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선물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2019년 새해를 맞는 겨울이 그랬다. 가족들을 두고 친구들과 긴 여행을 떠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혼초부터 노령의 시어머님이 16년 동안 함께 하셨고, 둘째가 걱정되어 엄두도 못 냈던 일이었다. 고교 졸업 후, 6개월간 교양강좌를 들으며 가까워진 6명 모임이 이어져온 지 30년이 넘었다.
2019년 설날 연휴에 모임 친구들과 3박 5일로 다낭에 다녀왔다. 가족들이 내가 없는 동안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먹거리며 소소한 것들의 준비로 바빴다. 퇴근 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느라 며칠을 무리한 바람에 여행 내내 심하게 아팠다. 조금 적응하려니 돌아오게 되어 여행 가기 전에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연초부터 집을 비워서 가족들에게 미안해 그다음 주에 제주도라도 다녀오자고 했더니 모두 대환영이었다. 계획에 없는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다낭에서는 여름 속을 체험처럼 보내고 왔는데 2월의 제주도는 몹시 추웠다. 다낭의 곳곳을 여행하면서도 언뜻언뜻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따라다녔다. 새가슴이라서 없는 걱정도 당겨서 한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제주도에서는 가족 모두 내 눈앞에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겨울인데도 유채꽃이 핀 섭지코지, 아쿠아 플라넷, 만장굴, 김녕해수욕장, 오름, 성산봉, 유리공원, 눈 쌓인 1,100 고지습지 등 그 해의 제주도 여행은 큰애에게 여행 기획과 결산까지 숙제를 일임했다. 큰애가 짠 동선에 맞춰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다녀왔던 세계적인 휴양지 다낭도 좋았지만, 우리나라 제주도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딱히, 비교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만에 여름과 겨울을 여행하는 터라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내 나라라는 생각에 이미 기울어진 잣대겠지만, 제주 바다의 푸르고 출렁이는 몸짓도 우리를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섭지코지는 재사가 많이 배출되는 땅의 형세라는 의미의 섭지와 곶을 뜻하는 코지가 합쳐진 것이다. 신양해수욕장에서 2km에 걸쳐 바다를 향해 돌출되었다. 높이 30m, 둘레 15m로 외돌개 형상의 선녀바위가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용왕님의 막내아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선 채로 돌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어 선돌바위라고도 불린다.
유홍준 작가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도 편에서 "오름을 보지 않으면 제주도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오름 견학을 추천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오름을 꼭 가보자고 작정하고 비교적 큰 오름이라는 두 곳을 찾았다.
오름은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분포하는 소형 화산체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데 그 수는 360개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들 오름은 형성연대가 오래되지 않았고 빗물의 투수율이 높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여행 동선에 맞춰 검색해 비교적 크고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을 견학했다. 오름을 오르는 마음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제주도 전설에 의하면, 거인 선문대할망이 육지까지 다리를 놓으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한 줌씩 떨어진 흙들이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오름은 민속신앙의 터로 신성시된다는 설명을 읽고 숙연해졌다. 용눈이오름은 비교적 완만했고 능선이 아름다웠다. 보호구역이라 노루들이 뛰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은 경사가 있어 약간 힘들었지만 제주의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감탄했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멋진 풍경이었다.
길이 20Km에 달하는 미케비치의 고운 모래사장과 시원하고 깨끗한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의 김녕해수욕장은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에메랄드빛 잔잔한 해변은 꿈꾸는 듯해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연초록 바다는 손을 모아 물을 뜨면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 가장 길다는 하이번터널(6,280m) 보다, 세계문화유산인 만장굴의 기묘한 용암 흔적들이 더 멋졌고,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20여분이 걸리는 바나산 정상은 한라산 1,100 고지습지의 하얀 눈이 쌓여 아름다웠던 풍경이 여름과 겨울처럼 짝꿍으로 겹쳐 기억되었다.
그해 겨울은 다낭의 여름과 제주도의 겨울여행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참 따뜻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추억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한 해를 좋은 기억으로 시작할 수 있으니 그 또한 귀한 선물이다.
섭지코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107
다랑쉬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산 6
첫댓글 그 해 겨울의 멋진 선물이 기억 속에서 할력을 주고 있구나 싶네요.
눈으로 보는 듯 자세히 펼쳐준 여행의 즐거움 덕분에 읽는 동안 기분이 좋았어요.
우리는 세월 안에 기억의 숲을 만들어가면서 살고 있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기억을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기록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행복한 기억은 또 휴가를 그리워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