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요도결석이라 일렀다. 어젯밤 아랫배가 뒤틀려 아프기 시작했다. 쥐어짜듯 상처를 움켜서 할퀴듯 점점 심하게 달려들었다. 몇 시간째 뒹굴었다. 앉아 보고 서서 뛰어봐도 소용없었다. 화장실을 들랑날랑하면서 설사하면 괜찮을까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죽장 아파 댄다. 의자에 앉아보고 난로를 켜 배를 대 보이기도 했지만 다 허사였다.
하도 아파 엎디어 베개를 안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아파라 아이고---.”구급차에 실려 좁은 침상에서도 몸부림쳤다. 혈압을 재고 손가락 피를 뽑아 혈당을 재는 것 같다. 대학병원에 허락받아 실려 가면서도 계속 아파 ‘아야, 아야’ 부르짖었다. 새벽 응급실 구석 자리에 눕혀놓았다. 이내 수액을 꼽아 진정시켜도 말 듣지 않는다.
날 샐 때까지 주위 환자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소리쳤다. 뒤늦게 약국에서 가져왔다며 강한 진통제를 놓아 겨우 안정됐다. 긴 밤이 가고 날이 밝았다.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하다. 꾀병 같다. 응급실 가까운 검사실에서 CT를 찍었다. 둥근 통속을 들어갔다 나오니 돌이 요도에 걸렸는데 굵기가 바둑알 크기란다. 남자 간호사인지 다가와선 어디 아는 데 있으면 시내 다른 병원에 가서 돌을 깼으면 한다. 이곳 말고, 다른 데 아는 곳이 어디 있나.
여기서 치료받아야지 가긴 어디로 가나. 오후 늦게서야 휠체어에 실려 비뇨의학과로 올라갔다. 가는 곳마다 다름없이 환자들로 복작거린다. 도떼기시장이다. 검사실로 들어가 남녀 세분 의료진으로부터 관을 꼽는 시술을 받은 뒤 며칠 뒤 의사 예약을 해줬다. 바로 수술인가 했는데 그때 가서야 하는가보다 여겼다. 이곳 형편으로 밀리는 모양이니 참고 기다려야만 했다.
수십만 원이 나왔다. 정확한 계산이 안 된 임시 금액이란다. 수술도 안 한 여러 가지 검사비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암이나 고질병이라면 어찌하겠나. 돌만 빼면 될 것이니 안심이다. 의술이 참 고맙다. 보지는 못했지만 무슨 관을 꼽는 것 같았다. 밑이 찌릿하게 아팠던 게 그런 것 같다. 그랬는데 아프지 않으니 놀라워라.
여상스러워 일상으로 돌아왔다. 텃밭에도 나가 둘러보고 모임에도 고개를 내밀며 당구도 치러 돌아다녔다. 조금씩 찡하고 왼쪽이 당겼다. 소변도 자주 나오고 찔끔거릴 때 잠깐 아프다. 이내 괜찮으니 그러려니 했다. 관을 달았으니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맨살에 박혔으니 찔리는 기분으로 아팠다. 그 아프던 게 잠잠하니 신기도 해라.
며칠 뒤 의사 예약 시간에 맞춰 나갔다. 오늘 수술하려나 생각이다. 응급실에 실려 올 무렵, 그때 안 하고 날 잡아 기다려야 하는가 기웃댔다. 웬걸 간단하게 면담하고 옆 간호사실로 가란다. 힘들게 의사를 만났다. 마스크를 해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 불려 들어가니 책상 위 컴퓨터가 가로막았다.
돌이 선명하게 보이면 깰 수 있는데 희미하단다. 수술이나 관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물을 많이 마시면 저절로 나올 수 있다며 수월하게 얘기해 줬다. 시술로 들어가는가 싶어 옆 간호사실로 갔더니 50여 일 뒤 수술 날짜를 잡아준다. 그런 환자가 많은가 보다. 어찌 이리도 긴 날을 기다려야 하나. 또 아래처럼 아프면 난 어찌해야 할까.
그땐 응급실로 오란다. 퉁명스러운 간호사의 대답이다. 앞으로 당길 수 없냐니까 꽉 차서 그럴 수 없단다. 손톱도 안 들어간다. 그러면서 두 장의 종이에 찍찍 붉은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서 일일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검사하란다. 오르내리는 번거로움을 피해서 쉽게 다닐 수 있도록 순서를 정해줬다.
집에서는 아내 말을, 나가서는 차 내비게이션 방송을 듣고 병원에선 의료진 시키는 것을 잘 들어야 살 수 있다. 여기저기 여러 곳 다니며 하라는 대로 받았다. 병원에선 의사 지시대로 해야 한다. 귀찮다 부담스럽다 더더욱 거역은 가당찮은 일이다. 사람이 아는 것 같아도 맹탕으로 모르는 게 아픈 일이다. 방에서 뚤뚤 뒤집고 구를 때 돌이 박힌 줄 어찌 알았겠나.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번호표를 뽑아 기다렸다가 피를 뽑았다. 네 통이나 줄줄 담아냈다. 소변검사로 컵을 줘서 조금 받아줬다. X선 검사실로 가 통을 가슴에 안고 찍었다. 북쪽 건너편 떨어진 병동 호흡기내과로 가서 둥근 관을 물고 불라 해서 있는 힘을 다해 속바람을 밀어 넣었다. 겨울 해가 이내 기울어 해거름이 됐다. 집에 가서 아프면 어쩌나.
새해 벽두 꼭두새벽부터 119도움으로 실려와 온종일 검사하고, 오늘 다시 자잘한 온갖 것을 하면서 꼬박 해가 넘어갔다. 종이에 써진 대로 찾아다니며 하기가 힘들었다. 돌을 뺀 것도 아니면서, 몸에 달고 다니며 서울 대구 아니 부산을 떨어야 한다. 돌이 갇혀 있는 옆 콩팥은 검사 안 하고 어디 다른 곳만 살펴댔다. 아프면 안 돼-. 늙으면 달려드는 게 병이니 그럴 수 있나.
소변 길로 관을 넣었는가. 찌릿찌릿하더니 괜찮다. 그런데 그 관이 똑바로 들어가 제대로 박혔는지 가끔 찡찡거린다. 몸을 크게 비틀거나 뛰고 심히 구부리며 무거운 걸 들면 안 될 것 같다. 혹여 빠져 다시 아프면 그걸 어찌 감당할거나. 지난밤 혼쭐난 나는 박힌 바둑돌이 무서워라. 그게 왜 거기 들앉았나.
그렇게 20일이 지나자 또 검사하란다. 돌을 달고 심장초음파를 찍으러 갔다. 돈을 먼저 내래서 수십만 원을 정산하고 들어갔다. 퇴직하고 집에 놀면서 이러니 가족에게 부담을 안겨 미안하다. 어두컴컴 좁은 검사실에서 윗몸을 드러내고 받았다. 의사가 들어와 마지막 살피더니 별다른 이상이 없는가 낸 것 중에서 도로 얼마를 돌려받게 했다.
며칠 지나니 조금씩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 왼쪽이 결리기도 하면서 뜨끔뜨끔 아프다. 그러다 괜찮으니 그런가 하면서 지난다. 모임이나 멀리 나가는 일을 참고 들앉아서 지낸다. 움직이면 소변이 조금씩 찔끔 나오면서 참기 어렵다. 바지가 축축하다. 변기에 붉은 피가 섞여 눈을 놀라게 한다. 아련하게 아프다가 멎곤 해서 불안하다.
다시 병원을 찾아 이렇다니 의사가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한다. 너무 확신하니 나만 호들갑을 떨어서 수술 빨리하게 앞으로 당겨달란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중요 장기인 바둑돌 옆 신장이 괜찮을까. 저게 어찌 되면 그때까지 나 살겠나. 주나라와 한나라 때 편작과 화타가 침술과 손목 진맥으로 병든 사람을 고쳤다.
조선시대 허준과 이제마는 집에 가서 콩나물 끓인 물을 마시라 일렀다. 복음병원과 부산대 병원장을 했던 장기려는 돈 없는 입원환자를 새벽에 나가도록 도왔다.
또 연락이 왔다. 폐 검사를 하란다. 2월 중순 날짜를 정해주었다.
첫댓글 병원진료실에 가서 진료받을때, 의사분들이 그러셔요. 기계도 노후되면 고장을 일으키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라고.ㅠ
이곳저곳 아프시다고 위축되거나 기죽지 마시고, 나이들어 찾아오는 병마를 당연하다 생각하시며,전처럼 즐겁게 지내시기바랍니다.
돈좀 들어가면 어떻고 119신세 좀 지면 어때요. 그 힘든시기에 온갖고생하셨기에 지금이 있는건데요.
그리고 2월중순 날짜정해받은 폐검사도 아무런 이상없으시길...
선생님 고생하십니다
이런 사태에서 글이 나오니
진정 문장가십니다
지방 병원에서 요로 결석은
바로 처치하는데 대학병원이라
대기자 많은가 봐요
아직도 근 한 달이란 시간 어떻게 견디시겠어요
성도님 박회장님
우리 셋이서 이곳을 지켜나가는 게 든든합니다.
삼당 백입니다.
아프다가도 여기 들어오면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