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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일 광주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새벽 일찍 빠르게 준비를 하고 남쪽으로 달린다. 서울 무학국민학교 친구들과 월출에서 아침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에 나주 지나 영암으로 들어가 월출산으로 갈 것이다. 아침부터 빠르게 설친 이유는 산행 후에 서울로 올라가 산행 친구들과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을 모두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미와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김밥을 먹어가며 거의 시간에 맞춰 아침 7시 15분 경에 월출에 도착한다.
서울 무학동 친구들은 전종성, 문성호, 반영환, 장병선, 전현수 하여 모두 5명이 내려와 있었다. 그들은 어젯밤 늦게 여기에 도착하여 근처의 모텔에서 하루밤을 설쳤다고 한다. 반갑게 인사들을 하고 우리는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월출 종주 산행이기에 시간이 제법 걸리고 품 꽤나 팔아야 할 것이다. 근래 부실하게 생활했던 나로서는 고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썪어도 준치가 아닌가? ㅋㅋㅋ
월출의 입구에 선 무학동 친구들. 좌로부터 처음 만나는 전현수, 나, 나의 산친구 전종성, 무조건 뭐든지 쎈놈 반영환, 귀염둥이 문성호, 영원한 어린이회장 장병선이다. 적당히들 늙었지만 옛모습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문성호는 완전 예전 그대로이다. ㅋㅋ
월출은 전남 영암과 강진의 경계에 놓여있다. 해발은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영산강을 낀 너른 들판에서 갑자기 용솟음친 평지 돌출산인 월출의 체감 위용은 상상 이상이며 산세는 수려하기만 하다. 정상인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그래서 이 산 밑에 생긴 마을도 이름이 영암이 아니던가?
월출은 동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아울러 산세에 걸맞게 도갑사(道岬寺), 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岩峰)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 호남 제일경의 명산이다.
그 외에도 북쪽의 용추폭포, 동쪽의 구절폭포, 남쪽의 금릉경포대 등이 절경을 이루며,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0.6m의 구름다리가 놓였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되어 이 산의 또 하나의 명승지가 되고 있다.
월출은 1972년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가, 1973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이 공터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그러니 여기가 산행 들머리이다. 뒤로 보이는 월출의 바위가 우뚝하지만 저건 예고편에 불과할 뿐이다. 위에 올라서면 저것은 하나의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월출은 천관, 변산, 내장, 두륜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혔는데, 아마 그 중에서도 월출이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월출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우는 한국 최남단의 명산인 것이다.
조금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천황사. 반대편 도갑사에 비해 사세가 미약하지만 나름대로는 오래된 고찰이다. 월출산 사자봉 아래 위치한 천황사는 오랜 세월 동안 천년고찰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터에서 발굴된 와편들이 모두 통일신라시대 것들이어서 창건된 시기가 통일신라시대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뒤의 기록들을 보면 천황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대각국사문집'의 보월산 사자사 라는 대목이며, 천황사는 고려 전기에 대각국사 의천이 사자사의 사찰을 찾아갈 정도로 사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화재로 인하여 법당과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으나 요사채와 법당을 복원하는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천황사의 특이한 점은 이 사찰이 흔한 조계종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법화종의 전법수행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절이라는 것이다. 대한불교 법화종은 대각국사 의천을 종조로 모시며, 신라의 원효대사가 경찬한 묘법의 현의와, 고려 체관법사가 홍전한 법화의 종지를 계승하여, 고려 의천 대각국사가 수립한 정통법화 종문으로 대중불교, 애국불교, 생활불교 운동을 통하여 민족화합을 이룩하고 인류의 영원한 불국토 구현을 이상으로 함을 종지로 하는 종파이다. 본존불을 십계만다라로 하고,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며 소의경전으로 묘법연화경이 있다.
천황사 지나서는 매우 가파르다. 천황사 코스는 도갑사 코스와는 다르게 처음에 정상까지 가파르게 올랐다가 도갑사까지 종주하면서 서서히 내려가는 형세이다. 산은 어디로 가든 일단 올라야 한다. 그래야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오르다 뒤를 돌아다 보니 서서히 영암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르는 것은 계속된다. 역시 산은 정직하다. 부실하게 생활하면 반드시 산에 들어와서 죽는다. 나 역시 최근에 지나치게 부실하여 오늘 식은 땀을 많이도 흘려댄다. 다 업보겠지. 행위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오는 법이다.
드디어 도착한 구름다리. 이제는 구름다리도 많이들 생겼지만 예전에는 월출과 대둔이 유명했었지. 아찔하기로 유명한 월출의 구름다리이다.
단미와 오랜만에 다시 선 월출산 구름다리
구름다리에서 쳐다 본 월출의 서쪽 능선
구름다리에서 내려다 본 천황사 방면의 바람골
구름다리 테라스에 선 장병선. 병선은 무학국민학교 어린이회장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범생이였는데 명문 경복고와 서울대 출신이다. 현재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창업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름다리에서 사자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너무 가파르고 계단이 길어 한참 땀을 흘려야 한다.
조금 위에서 내려다 본 구름다리.
사자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은 가파르기만 하다.
깊은 바람골. 월출은 평야지대에 돌무더기가 갑자기 용틀임한 형세라 계곡이 약한 것이 흠이다. 하지만 산줄기가 있으니 계곡도 있다. 아마 이 가뭄에 물은 적을 것이다.
사자봉 부근에서 본 서쪽 능선. 능선에 드문드문 보이는 바위의 형세가 예사롭지 않다.
월출의 고도는 사자봉이 가까워 옴에 따라 자꾸 높아진다.
월출산(月出山)은 이름에서부터 달(月)이다. 여성을 상징하면서 음의 극치이다. 그런데 월출산은 단단한 바위산이다. 여기에 월출산의 오묘함이 숨겨져 있다. 단단한 양기의 암석이 불꽃처럼 부드럽게 여성적으로 빚어짐으로써 상극의 음양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절묘한 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고,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오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으니, 이 기운이 바로 월출산의 보이지 않는 뒷면이다.
산세(山勢)를 보면.................. 월출산은 정상인 천황봉과 구정봉을 연결하는 동서로 늘어선 산줄기를 경계로 해서 북쪽인 영암과 남쪽인 강진의 산세는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영암 쪽의 산세는 너무 기가 세고 자못 웅장하여 武사적인 양의 기질이다. 이와는 반대로 강진 쪽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푹신한 흙산은 순탄한 산세로 文사적인 음의 기풍을 보여준다. 하나의 산이 음과 양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월출은 아래서 올려 보면 남성이요, 위에서 내려 보면 여성이다. 남성처럼 굳고 꼿꼿하게 돌출한 사자봉(獅子峯) 등 바위 봉우리에 압도당하다가도, 억새밭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금세 포근해진다. 구멍이 뻥뻥 뚫린 구정봉의 주변 봉우리들은 오밀조밀한 여성미를 물씬 풍긴다. 심지어 멀리서 보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기만 한 천황봉마저도 정상에 오르면 딴판이다. 300여명은 족히 앉을 만큼 넓은 반반한 바위가 깔려있어 안방처럼 넓기만 하다. 양기와 음기를 같이 보다듬은 월출에 우리는 남자 6명과 여자 1명이 섰다.
사자봉을 돌아 돌아 나아가니 드디어 월출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 월출의 주능선도 나타난다. 한국의 대부분 산들이 흙산이지만 설악산, 주왕산과 함께 월출산은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만들어진 돌산으로 힘이 넘친다. 하늘선에 걸친 바위들은 울퉁불퉁한 톱날처럼 뾰쪽해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월출을 생각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불꽃같은 바위들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월출산 정상 천황봉.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인다.
정상을 오르면서 뒤돌아다 보니 사자봉이 보이고 그 뒤로 우리가 오른 바위능선들이 보인다. 역시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정상 천황봉을 향해서 영차, 영차! 장병선이와 문성호가 보인다.
드디어 통천문. 이른 바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이 통천문이 있으면 반드시 천황봉이나 천왕봉이 있다. 옥황상제가 계시는 하늘나라라는 뜻이다. 통천문을 통하여 우리는 드디어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통천문의 통로는 좁다. 백금녀는 못 지나가는 통로이다. 이 통천문을 지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가 지나온 바위 능선들. 월출산은 신령스런 바위, 영암(靈岩)이요, 영암이 월출산이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월출산을 온 몸으로 느낀다. 월출산을 비추는 보름달과 그 빛을 받은 바위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적(靈的) 에너지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나같은 나그네는 음양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 영기(靈氣)가 충만한 바위산인 월출산을 감히 영암산(靈岩山)이라 부르고 싶다.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 어디 가든 월출의 테마는 늘 바위산이다. 한마디로 월출은 바위 용솟음산이다.
드디어 월출의 정상, 천황봉. 높이는 809m지만 들머리의 해발이 거의 제로 수준이라 여느 산 1,000m보다 오히려 더 힘이 든다. 나만 빠지고 모두 폼을 잡았다. 한국 산들의 봉우리들은 거의가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불교 용어들이 명명되어져 있지만 간혹 토속적인 용어들도 있다. 그것이 바로 천황, 천왕인데...........전국에 천황봉이라는 정상을 가진 산이 계룡산, 월출산, 속리산, 괘관산, 재약산 등이 있고 천왕봉은 지리산 정상에 붙어있다.
정상에서 동으로 바라다 본 월출 주능선. 저기 오른쪽 큰 바위가 구정봉이다. 저 바위능선을 지나서야 미왕재로 나아가게 된다.
정상 천황봉에서 이제 종주에 들어가는 팀. 오늘은 선두에 늘 단미가 서 있다. 그녀는 지난 주에 계속 아파서 어깨에 주사도 맞았는데 예상 외로 오늘 몸이 가볍다.
월출은 천황봉을 넘어 內 월출로 들어서면 능선이 완만해 지고 포근해 진다. 눈 앞에 월출의 주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능선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 같지만 군데군데 이렇게 오르내림도 있다. 선두에는 몸이 가벼운 단미와 쎈놈(반영환)이 있다.
뒤돌아보며 우리가 지나온 길을 점검해 본다.
이제 저 앞을 올라 우측에 있는 큰 바위산을 오르면 거기가 구정봉이다.
구정봉이 자꾸 가까워진다. 천황봉과 더불어 월출에서는 가장 유명한 봉우리이다.
구정봉 가다보면 이런 남근석이 나와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본다. 조금 떨어진 구정봉 밑의 베틀굴을 마주보며 팽팽하게 서있는 모습이 너무도 남자의 물건을 닮은 모습이고, 돌의 중심부에는 깊은 골이 파져있고, 이층 건물 높이의 남근석은 실제의 모양을 크게 확대한 모습 그대로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보는 사람마다 경탄과 함께 자연의 조화에 갈채를 보내지 않는 이가 없다. 남근석 위로 돌을 던져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입소문이 퍼져 너나 나나 마구 던진 작은 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월출의 아름다운 바위들
쎈놈은 역시 쎈놈인가? 우리의 쎈놈(반영환)은 허큘리스처럼 돌을 들어 올려서 단미를 치려고 한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철쭉은 아직도 봄이 완연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구정봉으로 가는 길에 아가리를 쩍 벌린 거대한 야수와도 같은 형상을 한 베틀굴이 나타난다. 이 굴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란한 여인들이 베를 짠 곳이다. 굴속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여성의 음부 형상 바위가 적나라한 나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음수굴, 음혈(陰穴)이라고도 부른다. 베틀굴은 지척에 있는 남근석이 향하는 방향에 서 있어 저 거대 남근석이 이런 구멍을 내어놓았다는 말이 있다. 참! 크게도 뚫어 놓았다. 어떤 놈인지..............
하지만 이 여성의 질구멍 같은 베틀굴에 들어가보면 다시 한번 놀란다. 설명이 없어도 놀란 이유를 알 것이다. 저 모습을 보라!
요도와 질구멍까지 구분해 놓았다. 참으로 기묘한 구멍들이다. 아마 이 위의 구정봉에 올라서면 구멍에 관한 논의는 절정에 이를 것이다.
구정봉 정상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부에 구멍이 아홉개가 나 있어 구정봉이라는데..............그중 가장 큰 구멍이다. 가물어 물도 더러워져 있다.
이 구정봉은 거대한 암반으로 이뤄져있다. 그 넓이는 장정 50여명이 앉을 수 있으며, 직경 2∼3m 안팎의 웅덩이가 9개나 패여 물이 항상 괴어 있다. 이 웅덩이를 일러 정(井)이라 한다. 하지만 구덩이는 아홉개가 넘어 보기에 따라서 10여개나 되는데.......전현수 왈 "갑오인 9자는 滿 의 상징으로 자고로 옛말에 10이 넘는 수를 언급하는 것은 없다"......우리는 왜 이렇게 구멍이라는 개념에 묘한 감정을 실을까? 나는 월출에 올 때마다 천황봉보다는 구정봉의 구멍들에 더 집착하고 있다. 아! 그리운 우리들의 고향, 구멍이여!
구정봉에 선 우리 팀들.
월출은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산이라 항상 물이 부족하다. 그래서 산의 정상에 그것도 바위에 구멍을 뚫어 물을 머금고 있으니, 절구통 모양의 아홉 개 천연우물이란 의미로 구정봉(九井峯)이라 한다. 이 바위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월출은 외양뿐 아니라 물과 불을 따지는 역의 기운도 언급하고 있으니 음양지묘에 수화(水火)지묘의 기운도 갖춘 산이란 말인가? 에이, 어려운 잡소리는 집어 치우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월출의 바위들
우리는 좌측 상단의 저 천황봉에서 눈에 보이는 능선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구정봉에 머물던 젊은이들이 얼음막걸리를 덥썩 문성호에게 주고 간다. 안 그래도 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불평하던 성호에게.....용케도 술꾼을 알아보니 신통도 하다. 막걸리를 받은 성호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막걸리는 얼음이 뒤섞여 아주 시원했다. 이름하여 냉막걸리다.
월출의 바위와 영암들이 매치된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정도면 내 사진도 괜찮은가?
우리 팀들이 종주 끝자락인 미왕재에 접근하고 있다. 미왕재는 억새풀 명승지로 이름나 있지만 지금은 시즌이 아니다.
드디어 미왕재. 우리는 여기서 도갑사로 떨어질 것이다.
속속들이 미왕재에 도착하는 삼무팀들! 쎈놈, 현수가 들어오고 있다.
미왕재 바위 위에 선 전현수. 오른손을 내리고 측면에서 찍었다면 작품이 나왔을 건데 아쉽다. 현수는 처음 만났지만 그는 산경험을 제법인 친구같다. 얘기중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일본 북알프스를 섭렵했다는 얘기가 나오니.........산을 바라다 보는 감각도 평범한 그것은 아니다.
자! 이제 미왕재를 떠나 도갑사로 내려가자. 오늘 저녁에 서울 일산에서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도갑사로 내려가는 길
멱 감기 위해 옷을 벗는 쎈놈! 제 딴에는 숨어서 한다지만 나의 카메라 크로즈업에 걸렸다.
도갑사 계곡의 맑은 물을 더럽히는 문성호.
드디어 도갑사 지역. 맨 먼저 나타나는 보물 1395호 도선국사비각(도선수미비). 碑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위해 나무, 돌, 쇠붙이 땨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비는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아름다운 도갑사 계곡
드디어 도갑사. 그런데 도갑사가 어찌 이렇게 변해버렸는가? 고풍이 깃든 그윽한 고 사찰이 이렇게 상업성이 물씬 풍기는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에이그! 어쨌든 천년고찰 도갑사다. 옛 고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새로 지은 건물들만 보인다.
도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선사가 중건하였다. 국보 50호로 지정된 도갑사의 해탈문(解脫門)은 현존하고 있는 한국의 건물 중 보기드문 옛 건축물이며, 이 밖에 대웅보전(大雄寶殿:지방유형문화재 42),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89), 도선국사비(지방유형문화재 38), 명부전, 팔각석등대석, 3층석탑, 5층석탑, 석제(石製) 구유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도선 및 수미대사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도갑사의 외관은 엄청나게 변했다. 주변의 개울들은 이렇듯 토목공사로 정비가 되었다. 정비했다고는 하지만 옛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아 왠지 아쉽다.
월출산 도갑사.............일주문까지 왔다.
하산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도토리묵에다 막걸리 한잔 쳐야지.
전현수와 전종성. 묘한 표정들이다.
폭우 속을 달려 서울 덕양의 이정이네로 갔더니 기다리던 이형섭과 이유경은 가고 이정과 김순영이가 있었다. 그리고는 한바탕 진한 라스팅....................이정이가 잡아주는 모텔에 자고 일어나니 아침을 먹잔다. 속풀이에 좋은 동태탕이다!
시원한(?) 동태탕으로 속을 푼다. 월출의 추억은 어느듯 서울 도심에 묻혀가고 있다. 친구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겠지. 하지만 나는 이게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