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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됐고,. 탁배기나 한 상 내오게. 자반고등어라도 한 손 굽고.“
정사령 놈의 말에 주모가 작정한듯 나섰다.
“외상이요? 공짜요?”
“자네허고 나허고 새삼시레 그런 걸 묻는가?”
정사령 놈의 목소리가 뜨악했다.
지금껏 기분 좋게 술대접을 받아본 일은 없지만, 주모가 술값부터 따지고 든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상도 안 되고, 공짜 술도 주기 싫어서 글만요. 헌깨 정 술얼 자실라면 선금얼 주씨요.”
“선금? 아, 주제. 얼매면 되겄는가?”
“서푼만 주씨요.”
“서푼? 먼 술값이 그리 비싼가?”
“비싸기넌요. 탁배기 한 되박에 자반고등어 한 손이면 닷푼언 받아야허는 것얼 겨우 본전만 받는구만요. 흐기사 한번도 술값얼 내고넌 술얼 안 자셔봤을 것인디, 술값이 싼지 비싼지나 알겄소.”
주모의 뼈있는 소리에 정사령 놈이 잠잠해 졌다.
“저 자구가 술값얼 주겄다는 것얼 본깨, 색시한테 한 눈에 반했구만. 저 자구가 계집 욕심언 또 많다네.”
“물건도 션찮다면서요?”
“원래가 물건 부실헌 사내가 계집탐언 더 헌당깨. 꽃값이나 제대로 주면 누가 머란가? 꽃값도 안 줌서 껄떡거리기만 헌깨 존 소리가 안 나가제.”
주모가 구시렁거리면서도 자반고등어를 굽는다, 탁배기를 병에 담는다, 하고 서둘렀다.
그러다가 옹녀 년을 돌아보며 물었다.
“헌디, 자네, 산내골에 산다는 말이 참인가? 아까막시 첨에넌 자네가 나헌테 함양 주막에 있었다고 안 했능가? 헌디, 이생원이 몰라보는 것얼 본깨, 그 말도 그짓말이었고,
어디서 왔능가? 산내골에 산다는 말이 참인가? 거그넌 변변헌 주막도 없는디, 주막이라고 해봐야 마천 삼거리 주막이 있는디, 거그 있었능가?”
“아, 어디 있었으면 머허실라요? 그냥저냥 쪼깨 있다가 훌쩍 가뿔면 그만일 것인디요.”
“훌쩍 가뿔면 그만이라고? 여그 온지 한나절도 채 안 되었는디, 펄새 역마살이 도졌능가?”
주모가 화들짝 놀란 낯빛으로 돌아보았다.
사내놈들의 전대를 비울 쓸만한 계집인가 싶었는데, 만 하루도 못 되어 떠날 궁리인가, 싶어 안달이 난 것이었다.
“모르제요. 이 년의 역마살이 근당깨요. 궁합이 안 맞으면 한 나절도 못 되어 궁뎅이가 들썩거린당깨요.”
“그러지 마소. 내 자네가 섭섭케넌 안 헐 것인깨, 다먼 며칠이라도 있어보게.”
“글씨요이. 이 년 속얼 이 년도 모른당깨요.”
옹녀 년이 일부러 시들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어올 때에야 어떻게든 정사령 놈을 만날 때까지는 버텨보자는 생각에 며칠이라도 있을 것 처럼 했지만, 정사령을 만난 이상 시간을 끌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정사령 놈을 산내골 제 년의 집으로 끌어들이기만하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내라면 서방님만으로도 족했다.
물건도 물건같지 않은 이생원이나 정사령놈한테 거짓 감창소리를 내면서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까짓 엽전 몇 푼이 탐이 나서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이생원을 봐서라도 며칠만 참게. 저 양반이 자네 살맛을 봤응깨, 곡석가마니에 쥐새끼 드나들듯이 드나들 판인디, 자네나 내가 맘만 묵으면 쌀 몇 가마니는 앉은 자리에서 벌 수도 있는디, 그 횡재를 어찌 놓친다는 말인가?”
“이년이 시방 간다고는 안 했소. 갈지도 모른다는 소리제, 간다는 소리는 아니었소.”
“고맙구먼, 고마워. 자네가 탁배기 한 되박을 팔아 이문이 반 푼 남으면 그 중에 반은 자네헌테 줌세. 헌깨, 간다는 소리넌 말게. 내 간이 철렁 니려앉았구만. 알겄능가?”
“나럴 나도 모른당깨요. 시방 맘이사 아짐씨허고 오래오래 있고 싶소만, 병 든 서방님이 참말로 나럴 기달리는구만요.”
“서방님이 있기는 참말로 있는겨? 이생원허고 수작얼 본깨 아니든디?”
주모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주막에서 만낸 남정네였제요. 맴씨가 고와 한 평생 살라고 몸얼 ?겼는디, 한 이불 덮은지 일년만에 병들어 누웠구만요.”
“자네 팔자도 참, 죽어라, 죽어라, 허능구만.”
주모가 혀를 끌끌 찰 때였다.
정사령 놈이 아, 주모 멋허능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 됐소. 쪼깨만 지달리씨요.”
주모가 서둘러 술상을 챙겨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정사령하고 술을 함께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값을 선금으로 받기 위해서였다.
이내 방안에서 술값부터 주씨요, 하는 주모의 목소리와 자네가 나헌테 이럴 수가 있능가, 하고 불퉁거리는 정사령 놈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결국 정사령 놈이 술값을 치뤘는지 이 년도 어지간만허면 나리헌테 이러겄소? 안 이러면 목구녕에 풀칠얼 허게 생겨서 그요, 하고 주모가 너스레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정사령 놈의 연장이 제대로 밭을 갈 수 있어도 주모가 저리 푸대접일까, 하고 옹녀 년이 생각하는데 정사령 놈이 서방님 얘기를 꺼냈다.
“변강쇤가, 똥강쇤가 허는 놈 소문언 없등가?”
“없등만요. 아, 그 사람 소문을 들으면 내가 젤 먼첨 나리헌테 통기허겄다고 안 했소?”
"찢어죽여도 션치 않을 놈, 주모가 그놈 있는디럴 알아가꼬 나헌테 알켜주면 내가 쌀가마값이나 내어놈세. 알겄능가? 손님이 오면 귀럴 쫑긋 세우고 잘 들어두게이.”
“여부가 있십니껴? 안 그래도 글고 있구만요. 헌디, 변강쇠 그 사람이 하늘로 솟았능가 땅으로 꺼졌능가 봤다는 사람이 없구만요.”
주모의 말에 옹녀 년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전네라는 정사령 놈의 마누라한테까지 숨긴 일을 새삼 사내놈환테 까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으면서도 싸디 싼 것이 계집의 입이라고 부지불식간에 그 사내가 어디어디에 산다고 헙디다, 하는 말이 나올까 가슴이 오마조마했는데, 주모가 말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옹녀 년이 언제 쯤이나 정사령 놈이 제 년을 부를까 하마하마 기다리고 있는데, 정사령이 부억에 있는 계집은 어찌 된 것이냐고 묻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까막시 말허지 않습디까? 병 든 서방님얼 뫼시고 사는 불쌍헌 여자라고라. 헌디. 왜 그걸 물으시요?”
주모가 옹녀 년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불쑥 높였다.
“눈 밑이 거무스럼허고, 허리가 호리낭창헌 것이 사내깨나 밝히겄든디, 서방이 병들었다면 밤마다 독수공방이겄구만.”
"왜라? 저 색시가 독소공방허면 나리가 풀어줄라요?“
“못 헐 것도 없제. 몸얼 팔러 나온 것도 아니람서? 어뜬가? 내가 몇 푼 줄 것인깨, 술시중이나 들라고 해볼랑가?”
정사령 놈의 말에 주모가 대꾸했다.
“내 주막에 설거지만 허기로 들어왔소. 아매도 그런 말얼 허면 십리넌 도망얼 가뿌릴 것이요.”
“누가 잡아 묵간디, 도망얼 가? 말이나 한번 건네 볼랑가?”
“허면 얼매럴 주실라요? 쪼깨 전에 함양의 이생원이 닷냥얼 준다고 해도 고개럴 내젓습디다. 헌디, 몇 푼이라고라?”
“시방언 가진 것이 없응깨, 외상으로 허면 안 되겄능가? 낼이라도 내가 한 댓 냥 가져다 줄 것인깨, 불러나 보소. 자네 입담에 안 넘어갈 계집이 있겄능가?”
정사령 놈의 말에 주모가 잠시 미적거렸다.
어차피 옹녀 년이 꽃도 파는 계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예, 그럽시다, 하고 나설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옹녀 년은 주모가 그것은 안 된다고 펄펄 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모가 무어라고 하건 계집 탐 많은 정 사령 놈 쯤 후려치는 것은 누워 떡 먹기 보다 쉬운 일이었지만, 될 수 있으면 함양의 이생원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정사령 놈과 각단을 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