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0편을 보면서 우리가 다윗과 같은 고백과 찬송을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고백이 자신에게 감응되어 옵니다. 이 다윗의
고백과 간증을 자신의 고백과 간증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늘에 속한 의인입니다.
4절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송하고 감사하라고 명합니다.
찬송하고 감사할 이유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할 이유 첫째는 1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원수 마귀에게서 구원하신 것을 찬송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은총을
찬송하는 겁니다(요5:24-25, 롬5장) 아담 안에서 죄와 사망을 안고 마귀의 종이
되어 영원한 불 못으로 끌려가던 우리를 그의 십자가로 그분 안으로 끌어내셨습니다.
그 다음에 찬양할 이유는 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고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치료하는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홍해를 건넌 후 3일 만에 마라의 쓴물을 만나 온 백성이 낙망하고 있을 때에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뭇가지를 던지도록 해서 그 물을 단물로 바꾸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로 나타내셨습니다(출15:2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주이시며 치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와 중풍병자, 그리고 열병을 치료하시고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마8:17)
지금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살아계셔서 구원을 베푸시며 치료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십니다.
속병은 뇌가 망가져서 오는 것인데 그리스도 안으로 끌어내셔서 생명의 성령으로
영의 생각을 하게 하시므로 생명과 평안을 주셔서 뇌를 고치시고 골수를 윤택하게
하시면 온 몸이 치유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뇌를 고치면 병은 낫게 됩니다.
생각이 뇌이므로 마음을 지켜라(잠4:23) 심령으로 병을 이긴다(잠18:14)고 하십니다.
세 번째 주를 찬양할 이유는 3절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와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망과 음부에서 구원하여 그와 함께 하늘의 보좌까지 끌어 올리셨습니다. 따라서
영원한 음부인 둘째 사망에 내려가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하늘에 속한 성도는
불 못은 관광도 못합니다. 이미 우리를 사망에서 끌어내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주셔서 그 영광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사는 동안 고난과 환난은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5절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 범죄함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아나신 주님께 이끌려 그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성도에게도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십니다(롬5:3-4)
그 과정을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지만 그 은총은 영원하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환난이 왔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환난 중에는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8-10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듯 하는 절망의 무서움 가운데서 간구하는 다윗을 봅니다. 육신을 철저하게 포기하게
하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는 사람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울도 아시아에서 환난으로 인해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망 선고를 받은 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부르짖어야 함을 알게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고후1:9)
11절은 이와 같은 부르짖음에 대한 기도의 응답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그래서 슬픔을 춤으로 바꾸시고 베옷을 기쁨의 띠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빌4:6-7절 “아무것도 염려하기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십니다.
기도와 간구와 찬양으로 인해 마음과 생각을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과연 어떠한 은혜와 과정과 하나님의 집념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내용을 자세하게 듣고 체화 되어 있어야만 이와 같은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의 교회의 비밀과 충만을 지나 교제에 이른 교회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난을 당하는가?
그 이유는 12절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창조의 주요,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롤 말미암아
생명의 성령이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지만 은총은 평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울음의 저녁이지만 기쁨의 아침이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주를
찬양하게 하십니다. 성도의 기도의 응답은 언제나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임하십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영의 생각을 하므로 생명과 평안(롬8:6)을 주셔서 노래하게 하십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