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제주청소년 문학 한마당’을 보고 요즘 고교생들은 불행하다고 한다. 틈을 내어 마음껏 놀아보지도 못하고, 놀 장소도 없이 그저 입시를 위한 강행군뿐이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 오후 6시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잠시 틈만 내어주면 이렇게 멋있는 젊음의 향연을 벌일 수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그들이 마련한 잔치에서 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길 수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하고 제주작가회의와 문학동아리 ‘시혼’이 주최한 이 행사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어 그렇지 않아도 요즘 쇠퇴기에 들어섰다는 문학도 얼마든지 빛나는 미래가 있겠다 싶은 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시혼’에서는 이번 행사를 기념해서 기념 문집 ‘그대가 그리워 미소를 짓는다’라는 시집을 내 놓았는데, 여기 실린 시들은 조금은 설익었지만 풋풋한 향기가 나는 작품을 학교마다 하나씩 고른 것이다. ‘시혼’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제주시내 고교생 문예반 연합 동아리로서 각 학교에 시화전이나 문학의 밤이 열렸을 때 참가하여 서로 격려하고, 해마다 한 번씩 모여 이런 잔치를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회장단이 모여 스스로 대본을 써 연습을 하고 연출과 출연을 하며 작품을 모아 문집을 만들면서 시낭송 할 학생을 뽑는 등 순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연출한 무대를 선보인다. 여기에 참가한 관객들도 문예반 학생이나 친구들이어서 조금의 실수가 오히려 더 인기를 끌게 되는 부담 없는 잔치가 되는 것이다.
♧ 그대가 그리워 미소를 짓는다 - 동지세미 제22기 진성현(남녕고) 잠자리에 들 때면 절로 드는 그대 생각,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달콤한 꿈에 젖어든다 내 마음을 잘라 그대에게 드린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고 또 안타깝지만 행복에 겹다 그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행복이 끝내 나를 괴롭게 하겠지 허나 바보 같은 난 그대가 그리워 미소를 짓는다
♧ 비밀 - 글기둥 24기 송동현(대기고)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마세요 보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두근거리는 이름도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밤이나 낮이나 늘 내 곁에 머무는 숨결도 차마 밝힐 수가 없어요 꿈길에서 살짝 앉았다가 수줍어 귀밑까지도 붉어지는 사람도 절 대 말할 수 없어요 사랑은 그대와 나만 아는 비밀 하나 만드는 것
☆ 작은 별 - 문예부 28기 강수비(신성여고) 1 내가 그대의 바다에 떠 있을 때부터 한없이 내게 건내 주던 그대의 사랑은, 하늘에 박힌 빛나는 별과 같았다. 부지런한 꽃이 피었다 지기를 여러 번 나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고(苦)를 녹여주는 따뜻한 별빛은 내겐 또 하나의 그늘이었다. 접동새 슬피 울고 소쩍새 훌쩍일 때 나의 작은 별 하나가 눈물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진다. 2 사랑한다 더 사랑한다. 별 빛의 심장을 가슴깊이 묻어둔 채, 별빛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 그대의 따뜻한 눈빛을 보게 되었을 때, 아아- 그제서야 알았다 그것은 작은 별이 아니라 큰 별이었음을. 오늘도 이 바다에 너의 별을 실려 보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은 별.
♧ 이유 없는 시 - 제오계절 22기 정인식(오현고) 공책을 편다 펜을 든다 손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시를 쓴다 아무 이유 없이 별 같은 시 달 같은 시 은하수 같은 시 밤하늘 같은 시 그저 거울처럼 비춰지는 마음의 모양
♧ 급식실 - 요람 24시 문경록(사대부고) 학교의모든학생들이급식실로뛰어가고있소나도같이뛰어 가고싶지만그리할수가없소모든아이들이급식실입구에서 서로밀치고잡아다니면서몸싸움을하고있소나는그들의몸 싸움에밀려나고있소하지만나도배가고픈지라억지로버티 고있지만곧튕겨나갈듯도싶소그러나나는초인적인의지로 선두에끼어들수있었소그러나더큰고비는급식판과숟가락 젓가락을집어드는것이오수십개의손들이내가그것들을집 는걸방해하고있소하지만나는당당히그것들을뿌리치고배 식을받을수있었소그리하여나의존재감을찾아낼수있었소
♧ 이카로스 - 늘푸른나무 22기 문가이(제주여고) 날고 싶다 날아오르고 싶다 아플 만큼 시린 파아란 비단 속 온전히 한 몸 잠기어 하염없이 퍼덕이며 위로, 위로. 짱짱히, 눈이 멀도록 빛나는 타오르며 내뿜는 숨결 그 동심원을 향하는 애끓은 그 무엇으로. 나의 지친 날개 아래 샘솟듯 방울져 떨어지는 가엾은 어리석음의 잔재 바싹 말라 타는 외침을 아디오스! 막다른 끝에서 조용히 미소를 반짝- 소복이 내려앉았다. 눈물조차 질 새 없이.
♧ 겨울 어느 날 - 청우회 제24기 조용호(제일고)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이 계절에는 다른 때보다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이 계절이 가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는 이 계절에 초라한 이 거리를 걸으며 여전히 난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렇듯 항상 쓸쓸한 이 계절을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게 합니다
♧ 밤하늘 - 혜윰 20기 강경아(중앙여고) 불을 끄고 누우면 또 하나의 밤하늘이 내 방에 펼쳐진다. 많지 않은 별, 나는 그것이 신기해 응시하고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유성 하나 없이 별은 언제나 제 자리를 지켜주며 별들은 내 꿈에 묻힌다. 요즘엔 볼 수 없는 또 다른 밤하늘. 그래도 어느 샌가 지금 밤하늘은 내 마음에 묻힌다.
♬ 가슴으로 말하는 노래 |
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사진과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