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4명 배우자·자녀 전화번호 깜빡,
외우고 다니는 번호 '5개 미만'이 41.6%
"휴대폰 분실하면 생활 안돼" 85%, 똑똑한 바보 '스마트포누스' 확산
"책 읽기, 글 쓰기로 뇌 자극 줘야"
 
대기업 부장인 정선욱(52·서울 여의도동)씨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아침엔 깨자마자 밤사이 발생한 뉴스나 e메일을 체크하고, 출근하면 수시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모바일 정보를 이용하느라 만지작거린다. 통화시간의 몇 곱절이나 된다. 한데 정작 아내와 아이들 휴대전화 번호는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늘 단축번호만 눌러 통화한 때문이다. 간단한 덧셈·뺄셈도 헷갈려 스마트폰 계산기를 두드린다. 정씨는 "수백 명의 전화번호는 물론 은행 계좌, 인터넷 ID와 비밀번호, 업무·약속 일정 등이 모두 담긴 스마트폰은 나의 제2의 뇌"라며 "스마트폰 의존이 갈수록 심해져 잠잘 때도 머리맡에 두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손 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이 국민의 기억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보니 애써 머리를 쓰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깜빡깜빡하는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가 확산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보다 오히려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호모 스마트포누스(Homo smartphonus, 똑똑한 바보)’ 현상이다.
이는 중앙SUNDAY가 지난달 20~21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마트폰 의존도' 조사에서 나타났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14.3%는 배우자나 애인, 22.5%는 자녀, 46.9%는 가장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가장 왕성한 20대의 배우자·애인 번호 망각률(21.5%)은 60대 이상(22.7%)과 비슷했다. 외우는 전화번호는 평균 7개였다. 4개 이하는 41.6%, 5~9개는 29.4%였다.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기억력은 의지와 필요성, 감정과 관련 있는데 스마트폰이 그런 요소를 앗아가고 있다"며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책 읽기나 글쓰기처럼 뇌에 자극을 주는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57분이었고, 5시간 이상도 21.3%나 됐다. 종이신문을 읽는 시간(하루 평균 9.5분, 2014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의 18.6배다. 스마트폰을 분실하면 일상생활이 불편해(응답자의 85.3%) 절반은 분실 하루 안에 장만하겠다고 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83%(4200만대)로 세계 4위인 우리나라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