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무늬가 날아가다
강경보
촤르르 분수가 음표처럼 쏟아지고 벙어리부부가 분수대 앞에서 마주 보고 서 있다 두 손 올리고 내리고 휘두르고 비비고 내가 영 들을 수 없는 음역音域을 엮느라 분주하다 벙어리사내의 아기띠에 업힌 아이가 햇살눈썹을 깜박이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좇고 있다 알고 있을까? 고요가 제 부모의 말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등 뒤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아버지의 등처럼 견고한 침묵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아이는 다시 어떤 세상의 언어를 제 몸의 무늬로 그려 넣을까 라고 생각하는데 벙어리사내가 어깨너머로 아이를 쳐다본다 히힝 말馬울음 같은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아부아부 아이가 방긋 웃는다 내 생애 처음 본 아이의 나비무늬가 함지박처럼 벌어진 벙어리사내의 입 속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다
ㅡ시집<우주물고기>종려나무, 2010년. |
첫댓글 강경보 시인은 잘 있는지 .. 그 훤출한 모습 본 지 꽤 오래 되었네 ..
지금쯤은 그도 히끗한 머리의 중년을 넘어선 나이가 되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