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지지 말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8-10).
본 문단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세 절 안에 5번이나 등장하고 있어 강조적입니다. 기독교윤리의 강령(綱領)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12장에서도,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12:9) 하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끝을 맺었고, 14장에서도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14:15) 하고, 역시 사랑을 거론합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完成)이라”(10)고 선언합니다.
①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상) 합니다.
㉠ “사랑의 빚 외에는” 하고 “사랑”을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사랑의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사랑의 빚은 아무리해도 갚을 길이 없는 영원한 부채라는 뜻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사도가 말씀하려는 강조점은 “사랑의 빚”은 불가피하다 해도 그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려는 것입니다.
㉡ 이는 꾸지도 말고, 꿔주지도 말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교조주의자(敎條主義者)가 되어서 본문의 뜻을 곡해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 37:21), 즉 꾸었으면 빚을 진체로 있지 말고 반드시 갚으라는 그런 뜻입니다.
② 이를 문맥적으로 보면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7) 한 다음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하는 문맥입니다. 그렇다면 납부해야할 세금(稅金)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국가에 빚을 지는 행위요, 개인에게 갚아야할 외상값을 갚지 않는다면 빚을 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 여러분 중에는, “사정을 모르셔도 너무나 모르십니다. 누구인들 빚을 지고 싶어서 집니까?” 하고 말하고 싶으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다. 사도가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라”(살후 3:8) 함과 같이 부지런히 일을 한다면,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딤전 6:8) 한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짊어지고 있는 부채 가운데 대부분은 안 질수도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 바울은 이처럼 부지런히 일을 해가면서 또한 부지런히 전도하였습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빚을 진 것은 아닙니까?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하니”(살후 3:11) 한대로, 살림을 규모 없이 했기 때문에 빚을 질 수도 있습니다. 명심해야할 점은,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잠 22:7)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주신 자유인가를 생각 한다면 어찌 빚의 멍에를 짊어질 것입니까?
③ 에베소서 4:28절에는,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고 말씀합니다.
㉠ 열심히 일해서 나누어 주며 삽시다. 도와주면서 삽시다. 국가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지 말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십시다. 사도는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 말씀을 하는 사도의 마음속에는 죽을 때까지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이 있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물질적인 빚은 지지 말아야 하되 사랑의 빚은 지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빚 외에는”,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④ 사도는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리로 빨려들어 가듯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8하) 하고, 빚 이야기를 하다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전환을 합니다.
㉠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9) 합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성 폭행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살인을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고”(8하),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9하) 합니다. “다 들어있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하나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서 5;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즉 다 들어있다고 말씀합니다.
㉢ 야고보서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약 2:8)이라 말씀하고, 주님은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랑” 외에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반대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계 2:4)면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⑤ 10절은 본 문단의 결론인데,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完成)이니라”(10)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면 어떤 의미가 되는가?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다 지켰다 해도, 만일 “사랑”이 없다면 모두 범한 것이 되고, 형식적(形式的)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종교인이라 해도 만일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고전 13:2)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 율법이란 “이곳을 넘어가지 마시오” 하고, 처 놓은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 울타리를 넘어가지 아니한 것으로는, 문자는 지켰다 해도 율법의 정신은 지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하고 말씀합니다.
㉢ 다시 말하면 비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채워야 하는 것, 이것이 “이루는 것이요, 다 들어있는 것이요,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념해야할 점은 이것이 율법의 본래적인 정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빠지고 난 율법은 텅 빈 깡통에 불과합니다.
⑥ 그런데 본래부터 바울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 자부하고 있던 바리새인 당시에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점을 전연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증거 하지 않음으로 율법을 다 이룬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 마가복음 10:17-22절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도,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 한 것이 있으니”, 그렇다면 그 부족한 한 가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고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어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합니다.
㉡ 이런 종교적인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는 간음, 살인, 도적질 같은 짓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그들은 남에게 베풀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 사람, 네 것은 네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일 따름입니다.
⑦ 그런 사람은, “피차 사랑의 빚”(8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줄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 “나는 간음, 살인, 도적질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빚도 지지 않았다,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다”, 그러한 바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가 되는 날이 온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충만해졌으며, 사랑의 빚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⑧ 드디어 사도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完成)이니라”(10) 하고 외치기에 이른 것입니다.
㉠ “완성”이란 말은, “풀레로마”라는 말인데 채운다,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사랑만이 채워줍니다. 사랑만이 충만케 합니다. 사랑만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형제여, 형제는 물질만 풍부한 채 영적으로는 가난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물질을 나누십시오. 형제는 육적인 빚에 얽매어 영적인 자유(自由)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피나는 노력을 하여 빚에서 해방을 받도록 하십시오.
㉢ 그러나 죽을 때까지 갚는다 해도 못 갚을 빚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그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