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치기
내 어렸을 적 산골마을에서는 농사일이 끝나고나면 어느 집 할 것 없이 여인네들이 홀치기를 했었다. 넓이가 1미터쯤 되고 길이를 알 수 없는 길다란 천 조각에 일정한 간격으로 까만 점들을 무수히 찍어 놓은 것을 바늘로 한 점 한 점 떠서 홀쳐 맨다고 ‘홀치기’ 란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든이 넘은 할머니도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그 놈의 홀치기를 했었다.
저녁밥을 일찍 먹고 삼삼오오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호롱불 밑에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쌓인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며 겨울 밤이 깊도록 그렇게 홀치기를 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점을 남김없이 홀쳐야 하는 홀치기는 농한기의 아낙네들을 다시 반골병이 들게 했지만 한편 홀치기는 당시 겨울 농촌의 짭짤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홀치기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낚시 바늘 같은 것으로 홀쳐매는 ‘낚시 홀치기’가 있었고 또 굵은 대롱 끝에 작은 바늘로 한 뜸 한 뜸 뜨는‘요꼬’ 라는 것이 있었다. 낚시 홀치기는 천을 한 손으로 받쳐 잡고 바늘로 점을 떠서 실을 돌려 감아 잡아 당겨서 홀치는 것이었고, 요꼬라는 것은 대롱 끝에 조그마한 바늘이 있어 그것으로 점을 떠서 실을 두 번 돌려 감는 방법이었다.
방법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점을 꿰어 실로 감아서 홀치는 것은 같았던 셈이다. 점을 손가락으로 받쳐야 하기에 손톱과 손가락이 성할 날이 없었다. 홀치기 일은 두 사람이 해서는 안되었다. 조금만 높낮이가 틀리거나 솜씨가 서툴러도 애써 홀쳐 놓은 것을 다 풀어서 다시 해야 했다.
당시에는 이 홀치기를 공급하는 배달원이 있었는데 그들의 끌빨이 대단해서 정해진 기한까지 일을 해 내지 못하면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사정이 생겨 약속한 날을 넘기면 다음부터는 공급을 중단했기에 모두들 기한을 지키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점들을 한 점 한 점 떠서 한 필을 다 홀치고 나서 받은 돈은 고작 3000~ 3,500원 정도 였었다. 그 돈으로 공납금도 주고 생활비와 용돈도 마련했었다.
근데 이 홀치기는 당시의 엄격했던 농촌의 가부장적 남녀불평등 사회에서 아가씨들이 밤나들이를 다니기에 좋은 구실을 주었다. 홀치기를 혼자하면 졸음이 와서 오래하지 못하기에 친구집에 함께 모여서 해야 능률이 오른다고 핑계를 대고 마실을 나갔었다.
그렇게 집을 나가서는 홀치기 틀은 남의 짚더미 속에 쳐박아 놓고 총각들과 어울려 다니며 밤이 늦도록 놀았었다. 그러다가 연분이 나서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홀치기는 이래저래 여인네들의 밤나들이에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던 셈이다. 처갓집이 같은 마을이거나 이웃마을인 사람들은 혹시 이때 만나 정분이 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홀치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늘이 있어야 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써야 했기에 자전거 바퀴의 살대를 구해 호랑이 심장이라도 찌를 수 있을 만큼 삐쭉하게 다듬었다. 그런 다음 L자 모양으로 구부려서 헌가마니 같은 곳에 문질러 매끄럽게 하면 멋진 바늘이 만들어 졌다.
그렇게 바늘을 만들고 나면 이번에는 바늘을 잡아맬 틀을 만들어야 했다. 엉덩이로 깔고 앉을 만한 널빤지를 구하고 홀치기를 하기에 적당한 눈높이의 막대기를 세워 흔들리지 않게 대각선으로 각목 하나를 덧대면 되었다. 그 위에 못을 쳐서 실로 바늘을 잡아매면 멋진 홀치기 틀이 완성되었다.
홀치기를 하는 사람은 여자들이지만 틀을 만들고 바늘을 다듬어 주는 것은 모두 남자들의 몫이었다. 때로는 실을 감아주기도 했고 틀이 찌그덕대면 고쳐 주기도 했다. 그 홀치기 때문에 경제적인 도움은 다소 되었지만 가뜩이나 일에 지친 농촌 아낙들을 더욱 더 고단하게 했다. 하지만 하여튼 홀치기는 당시 농촌의 유행이었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요즘 그때의 그 시절이 다시 와서 아낙네들에게 홀치기를 하라고 하면 뭐라고할까? 1필에 10만원을 준다고 해도 할 사람이 있을까? ㅎㅎ~~ <2008. 1. 19. 도까비>
* 이 글은 어렸을 적에 옆에서 지켜 본 것을 더듬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 ^^
첫댓글 허허..친구야! 어찌 그 생생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해주는공...잠시나마 저 세상에 계시는 모친의 그 홀치기 하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나타나서 가슴이 왜 이리도 찡하는공...홀치기 해서 우리 학용품과 참고서를 산것이 아닌가 ...
어제 밤 꿈에 엄마 홀치기하던 꿈을 꾸었는데 정말 옛날 생각이 나네 어머니의 홀치기하던 모습이 선하네......
지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오붓하게 화성에있는 율암온천에 다녀왔다네 맨날 바쁘다는 핑계로 혼자만 다니던 사람이 아들녀석과 마눌을 대동하고 함께 찜질방에도 들어가고 하니 마눌이 엄청 좋아하드군, ★ 오늘은 어떤 야그가 올려와 있을려나 ? 회의가 있는 날인지도 몰고 자네의 글에 몰두하다 보니 전화가 와 받아보니 회의있는 날이란다 난 기왕늦은김에 아예 댓굴까지 달고 갈란다, 마침 눈이 내려 핑계거리도 생겼으니 ㅋㅋㅋ 칭구야 잘읽고 회의시간에 늦었지만 행복하다~☆♡
안쓴다~안쓴다~~ 하면서 또 이렇게 지난날을 더듬었구먼. 미안하이~~ 회의에 까지 늦도록 했으니 뒷감당이 걱정이 되는구먼....ㅎㅎ~~ 하지만 까맣게 잊혀져가던 어머니의 홀치기 하던 모습을 생각나게 했으니 공연한 짓을 한 것은 아니었나 보네 그려. 난 ~ 어제 대설경보까지 내려진 것도 모르고 태백산을 헤매다가 왔다네.........ㅎ~~
홀치기 초가삼감에 저녁 늦게까지 엄마들이 하던 비단에 점박이를 홀치는 홀치기 달그닥 달그닥 돈 훌치는 소리 ㅎㅎㅎㅎㅎㅎㅎ
고맙네. 이런 기억들을 다시 상기시켜주어서 ....... 사진보니 더 정겹네
우린~ 함께 그 시절을 살아온 것이 맞는가보네 그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