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사상(唯識思想)(1)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1. 유가행파란 무엇인가?
인도 대승불교사상의 양대 학파인 유가행파(瑜伽行派)는 서기 2세기경부터 서서히 발전하여 4세기경 아상가(Asa?ga, 無着, 310-390)와 와수반두(Vasubandhu, 世親, 320-420)의 수많은 저술을 통해 정점에 도달하였으며, 이후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사상을 전개하였습니다. [Edward Conze, Buddhist Thought In India,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62), p.250] 이 유가행파의 사상을 유식학(唯識學), 유식사상(唯識思想), 유식불교(唯識佛敎)라고도 부릅니다. 이 유가행파[유가행파(瑜伽行派)를 유식학파(唯識學派)라고도 한다.]의 사상에 대해 2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유식사상의 성립과 전개’를 중심으로 알아보고, 8월호에서는 ‘유식학파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인도에서 유식사상은 중관사상에 대한 부작용을 비판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 의하면, ‘부파불교도들의 실재론적 불교관을 시정하기 위하여 나가르주나(N?g?rjuna, 龍樹)와 그의 제자 아리야데와(?ryadeva, 阿利耶提婆)는 대승경전에서 추출한 공(空)의 교리를 펴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이런 공의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공견(空見)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은 공(空)이다.’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공견(空見) 혹은 공병(空病)이라고 하는데, 공사상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철헌, 『대승불교의 가르침』(서울: 문중, 2008), p.150]
유식학에서는 이러한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현실적인 행동과 삶에 대해 인식(認識)에 근거를 두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식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는 일종의 불교심리학(佛敎心理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식학은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자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을 강조한 것입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175] 일본의 불교학자 오오타 큐키(太田久紀)는 유식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유식불교는, 인간존재의 유한성(有限性)과 인간인식의 한계성(限界性), 심층심리(深層心理)와 거기에 잠겨있는 이기성(利己性)의 실태를 속이거나 타협하거나 하지 않고 정면에서 진지하게 추구하며, 자기를 구하며, 진실한 자기의 모습을 마음의 성찰(省察)을 바탕으로 하면서 탐색하는 것이다. …
‘불교란, 마음의 종교이다’라고 부르기에 가장 적절한 교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월자(超越者)에 의한 구제를 거부한 붓다에게 있어서, 자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방법만이 오직 단 하나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 뒤를 따른 학승(學僧)들도 마음에 대한 성찰을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러므로 불교의 역사는 마음 탐구의 역사이기도 하다. …
성찰을 통해서 심층심리(深層心理), 심층의식(深層意識)이라고도 불릴 의식(意識) 밑의 곳까지 추구해 갔으며 적어도 4-5세기에는 그 심층의 영역이 논리화되었으며 조직화되었고 자각되었다. 그러한 불교의 흐름 속에 한층 더 그 면에 심혈을 쏟은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유식불교이다. 인식의 유한성이나 심층심리?이기성의 문제도 유식불교가 인간탐구의 중요과제로써 정면에 내세운 문제였다. 인간의 인식은 얼마나 존재성이나 이기성(利己性)이나 선입관(先入觀)에 좌우되며 고정화(固定化)되며 협소화(狹小化)되어 있는가. 인간이 어떻게 깊은 어두움의 자기를 걸머지고 있는가. 유식은 그것을 명백히 하려고 하며 그것에 의해서 새로운 자기의 길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太田久紀, 『佛敎의 深層心理』, 정병조 옮김(서울: 현음사, 1985), pp.13-14]
이처럼 유식불교의 성격에 대해 잘 설명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유식사상은 인간의 심리나 인식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내려 간 것입니다. 심리나 인식의 문제를 파고 내려가면서, 심층의식(深層意識)을 자각적으로 파악하며 논리화한 것이 바로 유식입니다. [太田久紀, 위의 책, p.3]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그대로가 유식(唯識)은 아닙니다. 나에 대한 집착과 번뇌를 없앰으로써 비로소 참다운 유식의 세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오직 알음알이다[萬法唯識]’라는 교리를 통하여 아비다르마교학의 유견(有見)과 중관의 무견(無見)을 떠난 중도적인 가르침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철헌, 앞의 책, p.151]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도 심(心)?의(意)?식(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각각의 차이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서 유식학파에서는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요가(yoga, 瑜伽)의 실천을 통해 ‘오직 알음알이(唯識)임의 체험을 깊이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을 유가행파(瑜伽行派, Yog?c?ra)라고 부르며 나가르주나에 의해 만들어진 중관학파와 더불어 인도의 대승불교철학을 대표하는 학파입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1]
2. 유식사상의 성립과 전개
1) 인도의 유식학파
유식학파의 개조(開祖)는 마이뜨레야(Maitreya, 彌勒, 270-350)입니다. 이 마이뜨레야는 미래불로 알려져 있는 미륵보살이 아니고 주로 아요디야(Ayodhya)에서 활약한 실재 인물입니다. 아상가가 편집한 책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변중변론송(辯中邊論頌)』, 『금강반야바라밀경론(金剛般若波羅密經論)』으로 이를 마이뜨레야의 저술로 보며 유식학을 연구하는데 가장 필요한 교리서라 하여 오대부론(五大部論)이라고 합니다. 마이뜨레야의 학설을 바탕으로 유식설을 조직하고 체계화한 사람은 아상가와 그의 동생인 와수반두입니다.
아상가는 『섭대승론(攝大乘論)』, 유가사상의 내용을 조직한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과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나가르주나의 중론사상을 담은 『순중론(順中論)』 등을 지었습니다. 와수반두는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과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등을 지어 유식사상을 정밀한 체계로 정리하였으며, 『십지경론(十地經論)』 · 『법화경론(法華經論)』 · 『정토론(淨土論)』 등을 지어 중국의 대승불교 사상의 교리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와수반두 이후 5-6세기 날란다대학을 중심으로 많은 논사를 배출하면서 유가행파는 구아마띠(Guamati, 德慧)와 스티라마띠(Sthiramati, 安慧)를 중심으로 하는 무상(無上)유식파와 디그나가(Dign?ga, 陳那, 420-500)를 중심으로 하는 유상(有相)유식파로 나뉘게 됩니다.
디그나가는 5세기 후반에 불교의 논리학을 확립했습니다. 이전의 오분작법(五分作法)에 대해 주장명제[宗], 이유명제[因], 실례[喩]의 삼지작법(三支作法)을 확립하여 이를 신인명(新因明)이라고 합니다. 디그나가의 학설은 인도철학 중의 논리학파인 니야야(Ny?ya, 正理派)학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상유식파를 크게 일으킨 인물은 다르마빨라(Dharmap?la, 護法, 530-561)로 와수반두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 대한 주석서인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저술하였으며, 7세기 중엽에 다르마끼르띠(Dharmakirti, 法稱)는 디그나가의 사상을 계승하였습니다.
2) 중국의 유식학파
중국에 유식학은 세 차례에 걸쳐 들어오면서 지론종(地論宗)?섭론종(攝論宗)?법상종(法相宗)의 각기 다른 종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첫째, 지론종(地論宗)은 보리류지(菩提流支)가 508년에 『십지경론(十地經論)』을 번역하여 이룬 학파입니다. 식(識)을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마나식(末羅識)?아리야식(阿梨耶識)의 여덟 가지로 나누었으며, 앞의 일곱 가지 식은 번뇌가 있는 거짓 인식[忘識]이고, 여덟 번째인 아리야식이 깨끗하고 참된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4]
둘째, 섭론종(攝論宗)은 진제(眞諦)가 563년에 『섭대승론(攝大乘論)』을 번역하여 이룬 학파입니다. 식(識)을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아다나식(阿陀那識)?아리야식(阿梨耶識)?아마라식(阿摩羅識)의 아홉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이 가운데 앞의 여덟 가지 식은 번뇌가 있는 거짓 인식[忘識]이며, 아홉 번째의 아마라식은 깨끗하고 참된 마음으로 진여성(眞如性)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4]
셋째, 법상종(法相宗)은 현장(玄?)이 인도에서 유학하고 645년에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의 주석서를 가져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하여 이룬 학파입니다. 식(識)을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마나식(末羅識)?아뢰야식(阿賴耶識)의 여덟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앞의 일곱 가지 식은 거짓 인식[忘識]이고, 여덟 번째 아뢰야식은 그 자체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마나식에 의해 집착되어진 상태이므로 거짓 인식[忘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4]
이 가운데 법상종의 사상이 규기(窺基, 632-682)에 의해 정리되었고 널리 보급되었으며, 규기가 자은사(慈恩寺)에서 거주하였으므로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의 원측(圓測, 613-696)은 중국에 들어가 현장의 강의를 듣고 모든 면에서 규기보다 뛰어났으며, 여러 유식학설을 종합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원광(圓光) · 자장(慈藏) · 원효(元曉) · 의상(義相) · 태현(太賢) 등이 유식에 대한 공부를 하였으며, 신라의 유식학은 일본으로 전해져서 일본 유식학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5]
3. 유가행파의 문헌자료
유식사상은 『해심밀경(解深密經)』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소의경론으로 삼아 전개된 사상체계입니다. 마이뜨레야(Maitreya, 彌勒)의 저작으로 전해오는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과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아상가(Asa?ga, 無着)의 『아비달마집론(阿毘達磨集論)』과 『섭대승론(攝大乘論)』을 거쳐 와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 이르러 완벽한 사상체계가 갖춰졌습니다. [이종철,「일본의 구사학 · 유식학 연구현황 개관」, 한국유학생 인도학 불교학 연구회 편, 『일본의 인도철학불교학 연구』(서울: 아세아문화사, 1996), p.350] 이러한 문헌들의 정보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해심밀경(解深密經, Sandhinirmocana-s?tra)』은 ‘붓다의 깊고 은밀한 가르침을 해석한 경’이란 의미로 현장(玄?)이 647년에 번역하였습니다. 유가행파의 사상이 뚜렷이 나타나는 최초의 경전으로 이전부터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내용들을 통합한 것입니다. [이철헌, 앞의 책, p.155]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Yog?c?rabh?mi)』은 요가행자의 실천 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논서입니다. 이른바 유가행을 17단계로 나누어 해설한 ?본지분(本地分)?에 ?섭결택분(攝決擇分)?, ?섭사분(攝事分)?, ?섭이문분(攝異門分)?, ?섭석분(攝釋分)? 등의 사부(四部)를 더한 논서입니다. 티베트의 전승에 의하면 이 오부(五部)는 각각 독립적인 작품으로 모두 아상가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현장(玄?)이 648년에 번역하였는데, 100권에 이르는 방대한 논서로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사상적 원천입니다. 티베트의 전승에 다르면 아상가가, 중국의 전승에 따르면 마이뜨레야가 이 논서를 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저서라고 보기보다는 집단적인 편찬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본지분(本地分)? 가운데 ‘보살지(菩薩地)’는 단독 경전으로서 유통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역대장경에 남아있는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구나발마(求那跋摩)가 번역한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등이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유가사지론』 전체의 산스끄리뜨어 원전은 없지만 ‘성문지(聲聞地)’ ‘보살지(菩薩地)’ 등 ?본지분(本地分)?의 상당부분이 산스끄리뜨어 원문으로 회수돼 있습니다. [이종철, 앞의 글, p357]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Mah?y?nas?tr?la?k?ra)』은 대승경전을 장엄하는 문학적 방식을 통해 대승의 유식사상을 천명하려한 체계적인 논서입니다. 본송(本頌)과 와수반두의 주석이 산스끄리뜨어로 남아 있습니다. [이종철, 위의 글, p.353]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Madhy?ntavibh?ga)』는 유무(有無)의 양변(兩邊)을 떠난 ‘중(中, madhya)’ 즉 반야경의 공사상을 유식사상의 입장에서 해명한 논서입니다. 본송(本頌)과 와수반두의 주석 및 스티라마띠(Sthiramati, 安慧)의 복주(復註)가 산스끄리뜨어로 남아 있습니다. [이종철, 위의 글, p.354]
『아비달마집론(阿毘達磨集論, Abhidharmasamuccaya)』은 아비다르마불교에서 다룬 법(法, dharma)의 체계를 유식사상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논서로 ‘유식적 아비다르마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산스끄리뜨어 원전은 남아 있지 않으나 상당부분이 산스끄리뜨어로 회수돼 있습니다. [이종철, 위의 글, p.358]
『섭대승론(攝大乘論, Mah?y?nasa?graha)』은 유식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으로 옛날부터 유식학을 배우는 학인들 사이에서 특히 중시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진제역(眞諦譯) 『섭대승론』에 의거해 섭론종(攝論宗)이 형성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저서입니다. 유식설에 근거한 보살의 수행 단계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알라야식(?layavij??na)과 삼성설(三性說)이 융합돼 있는 점은 『섭대승론』의 특징이기도 해 일찍부터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산스끄리뜨어 원전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주로 티베트 번역에 의존해서 원문을 복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종철, 위의 글, 358]
와수반두가 지은 저서는 『석궤론(釋軌論, Vy?khy?yukti)』[『석궤론(釋軌論, Vy?khy?yukti)』은 대승의 가르침이 불설이 아니라는 부파교단의 ‘대승비불설론’에 대해 이를 체계적으로 비판하며 유식사상의 관점에서 종래의 아함경을 포함한 대승경전을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경전의 해석학적 규범을 제시한 독특한 텍스트로 아함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산스끄리뜨어 원본과 한역도 남아있지 않고 티베트역본만 현존한다.〈이종철, 위의 글, p.361〉], 『성업론(成業論, Karmasiddhi)』[『성업론(成業論, Karmasiddhi)』은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의 업설(業說)을 비판하고 유식사상에 입각한 업론을 정립한 텍스트로 와수반두의 업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산스끄리뜨어 원본이 없고 티베트역과 한역만 현존한다.〈이종철, 위의 글, p.362〉], 『연기경석(緣起經釋, Prat?tyasamutp?da-vy?khya)』[『연기경석(緣起經釋, Prat?tyasamutp?da-vy?khya)』은 『연기경(緣起經)』에 대한 와수반두의 주석이다. 유식사상에 입각한 와수반두의 연기관(緣起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논서이다.〈이종철, 위의 글, p.363〉],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Vi??atik?-v?tti)』,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Tri??ik?-k?rik?)』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유식이십론』은 외부의 객관적 존재가 우리의 인식대상이라는 외계실재론에 근거한 여러 학설을 비판하여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의의를 천명한 소론(小論)입니다. [이종철, 위의 글, p.363] 와수반두의 마지막 저서로 알려져 있는 『유식삼십송』은 전통적으로 유식학파의 강요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유식이십론』이 파사(破邪)의 입장에서 주로 타학파의 이론체계의 허점을 지적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유식사상을 천명했다고 한다면, 『유식삼십송』은 현정(顯正)의 입장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유식의 대의(大義)를 짤막한 시 속에 응축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종철, 위의 글, pp.354-365] 그 외에 유식사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다르마빨라(Dharmap?la, 護法, 530-561)가 지은 『성유식론(成唯識論)』입니다. 이 책은 와수반두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서입니다.
앞에서 유가행파는 중관학파를 극복하기 위해 태동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관학파와 유가행파는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드문 경우에 있어서만 대립합니다. 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는 그들의 사상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차이점은 해탈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데 있습니다. 중관파에 있어서는 ‘반야(般若)’로써 충분하였고 따라서 그들은 ‘선정(禪定)’에 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유가행파는 ‘삼매(三昧)’의 체험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전자는 아비달마적 전통에서부터 발전되어 온 날카로운 분석에 의해 세계를 해체시키려 하였고, 후자는 전통적인 삼매의 수행법에 의해 일체의 세간으로부터 마찬가지로 벗어나고자 하였습니다. [Edward Conze, op. cit., p.251]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78호, 2010년 03월호, pp.10-12 - |
출처: 팔리문헌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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