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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그 당대의 국제 전쟁 이었습니다. 이 임진왜란이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는지는 참으로 미스테리 입니다.
적어도 한반도 임진왜란은 허구 입니다. 또 그 당대의 전쟁인 임진왜란에 수 많은 사람과 물자가 동원되었는데 참으로 이채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선조 31년 무술(1598,만력 26) 5월26일 (경술) 팽 유격 처소에 행행하여 파랑국(波浪國)인을 대면하다
상이 팽 유격(彭遊擊)의【팽신고(彭信古).】 처소에 행행하여 술자리를 베풀었다...........................
또 말하기를,
“데리고 온 얼굴 모습이 다른 신병(神兵)을 나와서 뵙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느 지방 사람이며 무슨 기술을 가졌소이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호광(湖廣)의 극남(極南)에 있는 파랑국(波浪國) 사람입니다. 바다 셋을 건너야 호광에 이르는데, 조선과의 거리는 15만여 리나 됩니다. 그 사람은 조총(鳥銃)을 잘쏘고 여러 가지 무예(武藝)를 지녔습니다.”【일명은 해귀(海鬼)이다. 노란 눈동자에 얼굴빛은 검고 사지와 온몸도 모두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검은 양모(羊毛)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이마는 대머리가 벗겨졌는데 한 필이나 되는 누른 비단을 반도(磻桃)의 형상처럼 서려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바다 밑에 잠수하여 적선(賊船)을 공격할 수가 있고 또 수일동안 물 속에 있으면서 수족(水族)을 잡아 먹을 줄 안다. 중원 사람도 보기가 쉽지 않다.】
난중잡록 3(亂中雜錄三) 무술년 만력 26년, 선조 31년(1598년)
27일 제독 유정(劉綎)이 친히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주로부터 임실(任實)에 도착하였다. 군졸이 먼저 남원에 이르러 사방으로 흩어져 나아가 목재를 흑성(黑城)의 용두산(龍頭山)으로 날라다가, 장수의 사관과 군막을 안배하여 짓고, 책(柵)을 설치하고 참호를 팠다. 이튿날 유정이 용두채에 이르러 유진하니, 전후 군대가 총합 4만 7천여 명이었고, 그 가운에 우지개(牛之介) 3명이 있었는데, 키와 몸뚱이가 보통 사람의 10배요, 해귀(海鬼) 4명이 있었는데 살찌고 검고 눈이 붉고 머리카락이 솜털 같았고, 초원(楚猿) 4마리가 있었는데 말을 타고 놀리는 것이 사람과 같고, 몸뚱이가 큰 고양이를 닮았고, 낙타ㆍ생노루ㆍ3희생과 잡물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흥판(興販) 장사꾼이 먼저 오는데 그 수도 또한 많았다. 적과 대치해서 다급한 때에 이르러서도 파는 자가 앞에 있어 소를 죽이고 돼지를 잡아서 찢어서 불에 익혀 놓으면 군졸이 은을 주고 사서 먹었다. 흥판도 또한 소속된 진이 있어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하였다.
고대일록 제3권 무술(戊戌, 1598) 가을 7월
○ 7월 9일 임진(壬辰)
명나라 조정(中朝)에서 양 경리(楊經理)를 잡아갔다. 그가 외국의 일을 전적으로 담당하면서, 뇌물이 함부로 오갔기 때문이라 한다. ○ 제독(提督) 유정(劉綎)이 군사를 이끌고 전주(全州)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달자(㺚子)와 해귀(海鬼)도 왔다고 한다. 해귀는 바로 교지(交趾)의 남이(南夷) 사람이다. 물에 들어가 십여 일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 풍기유전(風氣流傳)
충렬왕 때에 원 나라에서 만자군(蠻子軍) 1만 4천 명을 보내어 해주(海州)ㆍ염주(鹽州)ㆍ백주(白州)의 3개 주에 주둔하게 하였는데, 만자군은 남만 지방의 해귀족(海鬼族)이다.
위의 조선왕조실록,난중잡록,고대일록의 기록을 보면, 임진왜란 그 당대의 전쟁에 흑인(黑人)까지 전쟁에 참여하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지금의 아프리카 흑인의 전형적인 형태를 나타내는 흑인의 별칭이 해귀(海鬼)라 하며 이들의 나라는 호광(湖廣)의 극남(極南)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고대일록의 기록에서는 이 흑인이 교지(交趾)의 남이(南夷) 사람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호사설의 기록에서는 해귀족(海鬼族)을 만자군 즉 남만(南蠻)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영애승람(瀛涯勝覽) 점성국(占城國)
其國即釋典所謂王舍城也。在廣東海南大海之南。自福建福川府長樂縣五虎門開船往西南行,好風十日可到。其國南連真臘,西接交趾界,東北俱臨大海。
(그 나라는 불경에서 말하는 왕사성이다.(그 나라는) 광동의 해남 대해의 남쪽에 있다.복건 복천부 장락현 오호문에서 출항하여 서남쪽으로 가면 순풍이면 열흘정도 만에 이를수 있다.그 나라는 남쪽으로 진랍과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교지와
접하며 동북으로는 모두 대해에 임해 있다.)
역사의 기록에서 마갈타국에 왕사성이 있다고 하며 마갈타국(摩揭陀國:Magadha)에 나란타사(那爛陀寺)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3 - 석전류 2 석전잡설(釋典雜說) 서유진전(西遊眞詮)에 말한 오지 석후(五指石猴)에 대한 변증설의 기록과
순암선생문집 제17권 잡저(雜著) 천학고(天學考) 을사년 의 기록에서는 천방(天方)ㆍ묵덕나(黙德那) 등 지방에 나란타사(那爛陀寺)가 있으며 당조의 현장법사는 이곳 나란타사(那蘭陀寺)에서 계현(戒賢)을 만나 유식(唯識)의 종지(宗旨)를 전수받아 돌아왔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아라비아가 천방(天方=메카)ㆍ묵덕나(黙德那=메디나) 이곳의 서쪽에 교지(交趾)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지의 실제적인 위치는 이집트 지역 혹은 북아프리카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또 다른 관련 기록을 보면,
영애승람(瀛涯勝覽) 섬라국(暹羅國)
"異獸有白象、獅子、貓、白鼠"( (섬라국에)흰 코끼리,사자,살쾡이,흰쥐 등의 진귀한 짐승이 있다.
섬라는 오늘날의 태국이라는데 오늘날의 태국은 사자(獅子)와 무관한 지역인데 사자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수서(隋書) 卷八二,“赤土國……東波羅剌國,西婆羅娑國,南訶羅旦國,北拒大海”。(적토국은......동쪽으로 파라나국 서쪽으로 파라사국 남쪽으로 가라단국이 있으며 북쪽으로 대해에 막혀있다.)
위의 기록에서 주목해야 할 국명은 파라사국(婆羅娑國)입니다. 대만측의 백과사전을 보면,파라사(婆羅娑)의 또다른 표기가 파라찰(婆羅剎)이라고 합니다.
동서양고(東西洋考) 卷二의 기록을 보면,“暹羅,在南海,古赤土及婆羅刹地也”。(섬라는 남해에 있고,옛날의 적토국으로서 곧 파라찰의 땅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대만측의 위키백과를 보면,당조(唐朝)때 파리(婆利)였고,원조(元朝)때 발니(渤泥)였고,명대(明代)때 문채(汶菜)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밖의 또 다른 표기는
양서(梁書)에서 파라(婆羅)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의 기록에서 적토국 즉 섬라의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이 동서양고의 기록처럼 섬라의 속국 또는 섬라가 병합했기 때문에
파라사(婆羅娑)=파라찰(婆羅剎)이 옛날의 적토국이라 기록했습니다.
위의 기록에서 현재의 역사관에서는 발니(渤泥)를 두고 오늘날의 보르네오 혹은 타이 남부의 바르니 라 말합니다. 그러나 임하필기 제39권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 문채국(汶菜國) 의 기록을 보면
문채국(汶菜國)은 명대(明代)때 문채(汶菜)였고,당대(唐代)의 파라국(婆羅國)이며 이 나라는 "동양(東洋)이 다한 곳이자 서양(西洋)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하필기의 기록처럼 "동양(東洋)이 다한 곳이자 서양(西洋)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라는 기록을 토대로 파라사(婆羅娑)=파라찰(婆羅剎)의 위치를 추론하여 보면, 오늘날의 북아프리카와 그 북쪽의 유럽인 스페인 일대로 그 방향이 압축 됩니다. 이 압축된 지역이 고대의 파라사(婆羅娑)=파라찰(婆羅剎)이있었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뒷바침 해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지봉유설 권2 제국부 외국
佛浪機國。在暹羅西南海中。乃西洋大國也。(불랑기국은 섬라 서남 해중에 있다.곧 서양대국이다.)
섬라가 북아프리카에 있었으므로 즉 섬라가 지중해를 접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섬라의 서남쪽에 불랑기국 즉 스페인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사실 입니다. 참고적으로 오늘날의 아프리카 케냐,소말리아의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이 명조때 정화의 선단을 따라간 군사들의 후예들임을
자처 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황당한 사실은 소말리아 지역에 BALI=발니(渤泥)란 지명이 있다는 사실 입니다.
위에서 교지(交趾)의 남이(南夷)인 해귀(海鬼)의 그 정체를 알기 위해 교지국과 관련된 사항을 알아 보았습니다. 교지국과 관련된 나라의 현황의 그 결론은 오늘날의 아프리카 일대 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해국도지(海國圖志)/卷034 ◎小西洋(東北南三利未亞共為此卷)
《職方外紀》曰:更有一種在利未亞之南,名馬拿莫大巴者,國士最多,皆愚蠢(即山牙臘土蠻,見阿邁司尼國誌中)。氣候甚熱,沿海皆沙,人踐之即成瘡贘。黑人坐臥其中,晏然無恙也。喜食象肉,亦食人,市中有市人肉處,皆生齕之。故齒皆銼銳,若犬牙然。奔走疾於馳馬,裸身塗膏,氣膻甚。無文字,初歐邏巴人到此,黑人見其誦經講書,大相驚訝,以為書中有言語可傳達也。地無兵刃,惟以木為標槍,火炙其末,極銛利。性不知憂慮,若鳥獸然。聞簫管琴瑟諸樂音,便起舞不休。性樸實耐久,教之為善事,亦即盡力為之。為人奴極忠用力,視死如歸。遇敵直前,了無避畏。其俗不虜掠,不崇魔像,亦知天地有主,但視其王若神靈,亦以為天地之主,凡陰晴旱澇,皆往祈之。王若偶一噴涕,舉朝皆高聲應諾,又舉國皆高聲應諾,大可笑也。喜飲酒,易醉。所產雞亦皆黑,獨豕肉味美,為天下第一,病者食之亦無害。產象極大,一牙有重二百斤者。又有獸如貓,名亞爾加裏亞,尾後有汗極香。黑人阱於木籠中,汗沽於木,幹之以刀削下,便為奇香。烏木、黃金最多,地無寸鐵,特貴重之。布帛喜紅色班色,及玻璃器。又善浮水,他國名為海鬼。其亞毗心域屬國,有名諳哥得者,夜食不晝食,又止一餐,絕不再食。以鹽鐵為幣。又一種人,名步冬,頗知學問,重書籍,善歌舞,亦亞毗心域之類也。
한 종족은 아프리카의 남쪽에 있는데, 나라 이름을 '모노모트파(馬拿莫大巴)'라 한다. 그 나라 땅에는 인구가 많고, 사람들은 모두 매우 어리석고 느리며, 의리를 알지 못한다. 그곳의 기후는 매우 뜨거우며, 바다에 닿아 있는 곳은 모두 사막인데, 사람이 그것을 밟으면 곧 상처가 생긴다. 그런데 흑인들은 모래 가운데 앉거나 누워도 병이 나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곳은 몹시 지저분하여 마치 돼지우리와 같다. 흑인들은 코끼리 고기를 즐기며, 사람도 역시 잡아먹는다. 시장에는 사람고기를 파는 곳이 있는데, 모두 익히지 않은 채로 입에 넣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가 뾰쪽하고 날카로워서 마치 개의 어금니처럼 가지런하지 못하다. 빨리 달릴 때 그들은 말을 빨리 모는 것보다도 더 빠르다. 그리고 옷을 걸치지 않는데, 옷을 입은 사람을 도리어 비웃는다. 어떤 이들은 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즐긴다.
그들에게는 글자가 전혀 없다. 유럽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이르렀을 때, 흑인들은 유럽 사람들이 경서를 읽고 도리를 강론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워하면서 책 속에 말이 있어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어리석음이 이와 같다.
그곳에는 무기가 없다. 단지 나무로 던질 수 있는 창을 만드는데, 그 끝 부분을 불에 쬐어 그것을 쓰면 매우 날카롭다. 그들의 몸에는 누린내가 배어 있어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의 타고난 성품은 걱정이 없어서 마치 짐승과 다름이 없다. 피리와 거문고 등의 음악 소리를 들으면 곧 일어나 춤을 추는데, 그치게 할 수 없다. 단지 그들은 타고난 성격이 순박하고 진실하며, 참을성이 있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할 것을 가르쳐주면 힘을 다해 그것을 해낸다. 그들은 남의 노비가 되면 주인에게 매우 충실하여 주인을 위해 힘을 써서 죽는 일을 집에 돌아가듯이 가볍게 여긴다. 또한 바로 앞에서 적을 만나도 조금도 피하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풍속은 대체로 마귀의 상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들도 역시 이 세상의 주인이 있는 줄은 알지만, 단지 그의 임금을 신령과 같이 보아서 그를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날씨가 맑거나 흐리거나, 가뭄이 들고 수재를 만나면 모두 가서 그에게 빈다. 만약 임금이 우연히 한번 눈물을 흘리면, 온 조정 사람들이 모두 크게 소리내어 따라 울고,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소리내어 따라 우는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의 성질은 술 마시기를 즐기고, 쉬이 취한다.
그곳에는 기르는 닭도 역시 검다. 다만 돼지고기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서 병이 든 사람이 그것을 먹어도 해가 되지 않는다. 그곳의 코끼리는 매우 커서 상아 가운데 무게가 백 근이나 되는 것도 있다. 어떤 짐승은 모양이 흡사 고양이와 같은데, 산너구리라 한다. 꼬리 뒤에 나오는 땀은 매우 향기롭다. 흑인들은 나무 상자 속에 그것을 가두어 두는데, 땀이 나무를 적실 때 칼로 떼어 내어내면 기이한 향이 된다. 오목과 황금은 매우 많지만, 그곳에는 쇠가 조금도 없으므로 특별히 쇠를 귀중하게 여긴다. 배와 비단은 붉은 색과 아롱다롱한 색을 즐겨서 보석과 같이 여긴다. 또 물위에 잘 뜨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이름을 바다 귀신(海鬼)이라고 한다.
아비시니아의 속국으로 우간다( 哥得者)가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밤에만 먹고 낮에는 먹지 않는다. 또 저녁밥을 한 번 먹는데 그치고, 결코 하루에 두 끼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소금과 쇠로 폐백을 삼는다. 또 하나의 속국은 뿌동(步冬)이라 하는데, 학문을 제법 알고 책을 중요하게 여기며,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춘다. 이러한 것은 아비시니아와 비슷하다.-천기철(동아대 강사 한문학 ) 번역)
위의 해국도지 소서양의 동북남 아프리카 항의 '모노모트파(馬拿莫大巴)' 라는 나라의 별칭이 해귀(海鬼)입니다. 아프리카 관련 역사의 기록에서 나라의 별칭을 해귀국이라 부르는 나라는 '모노모트파(馬拿莫大巴)'외 거의 전무 합니다.
이 나라는 중심지에 해당되는 오늘날의 국가는 짐바브웨 입니다. 짐바브웨가 역사에서 말하는 만자군이었으며 또 해귀국이었으며 임진왜란때 팽 유격(彭遊擊)이 데려온 해귀 였습니다. 이와 별도로 위의 기록에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 사실은
난중잡록의 기록에서 낙타를 데려온 사실 입니다. 한반도 임진왜란이라면 낙타가 뭔 효용이 있기에 낙타를 데려 왔을까요? 이 낙타가 주는 암시는 그 당시 전쟁터의 그 주변에 사막이 있었다는 증거의 기록 입니다. 사막 지역 외에 낙타의
효용성은 전무 합니다. 그 전쟁 와중에 과시욕으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낙타를 데려올 그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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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연구에 찬사를 보냅니다. 위의 "馬拿莫大巴"는 직방외기에 소개된 <만국전도>에는 "莫訥木彼亞"로 나오며, 이곳은 남아프리카 남서부에 있으며, 지금의 앙골라 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공을 아우르는 지역입니다. 그 공통 소리는 Monomotapa 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소리로 보면 나미비아가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다.
소말리아가 섬라라 발음되는 것 같습니다
기록중에 '조선과의 거리는 15만여 리나 됩니다' 15만리면 6만 km입니다.
지구 한바퀴보다 더 먼 거리인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