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주체로서의 여성
내방가사란?*
내방가사는 중세 피억압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이 기록의 새로운 주체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내방가사가 처음 창작된 16세기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의 중세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 시기 문자 활동은 양반 사대부라는 소수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문자로 기록된 지식과 교양은 이들에게 편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늘 배제되고 소외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이 주도하는 내방가사 창작의 전통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은 양반사대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한글을 자신들의 문자로 삼고, 이를 통해 그들 고유의 문자 활동을 펼쳐나갔다. 한글이라는 민족어가 본격적인 문자 활동의 매체가 되었다는 사실, 중세사회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이 비로소 기록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족어의 부상과 기록 주체로서의 여성의 출현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환을 가장 분명하게 대변하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방가사는 인류 역사에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 중요성을 확보한다.
한글은 민족어로서 가치를 지니지만 한자문화권의 전통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었다. 특히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보편적 질서가 우선시 되던 중세에 한글은 여가를 즐기거나 감정을 노래하는 정도로 향유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내방가사는 한글이라는 민족어를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근대로의 징표를 드러내는 기록물이라 할 수 있으며, 여성들이 한글을 통해 적극적인 기록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에서 세계적 중요성은 더욱 크다.
내방가사 향유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글은 여성들의 언어로 적극 향유되었고, 여성들은 한글을 통해 지식을 쌓고 서로 만났다. 한글을 통한 ‘글하기’는 규방을 넘었고, 담장을 넘었으며,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편지’의 역할을 하였고, 여성들의 고유한 놀이가 되었다. 여성들은 가사를 짓고 베끼면서 만났으며, 한글을 자신들의 언어로 만들었다. 여성들의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한글은 명실상부한 민족어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성들은 한글을 통해 가족과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내방가사를 잘 하는 사람은 문중과 지역에서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가사 창작뿐 아니라 집안과 마을의 중요한 경조사에 필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문중 행사나 지역의 중요한 행사에서 여성들의 가사짓기는 빠지지 않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그때 지어진 가사는 공동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베끼고 돌려 읽는 중요한 문화물이 되었다. 내방가사 창작과 향유는 여성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하였고, 더 나아가 문중과 지역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문화 활동이 되었다.
*낭송과 필사를 통한 집단 기억의 저장*
집단적 문학 활동의 기억 저장소
내방가사는 집단적 문학 활동의 기억 저장소이다. 이러한 문학 활동을 창작 주체들은 ‘글하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이 ‘글하기’라는 행위는 인류문화사의 측면에서 매우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내방가사의 ‘글하기’ 전통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적 문화 활동이다. 인류 문화사에서 문학의 창작과 향유가 집단적 문화 활동의 성격을 띠는 것은 구비문학의 전통, 즉 ‘말하기’의 관습에서는 종종 찾을 수 있다. 제의와 의례의 상황, 집단 노동의 현장에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말하기의 문학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쓰기와 읽기의 문자 활동은 개인적 활동에 머무르며 일회적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내방가사의 글하기 전통은 쓰기와 읽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낭송과 재필사라는 활동을 거친다. 이 과정은 내방가사가 개인의 기억에서 소통으로서의 기록을 거쳐 다시 집단의 기록으로 바뀌는 고유한 전승방식이어서 주목이 필요하다.
낭송은 인류 역사상 매우 오래된 기록 향유의 방식이다. 힌두교의 고대 성전인 베다에 나오는 찬가를 종교적으로 낭송하는 관습은 최소한 3,000년 전부터 행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슬람에는 경전인 <코란> 구절을 전문적으로 낭송하는 쿠라(qurra)가 존재한다. 문학에서도 낭송의 전통은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아이스퀼루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문학이 낭송이라는 형태로 전승되었고, 중세시대 봉건 영주를 찾아 돌아다니던 음유시인들의 활동도 대부분 낭송에 기대어 있었다. 낭송에 기대지 않았다면 인본주의자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 Canzoniere』로 완성된 소네트 형식의 서정시도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문학은 낭송됨으로써 존재하게 되었고, 또한 낭송됨으로써 진보하게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내방가사 향유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낭송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의미있는 전승방식이다. 내방가사는 인류의 전통적 문학 향유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현재에도 구체적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낭송은 개인이 쓴 기록을 공동체가 함께 있는 장소에서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록의 이해를 높이고 기록의 대중화에 다가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기록이 집단기억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변환이 일어난다. 기억이 새로운 기록으로 거듭하고 의미화 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낭송한 중요한 향유방식이 됨을 알 수 있다.
한편 내방가사의 낭송은 필사라는 과정을 통해 다시 각자 개인의 기억으로 확산된다. 낭송된 내용을 그대로 필사할 수도 있지만, 필사의 과정에서 다시 필사자 개인의 의도와 바람을 담아 새로운 버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개인의 기억이 집단 기억으로 집단 기억이 다시 새로운 개인의 기억으로 전환되는 기억의 확산과 수렴 과정이 낭송과 필사를 통해 지속된다.
필사문화에서 필사자와 서술자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사는 텍스트를 변형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글 필사 과정에서 필사자는 텍스트를 베끼는 동시에 다시 쓴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내방가사는 개별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당대를 살았던 공동체의 집단기억의 기록 저장소로서의 가치를 함께 지니게 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기록학에서는 침묵을 통해 배제된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살피는 실천적 자각 속에, 경계 밖의 다른 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정치, 사회적으로 배제된 소수의 대안적 기록화를 지향하고 다양한 소서사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성에 기초한 타자의 인식은 단지 기록 수집 소재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한 사회를 구성하는 아카이브로 인식해야 함을 의미한다’라는 관점을 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방가사는 역사에서 기록하지 않은 배제된 소수의 대안적 기록이 될 수 있다. 특히 다수가 참여하여 공동의 집적물을 만들고, 그것을 박제된 기억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적인 공동의 기억을 기록하고 저장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기억과 기록의 방식은 내방가사의 글하기가 개인의 자족적 글쓰기를 넘어 소통으로서의 기록을 지향하도록 한다. 소통으로서의 기록은 동류 집단 사이에서는 신나는 놀이와 치유로서의 역할을 하고,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 사이에서는 화해와 통합의 역할을 한다. 전자는 화전가류 가사에서, 후자는 문답형 가사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화전가류 가사에 속하는 <덴동어미화전가> 의 경우를 보자. 동류들과 함께 하는 화전놀이에서 덴동어미는 지독히도 불행했던 자신의 서사를 가감없이 풀어놓는다. 이는 자신의 삶을 치유하는 과정이면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동류와 소통하고 그들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내방가사의 글하기는 집단의 놀이와 치유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내방가사 창작은 서로 갈등하는 집단 사이의 새로운 소통 과정이기도 하다. 문중의 딸들과 며느리들은 같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공감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미묘한 갈등의 관계이기도 하다. <갑오열친가>와 <답가>는 이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소통의 과정을 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