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처럼
옳게 살려고 할수록 관리자들로부터 수없이 괴롭힘을 당해야 하고,
그래도 장금이와는 달리
좋은 끝은 본다는 보장이 없는 게 현실이지요.
그래도 인간다운 자긍심을 포기할 수 없는 교사들은
틀린 것을 보고 입을 다물고 살 수 없지요.
아래 김대유 샘이 쓰신 글이 다른 홈에 떠 있어 퍼와 봅니다.
음미해 보셔요.
여인추억(女人追憶)
"일간 스포츠에는 세가지의 인기만화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차카게 살자', '아색기가(我色氣
歌)', '여인추억(女人追憶)'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만화들을 보다가 문득 학교현장에서 일어
나고 있는 기가 막힌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만화처럼 옮겨 봅니다."
차카게 살자
학급에 나눠줄 청소비품을 신청하면서 또 결재를 받았다. 학급별로 비품수요를 파악하여
공문기안을 쓰고 《청소계*나→부장→교감→교장→서무부장》, 이렇게 5단계를 거쳐 빗자루
와 걸레 등을 장만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했다.
3월이다. 아이들의 눈망울에 비친 첫봄의 향기가 산수유 꽃망울 같다. 그 아이들 손에 학교
를 깨끗하게 할 청소도구를 들려주었으니, 이 봄날에 난 우리 학교에서 참 '차카게' 산 교사
중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나는 청소계다. 사무보조원을 두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나라의 선생을 하면서 업무로 청소
계를 맡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위해보지만, 정작 내 착한 마음
을 멍들게 한 것은 따로 있다. 청소비품을 구입하면서 왜 내가 간부들의 결재를 받아야 하
고, 업자는 구경도 못했는데 행정실의 비품 구입 장부에 왜 내 도장을 찍어야 하는가 이다.
청소계 교사가 학급에 비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조사를 하여 행정실에 알려주고, 때로 청소
시간에는 운동장을 돌면서 청소도 하고… 뭐 얼마든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교사인 내가 왜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앞서서 비품을 구입하는 공문기안서
를 들고 줄줄이 생활지도부장, 교감, 교장, 서무부장을 거쳐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결재
를 받아야 하는가 이다.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결재는 자기들끼리(교감, 교장, 서무)하는
것이 법률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은가. 또한 더 기가 막힌 일은 내가 왜 가르치는 일보다 오
히려 그것으로 근평의 평가를 받고 유·무능 여부를 저울질 받아야 하는가 이다.
비단 청소계만 그럴까? 교과서를 배부하고 돈을 걷어 송금해야 하는 교과서계나 다른 계원
교사들도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말하자면 가르치는 일에다가 플러스로 교육청 직원들처럼
행정 일을 덤으로 해야하고, 본질인 가르치는 일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은 없고, 그 덤으로
하는 행정이 부장 승진에 교감과 교장승진의 기준이 되는 것이니, 교육이 망하는 것은 당연
지사다. 이는 작은 관행같지만 내 삶의 생활주기(life cycle)를 결정하고, 나아가 내 직업의
정체성(identity)을 판가름하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카게'산다. 고질적인 이 틀을 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교육부장관
을 만날 때도 전교조나 교총의 대표를 만날 때도 '제발 내 삶을 아이들 중심으로 흐르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그런 사소한 문제는 다음에
논의하고 이 자리에서는 공교육개편안 같은 큰 주제를 얘기합시다'라는 반응이다. 어쩔 수
없이 교사들은 모두들 차카게 산다. 연자맷돌 돌리는 당나귀처럼 입다물고 열심히 일하며
차카게 산다.
아색기가(我色氣歌)
법률에 의하지 않고 관행에 의한 결재와 공문통치로 학교를 병영화시키는 교육관료와 교장
들의 행위는 저질스럽고 망국적이기까지 하다. 결재를 통한 공문통치는 교육의 전문성을 훼
손하고 법률에 의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교직의 전문직성을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
다. 그 파렴치한 행위는 교육의 부가가치를 학생들에게 돌리기보다는 눈치보기와 승진에 귀
결되게 함으로써 교육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도출한다. 오늘날 관료와 교
장들이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처럼 교육을 제 주머니 속의 곶감으로 여기는 것도 바로 이
전문성에 대한 몰지각 때문이다. 예컨대 사립학교 중에는 학운위 선거에서 하위를 한 자기
측근 교사를 위촉하기 위해 선위를 한 전교조 교사를 탈락시키가 하면, 공립학교 교장과 교
감들은 사소한 모든 교육행위조차 기안을 명령하여 좋은 교사들의 교육적 열정을 짖밟는 것
으로 하루를 소일한다. 사소한 교육을 하고자 하더라도 하루종일 기안결재를 받아야 하고,
애써 기안을 가지고 가면 교감이나 교장은 유치하게 빨간 줄로 그어가며 양식 등을 트집잡
아 되돌려보내니 정신 똑바로 박힌 교사라면 아무도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
다. 교장과 교감의 이런 행위야말로 국력을 떨어트리는 매국적 행위가 아닌가.
모순된 관료주의 구조는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오는 군상처럼 교사들의 인성과 철학
의 상태를 제로섬으로 만든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교사들의 반응은 속다르고 겉다르게 나
타날 수 밖에 없다. 학교현장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의문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괴
로워하는, 그래서 날마다 윗전과 동료들에게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이처럼 들볶이는 좋은교
사(good teacher)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 체제에 안주해서 조그만 이익을 얻으며 아부하
는 나쁜교사(poor teacher)가 있다. 나쁜교사들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
으로 분류할 수 있다.
☆ 뇌물형 교사
돈으로 승부한다. 부유하고 여유가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뇌물과 선물로 윗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늘날 저질러지는 교감과 교장, 관료들의 뇌물상납 보도를 보면 교감, 교장, 장
학사, 교육장(감)의 못자리가 되는 이들의 행태는 일찍이 학교현장에서부터 길러지는 습관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교장, 교감과 교육청 관료들의 충복으로서 부
장자리를 오래동안 독식하며 학교문화를 수직적으로 계급화시킨다. 워낙 속을 감추고 있어
서 얼핏보면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 노예형 교사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한다. 뇌물로 승부를 걸만큼 부유하거나 노련하지는 못하지만 '시키는
일'은 목숨을 걸고 한다. 개중에는 부인의 독촉에 못이겨 달마다 뇌물 용도의 적금을 붇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부장이란 완장을 차고 죽창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좋은교사들이 설프게
다루면 골치 아픈 결과를 가져온다. 일만 죽어라 하고 결정적으로 교감 승진할 때는 탈락하
는 비운을 맞지만 끝까지 자족하며 잡무 제조기의 역할을 다한다. 혹 정년단축같은 호재가
있어서 운이 좋으면 얼결에 교감 승진을 하기도 한다.
☆ 모르쇠형 교사
굿을보고 떡을 먹는다. 나쁜교사들의 호작질에 묵묵히 방조하고, 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뒤
에서 욕을 할망정 겉으로는 충실히 이행한다. 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잘하면 모르쇠형 부장
교사급으로 발탁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교사들에게 우호적인 사람으로 비쳐지기
도 한다. 세상에서 제일 속 편한 사람같지만 실제로 양쪽 눈치를 보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암에 걸려 죽을 확률은 가장 높아 보이는 그룹이다.
특히 모르쇠형 교사 그룹은 왕따 가해아이에게 동조하는 학급의 아이들처럼 이중적 심리구
조를 지닌다. 그들은 결제와 공문 통치를, 보통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속
으로는 그러한 체제가 옳지 않다는 내적 목소리에 양심을 찔리면서도 말이다. 아예 양심도
없는 상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2003년 1월 27일에 조사된 청소년
보호위원회의 왕따 설문을 보면 가해자 그룹에 동조하는 아이들의 61.5%가 '방관하면서 동
조하는 것이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가세한다'고 답변했다. 아이들도 느끼는데 대학 나온 교
사들이 못느낄 리가 없다. 다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고, 혹 자율적
(교원노조 등)으로 부여되었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나쁜교사들의 행태는 우선 교육청 장학사의 마름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교
장과 교감들, 그들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장 및 승진파 기
획 교사 등 그룹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행정 잡무를 잘하고 윗전에게 무
난하게 보인 사람이 교감과 교장의 '가신(家臣)'처럼 부장으로 임명되고, 한번 임명되면 보통
연7년이상, 혹은 사립에서는 평생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된' 엘리트요, 수업
보다는 행정업무에 능력이 있는 '관리자'(십장)라는 의식을 갖게된다. 담임 안하고, 수업시수
적고, 승진점수 따고, 귀찮은 일은 아래 기획이나 계원 교사들을 시키다 보면 적당히 리더십
도 느끼고 하니까 그런대로 재미를 붙이면서 학교에 출근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대략 교원이 40명쯤 있는 학교의 경우 이렇게 교장과 교감, 부장들 13명쯤의 잉여분을 빼
고 나면 실질적인 면에서 평교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1/3이 채 못되는 27명쯤으로 좁혀진
다. 그들은 날마다 허드레 잡무와 복잡한 결재를 받으며 개미처럼 일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
육은 '하고싶어도' '결재'를 받아서 해야만 하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억압과 한계는 그들
의 정신 상태를 분열증으로 몰고 간다. 어떤 '개미교사'는 그런 문제제기를 받을 때마다 시
니컬한 표정을 짓고 한마디로 일축한다. "난 신경 안써요. 애들만 잘 가르치면 되지요." 그
렇게 모순된 자조를 내뱉는다. 무엇인가 아이들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하려면 그 결재구조
를 피해갈 수 없는 모순에 봉착하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그래서 '애들을 위한' 교육은 엄두
도 내지 못하고 복지부동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자니 얼마나 스스로를 속여야 할까? 참 딱한
노릇이다. 갈수록 학교는 나쁜교사들의 아색기가(我色氣歌)가 울려 퍼지고, 학부모와 아이들
의 학교 혐오증은 탈학교 현상으로 나타난다.
여인추억(女人追憶)
일간 스포츠의 만화 중 여인추억(女人追憶)은 주먹과 사랑의 함수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무
림을 제패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들 연인의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하는 권력은 불행하다. 인
류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다. 소쩍새 우는 긴 밤 웃통을 벗고 돌아앉은 남정네의 등판에 忠,
愛자를 먹실로 새기며 눈물을 참는 여인…, 전쟁터에 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맺은 충
성과 사랑의 맹세는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며 참 인생의 가치에 대한 확인이다. 옳지 않은
연인을 어떻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여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는 남자는
살아도 행복하고 죽어도 불행하지 않다. 여인의 추억에 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평강공주 없는 온달은 그냥 바보일뿐이다. 줄리엣을 향한 로미오의 세레나데는 문학의
정수다. … 역사와 문학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사랑의 일화는 오늘을 사는 삶의 가치가 어디
에 있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가르치는 자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보다 비참
한 것은 없으리라.
좋은(good) 교사가 되려면 사랑에 미치고, 바보가 되고, 미운오리새끼가 되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사랑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교사의 생활주기(life cycle)는 가치가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속으로부터 넘치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고,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다. '남는 장사'인 셈이다. …남자들이 일찍 죽는 세상이다. 40대 남자 사망률
세계1위의 통계치는 우리 나라 남자들의 허망한 삶을 반영한다. 날마다 위전 눈치보며 승진
에 목매달고, 어렵게 교장이 되어도 때로 교육청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해야하고, 요행히 간
부교사가 된들 명절 때면 재단 이사장에게 선물 싸들고 세배를 가야하는 신세, 아이들은 외
면한 채 온통 위만 바라보는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암에 걸려 죽고, 자살하고, 진정한 사랑을
받지도 못한 채 누추한 노년을 보낼 생각을 해보아라. 마치 대통령을 탄핵한 한나라당처
럼….
…다시 현장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학교에 비치된 각종 장부 중 법적 장부는 세가지뿐이다.
생활기록부, 건강기록부, 유독물관리대장, 이 세가지는 반드시 관리자(학교장)의 확인 하에
비치되어야 할 문서이고, 나머지 장부는 교육청의 지침이나 학교장의 재량 범위에 의해 운
영되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학교에서 이 세가지를 제외한 문서는 과감히 없애고 모든 교내
의 내부 결정사항에서 교사들의 결재구조를 혁파한 교장들이 있다. 또한 어떤 교장은 소수
의 부장교사 이외에는 교사들에게 아예 공문처리나 내부결재를 생략해버린 경우도 있다. 물론 그들 역시 교육청의 눈밖에 나거나 수도 없이 장학사들과 마찰을 겪는 왕따 교장들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교사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여선생님들의 친절한 미소를 얻었다.
내 이웃 어느 학교는 전교조도 없고 개혁의 이미지도 별로 없는 학교이지만 평교사들이 단
결하여 교감을 선출했고, 또 어느 이웃 학교는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부당한
교육청의 지시에 교장과 교사가 똘똘 뭉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긍심은 '불의를
보고 잘 참는' 교사들에게는 없는 코드다. 자긍심은 부당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투쟁 속에서
우러나온다. 자긍심이 없는 교사는 나쁜(poor)교사라는 교사교육의 알파를 상기해보자. 학교
민주화는 기획되고 집행되는 것보다 오히려 부당한 권력 앞에서 개인적인 억울함이 투쟁으
로 지펴지는 현장성에 뿌리를 내려야 할 때가 더러 있다. 부당한 교장의 지시에 멍든 가슴,
포졸같은 장학사들의 간섭을 단호히 뿌리치는 교장, 그 상처입은 가슴들이 모이면 기적이
일어나고 신화가 만들어진다. 물방울이 모여서 냇물을 이루듯 좋은교사 한사람의 외로운 투
쟁이 참교육의 바다가 된다.
오늘을 사는 좋은교사들이 수직적인 계급 구조 속에서 외롭게 투쟁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이야말로 우리 교육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진
정한 에너지이자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술라이에르마허의 말처럼 교육은 행복
한 삶의 운동이어야 한다. 좋은교사들의 아픔 삶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우물로 남는
다. 그들에 대한 추억은 언제까지나 샘솟는 오늘의 신화(神話)다.
첫댓글학교현장에서 소수이면서 아주 특수한 교사인 보건업무를 하면서 가장 신경질적인 상태로 바뀌는 때가 책임소재의 구분에서였습니다. 나중에 책임을 확실히 하려면 내부결재를 득해야 할 것 같고, 또 결재를 득하자니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생기고,,,글을보니 더 혼란스럽네염...
첫댓글 학교현장에서 소수이면서 아주 특수한 교사인 보건업무를 하면서 가장 신경질적인 상태로 바뀌는 때가 책임소재의 구분에서였습니다. 나중에 책임을 확실히 하려면 내부결재를 득해야 할 것 같고, 또 결재를 득하자니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생기고,,,글을보니 더 혼란스럽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