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말과 글에 실린 에너지는 사람들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만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람들과 만물을 살리는 말과 글들이 이 세상에 넘쳐나야 이 세상은 살기좋은 평화로운 세상이 될 뿐 아니라, 자연재해가 근본적으로 없어진다.
그러나 세상은 인간의 영혼을 오염시키는 말과 글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점점 황폐한 사막으로 변해가고 혼란 속에 빠지고 자연재해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천상계의 천국에 사는 생명체들이 보면, 이들의 영혼에 비추어진 지금의 지구의 인류문명은 부분적으로는 지상천국적 인 곳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지상지옥인 것이다.
특히 이들이 사는 천국에는 전쟁 ,살인, 이기심, 질투, 도둑, 살생, 질병,죽음, 욕, 거친말 등이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천국의 생명체들은 지구에서의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가 있는지 이해불가능이다. 이들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의 역사가 지구의 역사에 계속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못한다.
특히 종교를 빙자한 종교성을 띤 전쟁은 더욱더 이해를 못한다. 그들은 어떠한 신들도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신이 개입한 신성한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거짓 믿음인지를 잘 이해한다.
이들 천국의 생명체들은 전쟁의 배후에는 선한 신들을 가장한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이들은 우주개벽기인 새시대에 지구성에 지금까지의 지구문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평화롭고 아름다운 새 문명권이 들어서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들 천국의 생명체들은 지금까지의 지구성 문명이 번데기 속 어둠의 문명이었다면 새시대에는 하늘을 훨훨날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나비문명인 빛문명이 지구성에 펼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212. 모든 삶의 중심에는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이 자리잡고 있어야한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하느님 자신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만물을 위해서 존재해왔다. 모성적 사랑의 하느님은 그저 만물에 모성적 사랑을 담뿍 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다.
우리도 모성적 사랑의 하느님의 품성을 그대로 닮아 만물을 위해서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만물을 사랑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운 생각과 부끄러운 말, 부끄러운 행동 등을 피하게 된다.
물론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양심에 부끄러운 생각, 부끄러운 말, 부끄러운 짓 등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후 철저히 반성과 회개를 하고, 더욱더 만물을 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려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이 있어, 인간들을 만물사랑의 길을 못걷게하고, 만물사랑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나쁜 길, 부끄러운 길 등으로의 유혹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영혼이 깨어있어야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이 한시라도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 에너지로 울타리를 쳐야한다.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은 돈이 있다고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악한 영들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십상이다.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의 에너지로 우리 주위에 울타리를 치는 가장 쉽고 효과가 높은 방법이 누리경을 매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읽고 누리경의 두 기둥인 일삼 주렁주렁의 법칙과 지하철의 원리를 일상생활 중에 끊임없이 생명이 있는 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리경의 두기둥이 휘황찬란한 빛기둥으로 변해 두 법칙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자의 주위에 계속 세워져 있어 어둠의 악한 영들이 접근할 수가 없게 된다.
213. 인류는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위험수위를 넘었다. 특히 하느님의 입장에서 볼 때, 악의 정점인 전쟁, 언어적 폭력, 물리적 폭력 등은 이미 지구상에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 인류 문명을 천상계의 빛존재들, 우주연합조직 등은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지구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천상계의 빛존재들, 우주연합조직 등이 지구문명의 발전 개입할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지구의 인류들은 깨어야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 지구인들은 하느님 자녀답게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의 품성을 되찾아 만물사랑의 길을 걸어야한다. 만일 우리 지구인들이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의 품성을 가져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우주연합조직에서 인정했을 때에는 우주연합조직이 초과학문명권의 생명체들의 조직일지라도 하느님의 자녀인 인류 앞에 자연굴복하게 되어있다.
지구성의 통치권은 물론 우주의 통치권을 지구성의 인류에게 전부 이양하고 우주연합조직은 단지 협조자의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 이들도 우주의 주권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가 지금처럼 계속 도덕적 관점에서 위험수위를 넘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성 전체에 악한 생각, 악한 말, 악한 행동 등이 차고 넘친다면 인류는 우주연합조직의 노예적 입장에 떨어질 수도 있다.
지구성의 인류가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구심점으로 윤리도덕적으로 탄탄한 길을 걸으며 지구성을 우주의 중심모델적 행성으로 만들지 아니면 윤리도덕이 붕괴된 그야말로 언제 지구문명이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길을 걸을지 지구의 운명은 인류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214. 개는 주인이 사랑해주면 주인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기쁘다. 마음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이것은 개와 같은 애완동물뿐만이 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식물도 우리가 사랑해주면 식물도 마음이 있어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평화를 느낀다. 더 나아가 만물도 우리가 사랑해주면 만물도 마음이 있어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평화를 느낀다.
215. 우주의 대변혁기에는 지구에 인간의 죄악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 하나 벗기는 하느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지구성에 새사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과 준비된 지역 그리고 준비된 말씀들이 있다. 대변혁기의 때가 되면 서서히 수면위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게 된다.
216. 우리가 선을 향한 계속적인 노력을 해야 우리가 선한 사람으로 점차적으로 탈바꿈된다.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지구상에 늘어나면 지구에는 선한 새 문명이 탄생한다.
선한 새 문명은 고운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빛문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리경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빛 문명을 「고운심성 문명」이라고 부른다.
지구성에 「고운심성 문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 하느님과 천상계의 빛존재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고운심성 문명」이 들어서는 나라가 바로 누리나라인 것이다.
217. 마음이 선한 심성고운 사람들은 주위사람들에 봉사하고 싶은 충동이 항상 마음 속에서 강하게 일어난다. 마음이 선한 심성고운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위해 살려는 충동이 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삶의 방향이 주위사람들에의 봉사쪽으로 흐른다.
218. expertise는 전문적 기술,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단어이다. 전문적 기술이나 지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재능이 상승 효과를 이루어 낸 결과이다. 새시대는 창조성이 가미된 전문적 기술이나 전문적 지식으로 승부를 해야하는 시대이다.
전문적 기술이나 전문적 지식에 창조성을 끊임없이 융합시키기 위해서는 타인이 모방할 수 없는 자기만의 재능을 갈고 닦음은 물론 영감, 아이디어, 직감 등의 능력도 높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한다.
219. 드디어 인류의식이 뿌리부터 변화해야하는 대변혁시대가 왔다. 기존의 인류가 가졌던 상식들은 와르르 무너진다. 이 지구성에는 인류 안에 외계의 지적 생명체들이 극히 일부이지만 섞여있다.
임신 상태에서 우주의 지적 생명체의 영혼이 들어가서 이 지구에 태어난 경우, 고차원 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초과학문명권의 우주의 지적생명체들이 고차원 세계를 통해 지구에 들어온 경우, 지구 땅 속 문명권의 지적 생명체들, 달이나 금성과 화성 같은 곳에서 온 지적 생명체들 그 밖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구성에서 들어온 극히 일부의 지적 생명체들이 지구인들과 공존하고 있다.
동물들도 수 많은 종류들이 있는 것처럼 외계 지적 생명체들의 종류들도 많다. 우주의 지적 생명체들이 사는 혹성들 중에는 전쟁, 폭력, 살인, 살생, 욕,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 등을 전혀 안하는 심성고운 지적 생명체들이 살고있는 평화로운 혹성들이 우주 속에 극히 일부이지만 있다.
이들 심성 고운 지적 생명체들은 남의 고통을 고스란히 그대로 느끼며, 반대로 남의 기쁨과 행복도 고스란히 느낀다. 이들 혹성에는 최첨단 문명권일지라도 퇴폐문화가 없다.
한편 전쟁을 좋아하고, 소고기 양고기등과 같은 육식을 좋아하고, 소와 양같은 동물희생으로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를 가진 지적 생명체들이 사는 혹성도 이 우주에는 극히 일부이지만 있다.
이들은 질투심이 강하고 에고심이 강하다. 또한 마음에 들지않으면 양심에 가책도 받지 않고 서로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이들도 최첨단 문명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문명권에는 퇴폐시설로 꽉차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이 상식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위의 두 예는 극히 일부의 극단적인 우주의 지적생명체들을 설명한 것이고, 대부분의 우주의 지적생명체들은 지구성처럼 선과 악이 섞여있는 혹성에서 순수음양진리를 체험하며 영혼의 수행을 하고있다.
220.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할 때 지나치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직감적으로 바른길이라고 생각되면 우선 행동을 취해보아라. 행동을 취하면서 방향수정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생각만하고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보다 현명하다.
행동하면서 생각하면 성공의 확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높아지지만, 생각만 하고 행동을 안하면 성공확률은 제로이다. 성공 확률을 높이는 삶을 살지 성공 활률의 제로의 갊을 살지는 여러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다.
누리경을 읽기 전에 이 두 법칙만은 꼭 알고 넘어갑시다!!!
누리경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일삼 주렁주렁의 법칙과 지하철의 원리에 대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 일삼 주렁주렁의 법칙과 지하철의 원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우선 「13 주렁주렁의 법칙」을 간략하게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1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즉, 우주를 창조한 제일 원인자로서의 하느님을 의미한다. 3은 사랑과 감사 그리고 순수를 의미한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 중심에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축으로 주위에 사랑을 실천하는 삶, 호흡하듯이 늘 감사하는 삶, 그리고 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을 현실적으로 실천한다면, 행복의 열매, 기쁨의 열매, 축복의 열매, 행운의 열매, 재운의 열매, 성공의 열매, 건강의 열매, 희망의 열매, 자유의 열매, 겸손의 열매. 풍요의 열매, 생명의 열매, 영원의 열매 등 각종 아름다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우주의 법칙을 「13 주렁주렁의 법칙」이라고 저자는 부르는 것이다.
다음은 지하철의 원리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지하철은 땅 밑에서 다니는 차이다. 땅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달리는 차가 바로 지히철인 것이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친자녀들 스스로가 이 땅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서 지하철처럼 삶을 달리기를 바라고 계시다. 하느님께서는 땅 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 하느님의 자녀들이 서기를 바라신다.
가장 낮은 자리가 가장 편하고 가장 행복한 자리이다. 땅 위에서 차를 운전하다보면 혼잡할 때에는 길이 막혀 정체현상이 일어난지만, 지하철에는 정체현상이 없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다른 차의 방해없이 달릴 수 있다.
우리가 땅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서 삶을 살면, 지하철이 막힘 현상없이 순조롭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정말로 순조롭게 나아간다.
이러한 원리를 누리경에서는 「지하철의 원리」라고 한다. 이 두 법칙은 누리경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두 기둥이다. 누리경의 두 기둥인 이 두 법칙을 일상생활 중에 우리 모두 실천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 만들기 운동에 동참하자.
생명수: 강남모세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행동하면서 생각하고 고쳐나가자」라는 것은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정말로 마음에 새겨야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길이 일반적으로 많기 때문에 정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기회를 다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인생 길을 선택할 때 신중함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너무 생각하고 예측하다보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기 쉽고 점점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재다가 인생의 좋은 기회를 다 놓친 사람들은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직감적으로 느껴 행동하고 행동하면서 수정해나가는 것이 성공률이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오래 생각한다고 해서 정확한 판단이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마 학생 때 시험볼 때 처음에는 정답을 직감적으로 3번으로 했는데에 나중에 시간이 남아 2번인가 3번인가를 너무 생각하다가 「그래 맞아 2번이 정답이야」라고 생각해 수정했을 때, 시험이 끝나고 답을 맞추었을 때 처음 답이 정답이었다고 고친 것을 후회한 경험들을 누구나 많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학생 시절에 많은 사람들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너무 오래 생각한다고 옳은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사실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오래 생각하고 결정하는 성격 타입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오래 생각할 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 생각으로 빠지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니중에는 겁이나서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습관이 되면 생각만 하는 햄릿형 인간이 됩니다.
인간은 크게 나누어 생각만 하는 햄릿형 인간과 무조건 행동으로 옮기는 동키호테형 인간이 있습니다. 물론 이 둘은 극단적인 유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인간형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행동형인 동키호테형 성격과 사색적인 햄릿형 성격이 절충되는 인간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반 보다는 일단 행동쪽에 치우치면서 행동하면서 사색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생각과 행동 사이에 균형을 잡으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생각과 행동을 균형 맞추려하면 오히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생각 쪽이 커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즉석 판단이 가능하려면 직감력, 통찰력, 종합적 판단력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인생 체험과 많은 지식량, 영혼의 수행 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영혼의 수행과 독서, 체험 등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배움은 학생 때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는 한 계속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의 수행과 유용한 지식을 동시에 섭취하는 사람들은 짦은 시간에 영혼의 수행과 지식을 동시에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누리경을 집필하는 것도 영혼의 수행과 유용한 지식을 독자들이 누리경을 통해 동시에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면도 있습니다.
지금은 누리경을 공개하는 초창기여서 내용에 미비한 점들이 많지만 점차적으로 누리경의 내용들이 충실해져 누리경 하나만으로도 영혼의 수행과 유익한 지식을 섭취가 가능한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제가 누리경의 씨를 뿌리는 정도입니다. 앞으로 제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누리경에 전념하는 때가 올 때는 누리경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성장을 위해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지혜로운 판단, 순수한 마음, 일을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등 정말로 아름다운 정신적 가치입니다. 실패의 두려움 공명심, 출세욕 등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들을 버리면 버릴수록 오히려 성공할 확률은 높아지고 명예를 얻을 확률, 출세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철저한 지식 숙련된 연습, 많은 사례의 분석 자료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신축성을 부여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반복과 숙련 그위에 창조성이 가미된다면 금상첨화이겠죠.
소수의 작은 의견도 수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강남모세님의 좋은 댓글 덕분에 저도 많은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무한사랑과 무한감사를 존경심과 더불어 강남모세님께 전합니다.
강남모세: 돈키호테와 햄릿의 절충형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생명수님의 친절하고 해박한 해설의 답글에 꾸벅 ....
┗ 하모생명수 12.11.04. 17:54
하모생명수 12.11.05. 18:18
|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게 합니다. 좌고우빙 유야무야 할까말까 이런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먼 장래와 주변에 대한 시각과 안목이 커야합니다. 늘 크게 길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습관을 들입시다. 지혜로운 판단은 일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일을 사랑하는 마음, 일 자체를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게 마련입니다. 실패의 두려움, 공명심, 출세욕을 버려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평상시 철저한 지식과 숙련된 연습 많은 사례를 연구하여 어느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할 만한 또 수정이라던지 가감할만한 유도리를 두고 결정하는 것이 확대 축팽창수축에도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 행동은 간단합니다. 그런 결과는 얼마나 오래된 기술이 축적되었는가하 는것이 나타납니다.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이나 어느분야에서든 리허설과 숙련된 기술연마는 기본적인 행동양식이지요. 있지도 않을 문제점에 대해 시시비비를 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부정할 일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조합으로 대처할 구멍을 감안하면 됩니다. 부정적 극단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의견도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