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괴로운 과보 있는가?
내세의 지옥행보다 무서운 것.
암수 두 마리 집비둘기가 한 둥지에서 살면서
잘 익은 열매를 열심히 날라 들였습니다.
그런데 둥지가 열매로 꽉 찰 즈음,
오히려 둥지는 널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건조한 대기 탓에 열매들이 말라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 수비둘기는
암비둘기를 의심 하면서 화를 내며 따졌습니다.
“죽을 고생을 하며 과일을 모아두었더니
어떻게 나 몰래 그걸 먹어 치울 수 있지?”
암컷 비둘기는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난 하나도 먹지 않았어. 열매가 저절로 줄어들어서 자리가 나게 된 거야.”
하지만 화가 날 대로 난 수컷은 암컷을 부리로 쪼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토록 줄어들 수가 있단 말이야?”
결국 수컷은 암컷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큰 비가 내리자
열매는 습기를 머금고 다시 불어나 예전처럼 둥지를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수컷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녀의 말을 믿었어야 했는데……”
수비둘기는 구슬피 울면서 그녀를 목이 쉬도록 불렀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간 거니? 다시 돌아와.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제 손으로 죽여 버린 뒤라 아무리 이름을 불러대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백유경> 95번째 이야기 홧김에,
욕망에 눈이 가려 악행 저질러
산봉우리 검은 그림자처럼 평생 드리워
우리들 범부중생은 착한 일만 하고 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홧김에 또는 욕망에 눈이 가려 무슨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그릇된 일을 해서 그에 따르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야
인과응보요, 자업 자득이니 달게 받는다 쳐도
우리들 중생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세의 지옥행과 같은
괴로운 과보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현재, 그가 죽기 전까지 치러야 할 괴로운 과보가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 사실 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 세 가지 가운데 첫 번째 괴로운 과보는,
지은 죄가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일인가를 토론하고
있을 때면 언제나 ‘이 사람들이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불안에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괴로운 과보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에게 처벌이 가해지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게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은 죄가 있으니
누군가가 재판을 받고 벌금을 물고 형벌을 받는 소식을 접할 때면
마치 자신에게 지금 그런 형벌이 가해진 것처럼
불쾌해지고 씁쓸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지은 죄가 있는 사람이 겪게 되는 세 번째 과보는
시시 때때로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엄습하여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나
혹은 잠시 쉬려고 의자에 등을 기대는 순간이면
그때마다 예전에 저지른 잘못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를 짓누릅니다.
“마치 커다란 산봉우리 그림자가 저녁 무렵에 지상에 길게 드리우는 것처럼”
지은 죄가 있는 자는 자기 잘못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우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울부짖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꼭 그렇게 일을 처리 했어야 했나?
조금만 참았더라면, 조금만 너그러웠더라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고
지금쯤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마지마 니카야> 129번째 경
저물녘 마을에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면 그 쓸쓸한 풍경으로
하루를 마감하듯이 잘못을 저지른 이는 하루해가 저물 무렵
또는 인생의 황혼녘에 후회와 불안과 자책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 말고
달리 할 것이 없습니다. 암비둘기를 부리로 쪼아 죽인
수비둘기의 여생은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자탄하는 일밖에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처럼 괴로운 과보가 또 있을까요?
이미령 / 불교신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