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그네를 사랑하라
본문 레위기 19:33-34
구약 백성들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일을 인간의 기본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도 중동 지역의 유목민들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나그네를 돌보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실천되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선진국의 반열에 서 있는 우리나라에 배회하는 나그네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그네에 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여성들입니다. 나그네를 돌보라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나그네를 돌봄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본문 레19:33-34절에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때를 기억하여 가나안 땅에 머무는 나그네들을 사랑해 주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도 자기 같이 사랑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되는 명령입니다. 우리 시대의 나그네인 이주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그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우리나라에 왔는데 차별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민족도 과거 일본으로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가 고통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나그네의 서러움을 겪던 때가 있었습니다. 독일 광부, 간호사로 일하며 천대받던 우리 선배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픈 경험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땅에 거류하는 외국인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넉넉한 나라가 되었다고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임금을 떼먹고 부당하게 대우합니다. 이주 여성들을 학대하고 비인격적으로 함부로 대합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달리 나그네를 따뜻하게 영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주 여성을 돌보아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정착을 잘해야 합니다. 이주 여성들은 우리나라 남성들과 결혼하였으니 우리나라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들이 차별당하면 사회적인 통합이 어려워집니다. 차별 가운데 자라난 2세들이 성장하면 더욱 큰 문제가 생깁니다. 다문화가정의 아동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고 청년의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이 차별받은 기억이 있거나 차별을 받을 때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결코 편안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여성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귀한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종, 언어, 학력, 신분에 의해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은 존귀한 자로 여겨야 합니다.
다문화가정이 행복해야 우리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져야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교회가 이 일에 중재적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외국인들과 이주 여성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변호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주 여성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구성될 때 평안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적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250만 명의 외국인들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며 동시에 선교의 대상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그들을 보살펴 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때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되었을 때는 유능한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출신 선교사는 베트남어, 중국어, 필리핀어, 우즈벡어, 몽골어, 아랍어를 구사할 수 없지만, 이주 여성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어와 그들의 모국어를 잘합니다. 이들을 훈련하여 그들의 모국에 파송하면 얼마나 효율적인 선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선교사 훈련하여 보내려면 언어도 제대로 안 되고, 문화적 갈등을 겪어야 합니다. 경제적인 비용도 적지 않게 듭니다. 이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줄 때 그들은 교회가 전한 구원의 복음을 기쁘게 수납할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엄청난 선교적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주 여성은 우리가 보살펴 줄 가까운 이웃이며, 한국교회에 큰 축복이 되는 선교적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결과를 위해서 돌보는 것은 아니지만, 덤으로 주어지는 좋은 결실이 주어지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글로벌한 세상을 만드는 디딤돌이 됩니다
이제는 지구가 한동네처럼 되었습니다. 아침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동경, 북경, 마닐라, 홍콩 등지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국제적인 교류가 빈번한 시대에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음을 대단한 경쟁력입니다. 이주 여성들과 2세들은 두 개 언어를 기본으로 합니다. 동남아시아는 우리나라 주요 무역 대상 국가들이고, 빈번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이중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들이 우리나라에 있음은 국가적인 유익이며, 축복입니다.
이제 우리 동네와 이웃에 이주 여성들이 있음을 축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들의 자녀들과 우리 자녀들이 친구가 되면 언어를 배우게 될 것이고, 그 나라에 대한 친밀감이 있어서 이웃 나라를 친구의 나라로 삼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의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교류하며 열린 사고를 갖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인정해주고 이해를 넓혀가는 일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이주 여성들이 있어서 여러 가지 문화와 언어 그리고 음식을 경험하며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주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주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를 더욱 풍성하게 자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글로벌 나라로 이끄는 견인차와 같은 고마운 자들입니다.
교회는 이주 여성의 친정집이어야 합니다
몇 해 전 우리 교회에서 다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일이 있습니다. NGO 국경 없는 마을과 무지개다문화가족이 컨소시엄으로 공모한 사업입니다. 전남에서 다섯 군데를 선정하였는데, 그 한 곳이 우리 교회입니다.
이주 여성들을 돕고 싶어도 그들과 접촉하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감사하게도 다문화 프로그램은 공신력이 있는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참여하는 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다문화가정과 접촉을 고심하던 나에겐 굴러온 떡과 같았습니다. 동사무소의 협조를 구하여 두 명의 이주 여성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주 여성이 우리 교회를 플랫폼으로 삼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했습니다. 자기 나라의 문화, 음식, 의상, 생활 회화, 노래, 이주 여성 초청 잔치 등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주 여성들이 증가일로에 있는 때에 우리 교회가 선행적으로 이 일을 진행할 수 있음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주 여성들을 위해 교회 재정을 대서라도 보살펴 주어야 하는데, 이미 준비된 일을 진행하는 수고만 하면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바라는 것은 우리 교회가 우리 지역의 사는 이주 여성들의 모임의 장소가 되고, 친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가지 실화를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해에 스리랑카 정부에서 젊은 코끼리 한 쌍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희귀동물 이구아나, 황금원숭이 등 40여 종 153마리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사연은 한국의 김해성 목사님께서 외국인 노동자를 돌보아 주는 일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1996년 경기도 광주에서 길거리에 웅크리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스리랑카의 노동자였는데, 이들을 집으로 데려다가 돌봐주고 직장을 알선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을 돌봐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자 한 사람이 자기 작은아버지가 스리랑카의 야당 국회의원인데, 한국에 초청해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야당 국회의원을 초청하여 교분을 쌓았는데 얼마 후 쓰나미 사건으로 스리랑카에 의료봉사단을 보냈고 430만 달러 상당의 약품과 생필품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야당의원이 국무총리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마힌다 라자팍스 대통령입니다.
나그네를 돌보아 주었더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선물을 내려주셨습니다. 한국과 스리랑카는 친한 친구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나그네를 대접함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지극히 작은 자 곧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음이 예수님께 하지 않음이라고 했습니다.
바라기는 교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고, 이주 여성들의 친정집과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NGO보다 더 나아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
우리 교회가 나그네를 대접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효율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이주 여성들의 나라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도 참 소중한 일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주고 우리 음식을 만드는 것도 전수해주면 좋을 것입니다. 나만 잘사는 것으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나도 잘 살아야 하지만 남을 잘 살게 해주는 것이면 더욱 빛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주변에 사는 이주 여성을 돕기 위한 선한 뜻을 품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을 섬기는 거룩한 일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