보여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재해석되고 있는 작품이다.“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창작하고 나누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집’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쉼터’, ‘안식처’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게 되지만 아티스트 한젬마는 오히려 “누구를 기준으로 쉬는 곳이라고 하는 걸까요?”라는 반문을 하며 집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집은 우리 가족의 감수성이 키워지고 영혼이 성장 발육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그 어떤 일상 공간보다 더 많이 머물며 그 시선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성도 달리 성장하게 되죠. 이곳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때인 아이를 위해 특히 신경 썼습니다. 아이와 함께 식사하고 책을 보고, 마당에서 가드닝을 하며 나의 미술 작업 공간을 함께 나누어 아이에게 보다 자유분방한 미술 교육의 기회를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죠.”
클래식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현대적인 이미지가 곁들여지도록 꾸며놓은 1층 거실. 벽난로가 있던 한쪽 벽면에는 한젬마의 작품 ‘못사람’이 중심이 되도록 설치했다. 창을 통해 정원으로 바로 나갈 수도 있고 서재 문을 열면 거실과 하나의 공간처럼 연결되어 파티를 하기에도 손색 없는 공간이다. 소파 리폼과 커튼은 봄므에서 제작. 바닥재는 성창마루의 오크 스노우 화이트로 시공.한젬마가 신혼 초부터 살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것도 그녀의 네 살짜리 딸 혜연이를 위해서였다. 결혼 8년 만에 갖게 된 아이는 그녀로 하여금 산책할 수 있고 여유롭게 머물며 쉴 수 있는 집을 찾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아이 백일 무렵 남편 일 때문에 독일로 생활 공간을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아이를 키우며 미술 작업을 해오던 한젬마 부부는 지난해 귀국해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다 올봄에 이태원 주택가에 자리한 이 집을 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원에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오후 시간을 즐기고 있는 한젬마와 딸 혜연이.한젬마가 이곳 단독주택을 구해 리노베이션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지난 5월쯤이었다. 방송과 책으로, 그리고 그녀의 작업을 통해 대중에게 미술을 보다 쉽고 강렬하게 전달해온 그녀의 소식을 오랜만에 전해들은 것도 반가웠고, 그녀 특유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집 안에서는 어떻게 풀리게 될지 몹시 기대도 되었다. 그리고 리노베이션 작업을 맡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FR디자인의 최선희 대표와 한젬마의 만남이 만들어낼 시너지 효과 또한 궁금했다.
지하에 마련한 한젬마의 아틀리에에서 이야기 중인 한젬마와 리노베이션을 담당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선희 대표. 작업실 벽면에는 전수천, 오승윤, 최두수, 노상균, 이진경 등의 작품과 한젬마의 ‘몬드리안’과 로버트 인디애나의 명작 패러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걸어두었다. 책상 위 빈티지 조명은 와츠 제품.처음엔 두 달이면 모든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지만 설계 도면도 없는 1970년대 지어진 이 집은 ‘새로 짓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의외의 돌발 상황을 수시로 만들어냈고 여기에 유독 비가 많았던 올해의 기상 상황까지 더해져 공사 기간이 두 달 정도 더 늘어났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그만큼 기대감도 커지는 법. 에디터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을 즈음 리노베이션을 마친 그녀의 집을 만날 수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 계단을 오르니 정원과 함께 반듯하고 단정한 모양새의 2층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러운 베이지 컬러의 외관 벽면에 한젬마의 작품 ‘못사람’을 모티프로 한 그래픽 이미지가 담긴 램프가 눈길을 끌었다.
또 하나의 창작 공간인 정원에서 흙장난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한젬마와 딸 혜연. 남편은 딸 혜연이가 정원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도록 모래판을 만들어주었다. 외관에서 먼저 만난 이 못사람 이미지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코트 행어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난간, 베딩과 쿠션, 커튼 밑자락, 펜던트 조명 등 집 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예 1층 거실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도록 ‘못사람’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그 외 다른 공간 구석구석에서도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못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못사람’은 제가 1995년부터 작업한 ‘관계’ 시리즈의 하나로 지금까지 재해석해오고 있는 작품입니다. 1층 거실에 설치한 이 작품은 한젬마의 아트 하우스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죠. 무엇보다 작품이 설치된 곳은 이전에 벽난로 자리, 불이 있던 자리라 더 의미있어요. 불로 지져서 연결하여 못으로 사람을 만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못에 생겨나는 녹을 잡아주는 것 또한 불이거든요. 이곳에 자리 잡은 못사람을 중심으로 지하에서 2층까지 집 안 곳곳에 못사람을 두어 통일감을 주려고 했고 곳곳에서 따뜻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어요.” 한젬마는 못사람을 모티프로 책상, 조명, 의자, 수납장, 컵, 그릇, 카펫 등을 제작해 일상의 요소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한젬마의 집 안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닌 못사람들. 못사람은 자기 자신이자 매개체, 그리고 가까운 타인이 될 수도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1, 2 한젬마의 집 안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닌 못사람들.이외에도 부엌에는 그릇을 뒤집어 매달아놓은 모양의 펜던트 조명,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계단 위에는 모빌 형태의 현대적 감각의 조명을, 2층 거실 공간에는 아이의 창의성을 꾸준히 자극시킬 수 있도록 색을 제거한 화이트 형태의 조명을 직접 디자인해 설치했다. 집 안 전체를 설치 미술로 해석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다.
클래식 스타일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가미된 다이닝 공간. 양쪽 가벽에 설치한 철제 장식은 최가철물점에서 제작. 1 모빌 형태로 디자인, 제작한 펜던트 조명을 1층에서 올라오는 계단 위 2층 천장에 달았다.
2 다이닝룸 안쪽에서 연결되는 뒷마당. 사용하지 않는 죽은 공간이었던 좁은 통로를 창을 크게 내면서 아기자기한 마당으로 꾸밀 수 있었다. 한젬마는 이 공간을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 공간으로 연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타일은 윤현상재, 양초는 어바웃어 제품.열정적으로 집을 소개하는 한젬마에게는 칼칼한 아티스트의 매력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엄마, 아내의 모습이 더 많이 느껴져 놀라웠다. 공간 구성도 1층은 남편을 위한 공간으로, 2층은 딸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집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남편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수렴하고자 했어요. FR디자인을 찾아가게 된 것도 남편과 상의 끝에 그가 좋아하는 클래식하면서도 컨템퍼러리한 스타일을 잘 풀어줄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퇴근 후에도 집에 와서 전화 회의를 하고 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회의하고 일할 수 있게, 그리고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남편의 바람에 맞춰 1층을 디자인했다. 남편의 서재를 겸하는 게스트룸은 그녀의 작품이 채워진 아트룸인 동시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또한 이 방의 문을 열면 거실과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으로 정원까지 시원스레 개방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해 파티 공간으로도 손색없이 만들었다.
게스트룸 겸 남편의 서재. 한젬마의 작품과 한국적인 미가 느껴지는 도자기 등을 두어 꾸몄다. 벽지는 DID벽지의 ‘컬러스’로 시공. 바닥재는 성창마루의 AF 월넛으로 시공.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코트 행어도 못사람을 모티프로 제작한 것이다. 코트 행어와 현관 중문의 창문 장식은 최가철물점에서 제작.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1층보다 한층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2층은 부부 침실과 아담한 거실, 딸 혜연이 방 이렇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지지만 2층의 전반적인 컨셉은 아이를 중심으로 잡은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방은 미끄럼틀이 달린 놀이 침대와 주방, 텐트룸 등을 두어 놀이터 분위기로 꾸몄고, 거실에는 피아노와 영상 미술 작품 등을 두어 아이를 위한 예술 체험 공간이 되도록 했다. 2층 거실 한켠에는 아주 작은 기도방도 마련했는데 이 또한 아이의 기도 교육을 신경 쓴 것이라고.
복합형 놀이 침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놀이 기구와 책들이 있는 ‘놀이터’ 컨셉의 딸 혜연이의 방. 침대는 플렉사 제품. 커튼은 봄므에서 제작. 벽지는 DID벽지의 ‘컬러스’로 시공. 바닥재는 성창마루의 오크 스노우 화이트로 시공. 아이 방뿐 아니라 2층 거실도 아이를 위해 꾸몄다. 이곳도 한젬마의 못사람을 모티프로 제작한 쿠션, 카펫, TV를 비롯한 영상 미디어 수납장과 갤러리 월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피아노와 영상 미술 등을 접할 수 있도록 해 아이에게 다양한 예술 체험 공간이 되도록 했다. 벽지는 DID벽지의 ‘컬러스’로 시공. 바닥재는 성창마루의 오크 스노우 화이트로 시공. 커튼은 봄므에서 제작, 카펫은 한일카페트에서 제작. 1 2층 거실도 아이를 위해 꾸몄다.
2 2층 벽난로가 있던 자리에는 기도방을 만들었다. 한젬마와 아이가 함께 기도하는 곳이다. 문에 부착한 타일은 윤현상재. 클래식과 컨템퍼러리한 스타일이 접목된 부부 침실. 붙박이장은 은성퍼니처의 ‘하프갤러리’, 창가에 커튼 대신 설치한 루버셔터는 루버셔터 제품. 바닥재는 성창마루의 오크스톤으로 시공.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부 침실과 연결된 욕실. 원형 욕조와 도기, 수전과 브론즈경 수납장은 모두 성신도기 제품. 안방 욕실의 샤워 부스는 전진유리에서 제작.지하의 아틀리에도 그녀만의 공간이 아닌 아이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제 책상 아래쪽에 혜연이의 자리도 만들어주었어요. 아이의 창작 놀이를 위해서죠. 아이가 이곳에서 엄마와 함께 더욱 특별한 경험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작업합니다. 하지만 아틀리에에서의 창작놀이 시간은 규칙적으로 원칙을 정해서 합니다. 아무 때나 아이가 들어와서 제 작업을 방해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에요.”
지하 아틀리에에는 딸 혜연이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창작놀이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1 지하 아틀리에에는 딸 혜연이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창작놀이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2 한젬마의 집 안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닌 못사람들.2층 거실. 갤러리 월. “솔직히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아티스트와의 작업은 꽤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특히 미술을 하는 아티스트에게는 컬러 하나를 제안하더라도 무척 조심스러워요. 한젬마 씨의 경우는 평면 미술뿐 아니라 설치 미술을 하고, 아파트 건설사의 아트 디렉터를 한 경험도 있어서 더 했죠. 하지만 거듭 미팅을 하고 작업을 하면서 긴장감과 함께 재미와 만족감이 더해졌어요. 클라이언트를 통해 저희도 한층 디자인적으로 성장한 것 같고요.”
FR디자인의 최선희 대표는 수개월 동안 이 집의 리노베이션을 하며 집주인 한젬마와 정도 듬뿍 들었다고 덧붙였다. 최선희 대표의 이야기에서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한젬마는 작가로서 작품 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아파트의 벽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아트 디렉터로서 삼성 래미안의 주택문화관을 설계, 디렉팅했으며 진흥기업과는 그녀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주거환경을 개발하고 실현하는 등의 경험을 통해 주거 공간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감각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
2층 거실. TV를 비롯한 영상 미디어 수납장과 영상 미술 등을 접할 수 있도록 해 아이에게 다양한 예술 체험 공간이 되도록 했다. 1 정원에도 한젬마의 못사람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아트 체어를 두어 꾸몄다.
2 침실 한쪽에는 한젬마의 작품인 경대 ‘뷰티 프렌드(몇 년 전 메이크업 화장품 브랜드에서 기획한 전시에 참여하며 제작한 작품으로 마술사들이 미녀를 박스에 넣고 난도질하는 마술을 모티프로 제작한 작품)’를 두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과도 매우 잘 어울린다. “엄마이자 주부 아티스트라서 좀더 유리했고 고마운 경력들이었죠. 이런 특별한 경력을 통해 보다 완성도 높은 이번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제 집을 리노베이션한 경험은 또 제 작품과 무엇이 될지 모를 앞으로의 새로운 일에 분명히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젬마는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는 중에도 아시아 탑 갤러리 아트페어 특별전과 한국 국제 아트페어, 아트 에디션전, 인천국제 디지털 아트페어 전시를 마쳤다. 그리고 가든 5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해 루트전과 상상미술 축제 기획전시 디렉팅을 진행하고, 창의력 셀프계발을 위한 저서를 준비하는 등 일에 있어서도 쉼 없이 가열차게 달리고 있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반도 미술창고 뒤지기> 등 다수의 책과 방송 활동, 전시 등 대중과 미술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소통하는 데 있어 열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아티스트 한젬마. 그녀가 새로 리노베이션한 집에서도 미술과의 소통은 계속되고 있었다.신사임당의 슈퍼우먼적인 모습과 화가 박수근의 한국성, 김기창 화백의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모습, 백남준의 젊은 작가정신을 닮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예술가로서도,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한젬마.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도전하고자 하는 그녀이기에 앞으로 펼쳐 보일 또 다른 소통의 방식을 더욱 기대하게 된다.
디자인 및 시공 FR디자인(02-3446-5113, www.frdesig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