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진주의 반전 매력, 멜라니 조지아코폴로스
뉴욕의 어느 유명 편집 매장에서 담수 진주의 반을 잘라 슬라이스 형태로 만든 비드 목걸이를 발견했다. 한 번도 진주의 슬라이스 단면이 아름답다 생각한 적이 없기에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이어진 비드의 끝에는 방점을 찍는 18K 옐로 골드 클래스프(clasp)라니! 어딘가 아이러니한 구성과 대범함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런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한 디자이너가 궁금해졌다. 주인공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의 멜라니 조지아코폴로스, 영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다.
그리스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아테네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고대 그리스의 주얼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아트 북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예술은 지금의 그녀를 이룬 밑바탕이 됐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지로 전통적인 주얼리 제작 기법을 익히며 주얼리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던 그녀. 조각을 전공한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는 공간과 3차원에 대한 이해가 늘어 소재를 다루고 표현하는 방법 역시 남다르게 된다. “저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영감은 유기적인 형태와 소재에서 비롯되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진주에 레이저로 구멍을 내거나 반을 잘라 속을 드러내고, 여러 색의 진주를 색다른 재료와 매칭하여 현대의 디자인과 기법을 적용하는 방식에 몰두했다.
이 모든 것은 유기적 소재인 진주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미학에 따라 단순하되 구조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전통적인 소재에 신선한 시각을 접목하여 새로운 생명력과 컨템포러리 감각을 부여한 것. 이런 독특한 접근은 런던 패션 위크의 핵심 그룹인 Rock Vault 에 소속될 정도로 극찬을 받았고, 이 후 파리 패션 위크와 라스베가스 쿠튀르 쇼에서 정기적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Rock Vault는 스티븐 웹스터가 이끄는 영국의 촉망 받는 주얼리 디자이너 그룹이다.
그녀의 진주에 대한 열의는 마침내 2013년 일본 진주 주얼리의 대명사 타사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어냈다. M/G Tasaki라는 이름의 컬렉션은 멜라니의 디자인적 재능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타사키의 품질 그리고 장인정신이 만나 시너지 효과가 탄생했다. 타사키의 60년 헤리티지에 그녀만의 모던한 감성을 더한 작업은 완벽한 궁합이었던 것. 특히 컬렉션의 대표작인 팔찌와 목걸이에 사용된 진주 슬라이스는 나무의 나이테를 닮은 모습으로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표면적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진주가 잘린 상태에서는 핑크색의 각기 다른 나이테 모양이 세상 하나뿐인 디자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사키의 고도의 기술과 엄선된 진주 덕분에 슬라이스 기법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녀가 꼽는 M/G Tasaki 컬렉션의 대표작은 사이즈가 작아지는 롱 슬라이스 비드와, 10mm 화이트와 피콕 담수 진주가 짝을 이뤄 하나의 완벽한 구형을 만든 목걸이다. 피콕 담수 진주의 깊고 오묘한 색은 특히 화이트 진주 옆에 두었을 때 흑백의 대비효과로 시선을 사로 잡는다. 더불어 흑도금된 티타늄 체인과 고전적인 진주의 만남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보면 청키한 록 시크(rock chic) 분위기의 멀티 체인 목걸이지만 뒤에서 보면 깨끗하고 우아한 화이트 진주라는 반전을 보여주니 말이다.
이 밖에도 담수 진주를 18K 옐로/화이트 골드 케이스로 반을 감싸거나 케이지(cage) 장식에 넣는 등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진주가 반드시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와 은은한 광택을 자랑하는 진주는 그녀의 손 끝에서 대범하면서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슬라이스 진주에는 ‘멜라니 조지아코폴로스’만의 감성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실험성이 강하지만 철저하게 건축적이고, 때론 조각품 같은 그녀의 주얼리는 독창성이 불분명한 시대에 시원한 하이킥을 날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