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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자유무역의 화신 ‘데이비드 리카도’는 대학 문턱도 가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대학 교수나 그렇게 생각할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교수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단칼에 눌러버렸다. 1772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영국에서 태어났다. ‘제임스 밀’과 교우했는데 그의 성화에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하원의원이 된다. 그는 난해하지만 뛰어난 이론으로 비교우위론을 발표한다. 비교우위론의 예로 ‘돈키호테’와 시종 ‘산초’ 얘길 들면서 난파된 두 사람이 살기위해 잘하는 것을 하는데, 산초는 모두 잘하지만 돈키호테는 그래도 물고기는 잡을 수 있으니 산초가 움막을 짓고 돈키호테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비교우위이다. 각자의 기회비용이 낮은 쪽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링컨은 한 나라가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부유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관세는 잘 모르지만 그가 미국에서 외투를 사면 그는 외투를 갖고 미국은 그가 지불한 돈을 갖는다는 것을 안다. 만약 그가 외투를 영국에서 사면 그는 외투를 갖고 돈은 영국이 갖는다고 생각한다. 링컨의 주장은 맞다 그러나 그는 관세를 전혀 모른다. 그는 중상주의자들처럼 달러를 많이 보유하면 할수록 부유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링컨이 영국에서 외투를 사고 달러를 지불하면 영국의 누군가는 달러를 가지고 미국산 제품을 사거나 파운드로 환전을 할 것이다. 링컨은 영국인들이 미국 달러를 받은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이다. 달러를 받은 이유는 미국산 상품과 금융자산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세상을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만, 돈은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이런 돈의 흐름을 막는 것은 가장 저렴한 제품을 생산한 곳에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는 꼴이다. 더 높은 더 낮은 기회비용으로 우리는 귀중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느냐다. 즉 교역을 허용함으로써 각국은 자국의 국민들에게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옮겨가게 강제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낮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경영자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생산성이 낮은 산업을 보호할 경우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고로 정부는 산업구조 개편으로 발생하는 실직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지불하고 직접 보상을 하거나, 재교육을 통한 일자리를 구하도록 유도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산업을 보호할 경우 경제 전반의 침체가 일어날 수 있다. 예로 미연방의회는 설탕제조업자의 압력에 굴복 설탕수입을 제한해 카리브 해 연안국의 개발의지를 좌절시켰다. 남아메리카의 농민이 수출 길이 막히자 사탕수수 대신 코카인을 재배해 미국 마약 밀매업자와 교역을 했다.
리카도의 이론을 제대로 검증한 곳은 유럽이다. 1992년 유럽 국가들은 기존의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단일시장을 출범함으로써 죽을 때 까지 자유무역을 외쳤던 리카도에 부분적인 승리를 안겼다. 완전한 승리는 미국과 일본 같은 역외 국가들과의 무역 장벽을 완전 철폐할 때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약속은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은 미국이 강세고, 농업은 프랑스가 미국과 오스트리아 산 농산물을 정치적으로 막고, 독일은 남아프리카의 원예시장에 대해 자국시장을 막고 있다. 독일의 감자 농가는 남아프리카 감자 수입을 거세게 반발한다. 그중 가장 문제는 바나나인데 유럽은 카리브 해 연안국과 라틴아메리카의 바나나 재배업자들로부터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바나나는 자유무역을 막는 가장 강력한 상품이다.
경제학계의 풍운아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애덤 스미스’보다 나이가 많지만 친구였던 ‘데이비드 흄’은 ‘토마스 맬서스’의 대부이고 ‘맬서스’는 ‘데이비스 리카도’의 친구이다. ‘리카도’와 친구인 ‘밀’은 그에게 경제학을 공부하게 고취했다. ‘제임스 밀’의 아들로 태어난 ‘존 스튜어트 밀’은 교육의 쓴맛부터 보고 큰다. 합리주의 파고에 갈피를 못 잡던 ‘밀’은 낭만주의에 제정신을 차린다.
1776년부터 1976년까지 200년 동안 경제학은 저서가 5권뿐이다. ‘애담 스미스’ <국부론>.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존 스트워트 밀’의 <정치경제원리> ‘엘프리드 마셜’의 <경제학원리> 그리고 ‘폴 새뮤얼슨’의<경제학>이다.
‘밀’은 부자들에게 소득세 감면을 줬던 반면, 상속세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그는 저술에서 ‘결과의 균등’보다는 ‘기회의 균등’을 강조했다. 밀은 상속세에 세금을 물린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의욕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속재산은 상속받는 자가 직접 노동해서 번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선을 위해 제한하여야한다고 썼다. 사실 상속세도 여러 방식으로 탈세가 가능하다. 증여를 통해 죽기 전에 재산을 자식에 증여할 수 있다. 미국보수주의자의 후원을 받는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상속세 중과세를 주장하는 ‘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취임하면서 상속세를 순차적으로 낮춰 2010년에 완전 폐지한다고 대선 공약을 확인했다. 그리고 폐지했다. 그러나 2011년 이 법안은 다시 부활하도록 되어있다. 이유는 ‘경제성장과 조세경감조정법’에 일몰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상속세 폐지 법안은 일몰조항의 적용을 받아 2010년 12월 31일에 효력을 상실하고 2011년에 상속세는 2000년 수준의 55%로 다시 부활하도록 되어있다.
‘밀’은 가난한 사람이 사회적 구제를 받으면서 노동의욕을 고취시킬 방법을 고심했다. 그들에 지급하는 구제금융이 그들의 노동의욕을 저하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데 굳이 땀 흘리며 일 하려고 할까? 가난한 사람을 신체건강한 자와 장애인, 노약자, 아동으로 분류하고 신체건강한 사람을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공공근로를 제안했다. 그는 구제 수당이 너무 쉽게 분배될 경우, 구제 수당을 받는 가난한 가정의 자식들이 신성한 노동 윤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제 수당이 너무 많으면 빈민들의 출생률만 높일 뿐, 생활조건 향상에는 기여 못할 것으로 봤다. ‘밀’은 구재 수당이나 임금을 높이자는 사회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정책들은 반대했다. 밀은 위선자들, 엘리트주의자들, 합리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다. 그의 삶은 오로지 투쟁 그 자체였다.
비운의 혁명가이자 경제학계의 이단아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독일, 당시는 ‘프러시아 라인란트 틀리어’에서 부로주아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고 포도농장도 있는 부자로 유대계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자도 소비자도 못되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빚에 허덕이고 대학생활은 ‘본’ 대학에서 술독에 빠져 지내다,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을 갔다. 제대로 씻지 않아 항상 꾀죄죄하게 다녔다. 그는 자신처럼 지저분하고 기름때가 졸졸 흐르는 옷을 입은 학생들의 수호신처럼 자처했다. 그는 대학교를 야영장 정도로 생각하는 보헤미안이 되어, 혼자서 철학공부를 하고 종교에 매우 비판적이고 ‘헤겔’의 철학을 심취해 ‘헤겔’ 파를 자처했다. 그는 선동적인 언어와 문체로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견했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과 더불어 20세기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신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술을 먹고 주사가 심했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장례식에도 가지 않은 후레자식이다. 뒷바라지를 하던 아버지가 죽자, 그는 학업을 끝내려고 희랍 철학을 주제로 논문을 써, 학위제조 공장으로 유명한 ‘예나’대학에 제출한다. 그리고 통과되어 박사학위를 받는다.
네 살 연상의 어려서 이웃에 살던 남작의 딸 ‘예니’와 결혼한다. 파리에서 그는 ‘독불연보’를 창간하고 공산주의에 본격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다. 평생지기 ‘프리히트 엥겔스’도 이 무렵에 조우한다. 1840년 ‘마르크스’는 세상을 바꿀 ‘이데 오르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프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씌우고, 프랑스 정부는 추방령을 내린다. 그가 자본주의 연구를 통해 얻은 것은 바로 자본주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으며, 대중이 곧 혁명을 일으켜 자본가들을 몰아내리라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과 역사는 ‘헤겔’의 용어를 빌려서 순서를 달리했다. ‘헤겔’은 철학이란 이념의 전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다. 역사란 인간의 정신과 이념의 산물이다. 물질세계, 즉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 그리고 사회의 제도는 이런 이념의 길을 따른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을 거부했다.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에 따르면 ‘신은 단지 인간의 욕망, 필요, 그리고 속성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즉 실존적인 인간이 관념적인 신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후에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 선언한다.
‘마르크스’는 처 에니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집안의 하녀를 건드려 임신시키기까지 했다. 마르크스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친구인 ‘엥겔스’가 애의 아비라고 둘러댄다. 낳은 자식은 무자인 집안에 양자로 보낸 파렴치한이다. 그리고 그의 자본론을 집필한다.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가는 다섯 가지 법칙과 경향을 보자
이윤율 저하 경향과 자본 축적인데, 이윤율은 잉여가치율과 다르다. 잉여가치율은 착취율이라 부른다. 이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양 대 투하된 가변 자본의 양으로 나뉜다.
경제력 집중 증가인데, 자본주의 경제력 집중은 자본의 집적 및 집중으로 표현한다. 자본의 집적은 자본이 잉여가치 또는 이유의 일부규모 생산 확대되는 것을 말한다.
깊어지는 경기 침체 및 공황, ‘마르크스’는 수요와 공급의 조화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는 ‘세이’의 주장을 유치한 말장난, 허튼 소리, 엉터리로 깎아 내렸다.
산업 예비군, 노동력을 기계로 대처하고 주기적인 불황을 겪으면서 자본가들은 점점 많은 사람을 해고하여 길거리로 내몬 다. 이들이 산업예비군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궁핍화, 부와 권력이 소수의 자본가들에 집중돼 궁핍, 억압, 예속, 타락, 착취는 가속되고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에서 노친 것은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이다. 부의 창조는 유형제만이 아니었다. VCR를 개발하는 데는 유형재나 노동의 착취방식이 불필요하다. 구소련 시 미국의 청바지를 청소년이 갈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련에 면화나 노동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겐 상상력과 혁신 규율이 부족해서이다. 이런 비유형적인 요소가 성공적인 기업들과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과 나라를 구분하는 기준인 것이다. 항상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마르크스는 종교적인 감상주의를 몹시 경멸했다. 이런 식의 지적 관용에 대해 그는 불쾌감을 나타내고 거부했다.
‘마르크스’는 현대정치에 어떤 기여를 했나? 그는 공산주의가 고도의 산업화된 나라들인,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가능하다도 봤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구소련과 위성국가들의 정치를 비난하면서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10가지 계획 가운데 (1) 토지에 대한 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땅을 공공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한 것과 (9) 농업과 제조업을 결합하고, 인구를 전국적으로 배치하여 도농의 차이를 폐지한다고 한 제안에, 집단농장 및 국영농장에 국민을 배치하고 강제 편입 시켜서, 라는 대목으로; 스탈인은 수백만 농민을 추위 속에 아사시켰다. 이런 것이 ‘마르크스’의 잘못된 견해였다.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구현한 나라는 없다. 자원부족, 이기주의, 해악으로 가득 찬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 이상은 아마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보다는 천상에게나 더 적합한 일종의 천국 또는 실낙원을 닮은 일장춘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에 대한 허황된 열망은 선량한 사람을 매혹시켜 ‘마르크스’의 복음을 내건 사악한 독재 정권들이 등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사회주의와 공산당의 종북파로 불리는 김일성주체사상을 철저히 맹신하며 어리석게도 몰입하는 일부 정치인과 국민들이 있고, 또 이들의 감언이설에 공화국체제하의 국민의 최고주권인 국민의 종복을 선발하는 선거에서 지지표를 던지는 젊은이들이 더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귀로 쉽게 듣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내여 차분하게 사회주의 계보를 살펴보자, ‘마르크스’ ‘엥겔스’ ‘레린’ ‘스탈린’ ‘모택동’ 그리고 ‘레닌’의 쌍둥이 ‘히틀러’까지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다.
2019.08.03.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2
토드 부크홀츠 지음
김영사 발행
첫댓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그런사람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 참 형편없는 냉정, 무지 후레잡배
경제생활 하면서 살면서도
경제에 관해서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네요
인물들을 통해서
사회의 흐름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한 더위는 가는 거 같은데
건강하세요
1.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발전이 없습니다
2. 공동분배가 되니 요령을 피워 편하려 합니다
3. 즉 남보다 잘하려는 자발적 경쟁심이 없어지지요
4. '기회의 균등'과 '경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5. 공정한 기준에 의한 서열의 결과는 받아 들여야 하지요
인간사회에서는 엉원한 이상향입니다. 마르크스 사회주의 이론은 천국이나 신선들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란 말이 맞는 것 갔아요 .그래서 결국은 부패하고 권력화되고 망해서 현재 명맥을 간신히 유지해도 독제국가에서나 가능합니다
책도
맛보고
서로 다른
느낌도 나누고
참
좋네요
류재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