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강공 영의정 사직 상차문
* 효종 1년(1650년) 11월 21일
영의정 이경여가 인사의 공정 등의 이유로 면직을 청하나 윤허하지 않다
영의정 이경여가 상차하여 면직을 구하였다. 그 대략에,
“어리석은 신은, 반짝이는 반딧불로도 혹 해와 달이 내리 비추는 것을 도울 수 있고, 미미한 티끌이나 이슬로도 거의 바다와 산악의 높고 깊은 것을 도울 수 있다고 망령되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단지 스스로 감격하여 국정을 담당해서 옛사람의 알아줌을 추모하여 보답하고자 하는 의리(義理)에 스스로 부합되게 하려고 생각했으니, 힘을 다해 도와 시대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야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나라의 운명이 불행하여 강한 이웃이 공갈하고 협박하며, 일의 기미가 번갈아 핍박하여 인심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각도에 사신을 계속 내려 보내도 모든 농사는 흉년이 들어 국세와 민생이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하늘에 달린 문제요 사람들에게 달린 문제이지 우리 잘못이 아니니, 하늘에 계신 조종의 영령과 온 나라에 사는 백성들이 아마 전하를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상(聖上)의 자만심이 날로 자라나 기쁨과 노여움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형벌과 상이 중도(中道)를 잃어 원근의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굽은 길이 점점 열리고 공도(公道)가 행해지지 않으며, 아첨하고 굽실거리는 것이 풍습을 이루고 충성스럽고 곧은 사람은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쓰고 버릴 때에 친한 이와 소원한 이의 차별이 있고, 말하는 기색이 갑자기 화평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상하가 서로 교유하지 못하여 화창한 기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성의(誠意)를 미루어 만물을 다스리고 아랫사람을 접할 때 공손하기를 생각하라.’는 것은 생각지 않고, 오직 억측과 속임수로 밝음을 삼고 남의 뜻을 꺾어버리는 것으로 위엄을 삼으며 자질구레한 것으로 지혜를 삼고 있습니다. 붕당(朋黨)을 깨뜨리려고 하면 시비와 현사(賢邪)는 분변하지 않고 오직 색목이 편중한 것만 생각하시고, 기강을 떨치려고 하면 공평정대(公平正大)한 것은 힘쓰지 않고 단지 과중한 위엄과 형벌만 숭상하십니다. 유사(有司)가 서리(胥吏)의 직책을 행하고 정해져 있는 법률을 무시하고 상(上)의 뜻대로 하여 조정의 사대부들은 벌벌 떨며 허물을 얻을까 염려하고 민심은 흩어져 아침·저녁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기상이 참혹하여 위한(危亂)의 징조가 나타나고, 천심이 기쁘지 못해 재해가 거듭 이르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이 날마다 흔들리고 폐단이 있는 정사가 점점 불어나는데도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잘난 체하고 뭇 신하들을 깔보고 계십니다. 널리 구제하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간쟁하는 길이 이미 막혔으며, 어진 이를 표상하는 정성이 이르지 않고 피사(詖辭)와 음사(淫辭)가 날마다 방자합니다. 국가의 노성(老成)한 신하들은 직위를 사양하고 향리로 돌아가며, 장사(莊士)들도 전원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나왔던 사람이 지금 도망했는데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국가가 바야흐로 흥성하여 공고히 흠이 없는 때에 처하더라도, 급한 여울에 배가 내려가듯 비탈에 구슬이 굴러가듯이 글러져가는 형세를 만회(挽回)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위급(危急)하여 보전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때에 있어서 무너져 버리는 환난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는데,
답하기를,
“경(卿)의 차자(箚子)를 보니 벌벌 떨리도록 두렵고 척연(惕然)히 감동을 준다. 내 어찌 마음이 움직여 더욱 공경하지 않겠는가. 오직 경이 선왕의 은혜와 알아줌을 미루어 생각해 나를 덕(德)이 없다고 내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혼매(昏昧)한 과인(寡人)만의 다행이겠는가. 실로 온 나라 사람들의 다행일 것이다. 속히 출사(出仕)하여 상하의 여망(輿望)에 부응토록 하라.”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영인본】 35책 459면
○領議政李敬輿上箚乞免, 其略曰:
愚臣妄意, 螢爝之明, 或裨日月之照臨; 塵露之微, 庶補海岳之高深。 竊不自揆, 徒自感結, 妄意擔當, 以自附於古人追遇欲報之義也。 其欲竭力協贊, 少濟時艱, 豈有量哉? 邦運不幸, 强隣恐脅, 事機交逼, 人心崩潰。 八使接軫, 三農失稔, 國勢民生, 已到無可奈何地矣。 然此則在天在人, 皆不在我, 祖宗在天之靈, 群黎率土之心, 容有所恕於殿下矣。 至於乾剛日亢, 喜怒任情, 刑賞失中, 遠近驚駭, 曲逕漸開, 公道不行, 諛侫成風, 忠讜見疏。 用舍之際, 親踈有異, 辭氣之間, 頓失和平。 上下不交, 泰象未著。 不思推誠馭物, 接下思恭, 惟以億詐爲明, 摧折爲威, 叢脞爲智。 欲破朋黨, 則不辨是非賢邪, 而惟慮色目之偏重; 欲振紀綱, 則不務公平正大, 而徒尙過重之威刑。 有司行胥吏之職, 三尺爲安出之具, 以致搢紳惴惴, 猶恐獲過, 民心渙散, 莫保朝夕。 氣象愁慘, 危亂斯兆, 天心不豫, 災害荐臻。 邦本日搖, 弊政漸滋, 而殿下傲然自聖, 輕視群臣, 匡救之言不入, 諫諍之路已塞, 象賢之誠未至, 詖淫之說日肆。 家耄遜荒, 莊士歸田。 昔日所進, 今不知亡。 以若所爲, 處國家方盛金甌無缺之秋, 灘舟坂丸, 挽回亦難。 矧在危急存亡之日, 可能免顚隮之患乎?
答曰: "覽卿箚辭, 澟然而懼, 惕然而感。 寧不動於中而益加敬焉? 惟卿追念昔日之恩遇, 勿以否德而棄之, 則豈特寡昧之幸? 實是一國之幸, 須速出仕, 以副上下之望。"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59면
* 효종 1년 1650년 11월 11일
이경여가 영남 유생의 배척을 받았다는 이유로 면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영의정 이경여가, 영남 유생들의 배척을 받았다는 이유로 소를 올려 면직을 구하였다. 그 대략에,
"삼가 영남 유생들의 상소를 보건대, 암암리에 지적하고 드러내 놓고 배척하는 데 남은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두 어진이의 아름다운 덕은 평소 우러러 사모하는 바로, 존숭하고 숭상하는 마음은 실로 밖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무함하고 헐뜯는 말에 대해 신도 애통해 하고 미워합니다. 가령 유직 등이 종사의 중대한 법전은 가벼이 거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면 사람마다 각각 견해가 다르니 깊이 허물할 것도 못 됩니다. 그러나 감히 어버이를 버리고 임금을 뒤로 했다는 말을 방자하게 마구 덧붙였으니, 성균관 유생들이 벌을 시행한 것은 실로 공공의 의논이었습니다. 다만 황첨을 추가한 것은 아마도 중도에 맞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전계(前啓)에서 운운한 바가 있습니다. 그간의 말들에 대해서는 성명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찌 감히 억지로 조정의 명을 어기고 성대한 과거를 방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한 말로서 바른 길로 방향을 바꾸도록 하고자 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영남 유생들이 몸소 그렇게 해 놓고 도리어 신의 죄로 삼으니, 그 또한 이상합니다. 영남의 선비들은 무려 수천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모든 사람의 의견이 모두 유직의 소견과 같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그럴 리가 없는데도 반드시 온 도 선비들을 들먹이며 말을 하니, 신이 이른바 달래고 위협했다는 것이 과연 그런 일이 없었겠습니까? 하늘은 속일 수 없으니, 신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저들이 ‘뜻을 얻어 요직을 차지하고서 한 세상을 움켜쥐고 마음대로 폈다 오므렸다 쥐고 흔들며 오직 자기 뜻대로 하는 자라야 바야흐로 달래고 위협할 수 있다.’고 한 말은, 신을 멋대로 정권을 휘두르는 권간으로 여긴 것입니다. 신이 과연 이런 죄가 있다면 유배하거나 죽이는 법전을 명확히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이 비록 비루하고 졸렬하지만 또한 대신의 지위에 있는데 어찌 감히 이처럼 거리낌 없이 모욕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신 자신은 모욕을 당해도 괜찮지만 나라의 체통을 어그러뜨릴 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권신이 정권을 쥐고 정사를 어지럽히면 초야에 있는 선비로서 소장을 올려 죄를 청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만, 자신의 사사로운 울분으로 인하여 저쪽을 칭탁(稱託)하며 이쪽을 비유하고 반은 드러내고 반은 숨기면서 대악(大惡)에 대신을 빠뜨리기를 이와 같이 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무릇 민풍과 토속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단지 지역만 가지고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이 어찌 마땅하겠습니까. 그 고장에서 선정(先正)들이 배출되자 그 지방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호칭하게 되었고, 그분들의 남은 풍화와 공렬을 지금까지 우러러 사모하고 있습니다. 가령 그분들의 남은 향기가 민멸되지 않았다면, 선유를 원수처럼 보기를 한결같이 어찌 그리도 너무 심하게 하여 이런 오늘날의 시끄러운 분쟁을 불러온단 말입니까. 더구나 영남에는 선비들이 거의 1만 명이나 되니, 그 안에 선을 즐기고 의를 좋아하며 단정하게 자신을 지키는 선비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눈을 부릅뜨고 간담을 펼쳐 선현을 무함하고 선정을 더럽히는 자들이 추로지향이란 옛 이름에 빙자하여 ‘온 도의 선비들이 모두 나를 따른다.’고 하니, 어찌 영남의 인사들을 무함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언로가 막히고 조정의 의논이 분열되어 곧고 진실한 선비는 물러나길 생각하고, 아첨하고 굽실거리는 것이 풍습을 이루고 있어 하늘의 노여움과 백성들의 곤궁함이 날로 더욱 심해지고 있으니, 신과 같이 아주 형편없는 사람은 마땅히 물러나야 할 뿐입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아, 심하구나. 내가 밝지 못함이여. 영남 유생들의 상소 가운데 임금에게 요구하고 위를 무시한다는 등의 말에 대해 범범하게 답을 하였는데, 어찌 암암리에 지적하고 드러내 놓고 배척함이 이와 같은 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점에 대해 매우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전날 경의 계사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조정하려고 한 것이었다. 진실로 권유하고 조절하여 크게 화합하는 경지로 함께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으니 어찌 배척할 만한 말이 있겠는가. 저들의 마음 씀을 비록 알 수 없지만, 어찌 억지로 끌어들여 자신을 정당화시킬 수 있겠는가. 경의 뜻이 바로 나의 뜻이다. 경이 만약 저들의 공격과 배척을 받아 편안하지 못하다면 내 어찌 유독 편안하겠는가. 경은 과인의 혼매함을 훈계하고 깨우쳐 종사를 보전해야 한다. 어찌 이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러나기를 구할 수 있겠는가. 이 일로나 저 일로나 경이 자리를 떠날 이유가 없다. 내 비록 더불어 어떤 일을 하기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선왕조의 옛 은혜를 생각해 속히 출사해서 도(道)를 논해 나의 갈망에 부합되게 하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58면
○領議政李敬輿以被嶺儒之斥, 陳疏乞免, 其略曰:
伏見嶺疏, 暗指顯斥, 不遺餘力。 若兩賢懿德, 素所景仰, 尊尙之心, 實非外得, 誣毁之說, 臣亦痛嫉。 柳㮨等若以爲, 從祀重典, 不可輕擧云, 則人各異見, 不足深過, 敢以遺親後君等語, 肆然橫加。 館學施罰, 實是公議, 而追加籤黃, 恐非適中, 故臣之前啓, 有所云云。 其間說話, 聖明想已洞燭矣。 豈敢强拂朝命, 作梗盛擧云者, 乃未然之辭, 欲其改途之意也。 嶺儒躬自蹈之, 反爲臣罪, 其亦異矣。 嶺南士子, 無慮千數, 豈家家戶戶, 悉同柳㮨之所見也? 此則必無之理也, 而必以一道爲言, 臣所謂誘脅者, 果無其事乎? 天不可欺, 臣不必多言。 乃曰得意當路, 把握一世, 運掉伸縮, 惟意所欲者, 方可以誘脅, 是以臣爲專擅權奸。 臣果有此罪, 則當明加竄殛之典, 不然則臣雖鄙劣, 亦忝大臣之名, 豈敢無忌憚若是也? 臣身可辱, 國體可虧耶? 自古權臣, 執柄亂政, 草野之士, 有抗章請罪者, 未有因己私憤, 託彼喩此, 半露半隱, 陷大臣於大惡若此者也。 凡民風、土俗之美, 專在於人, 詎宜但以地自多也? 先正輩出, 號稱鄒、魯, 遺風餘烈, 至今景仰。 若使餘芬未泯, 則仇視儒先, 一何已甚, 而致此今日紛鬧也? 矧嶺之南, 章甫近萬, 其中樂善好義, 恬靜自守之士何限, 而瞋目張膽, 誣賢醜正者, 藉鄒、魯之舊名, 而曰: "一道皆從我。" 豈非誣南中人士哉? 況今言路蔽塞, 朝論潰裂, 直諒思退, 諛侫成風, 天怒、民困, 日以益甚。 如臣萬不近似者, 只合退伏而已。
答曰: "噫嘻甚矣, 予之不明也! 嶺疏要君無上等語, 泛然答之矣, 豈料暗指顯斥至此哉? 深用愧歎焉。 日者卿之啓辭, 非有他意, 而欲其左右也。 亶爲勸諭調劑, 同歸於太和之境, 安有可斥之語也? 彼之用意, 雖不可知, 而豈可强引而自當哉? 卿之意, 卽予之意也。 卿若被攻斥而不安, 則予豈獨安哉? 卿宜戒誨寡昧, 以保宗社。 豈可求退, 若是邁邁哉? 以此以彼, 卿無去位之理。 予雖不足與有爲, 須念先朝舊恩, 速出論道, 以副渴望。"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