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1. '성모신심'과 '성체신심'을 두 기둥으로 107년간 '신앙의 못자리'가 돼온 청주교구 감곡성당.
고색창연한 성당에서 매일미사를 보고 성당 문을 나서는
할머니 신자들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2. 성당 오른쪽 쪽문을 나서면, 감곡성당에서만 51년간 사목했던
'사랑의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3. 감곡성당 오른쪽에 자리한 성모자상에서 한 순례자 할머니가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있다.
4. 감곡본당 신종섭 주임신부가 직접 기타를 치며 진행하는 음악 피정 프로그램.
'매괴 성모 순례지' 개발을 위해 시작한 감곡본당의 1일 피정에는 올 상반기 중에만
6000여명이 참여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5. 매산 성모광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한 '묵주기도 15현의'.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하였습니다."
좁디 좁은 골목길을 돌아 매산 기슭 청주교구 감곡성당으로 오르다 보니, 언제 세웠는지 모를 팻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만큼 작은 표지판…. 하지만 계속 그 내용을 새겨보니 초대 주임 임 가밀로 신부가 신자들에게 자주 건넸다는 한마디 말이 깊은 우물처럼 아련한 여운을 남겼다.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서울에서 이천을 지나 불과 한시간 남짓. 청미천을 경계로 경기도 장호원과 이웃하고 있는 '충북 장호원' 감곡에 도착한 것은 지역 특산 미백 복숭아가 막 익어가는 무렵이었다. 그 달콤한 복숭아 향기를 좇다보니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357의2, 감곡성당에 이르렀다.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감곡성당은 그날도 그렇게 '고향집처럼' 편안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시잘레(chizalle)신부가 설계,1928년 공사에 들어가 3년만에 완공한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은 107년간 충북은 물론 경기 남동부 일원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온 믿음의 고향답게 신앙의 정취가 물씬 배어났다. 붉은 벽돌에 낀 이끼 하나에도, 성당 구내 성모상에도, 느티나무 은행나무 하나 하나에도 정감이 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36.5m의 중앙종탑에 8각 첨탑 또한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포근하게 다가섰고 금세라도 종소리가 퍼질듯 했다. 성당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엔 할머니 한 분이 '예쁜' 손녀딸을 안고 한가롭게 산책을 즐겼고, 성당 발치엔 감곡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성당에 들어서니 스물대여섯명의 할머니 신자들이 참례한 가운데 신종섭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순례온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창 공지 중이었다.
"감곡매괴성모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곳입니다. 또한 성모신심과 성체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가 된 곳이며, 150여명의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입니다…."
신 신부의 말을 차근차근 새기며 성전을 둘러보았다. 제대 정면에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7발의 총탄을 맞았다는 본당 주보 묵주기도 성모상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루르드성지에서 제작돼 1930년 성전 봉헌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된 성모상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 총탄 흔적을 두고 성모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7가지 고통인 '성모칠고(聖母七苦)'와 연관짓기도 하고 전쟁을 겪은 우리 겨레의 아픔에 동참하고자 한 성모의 마음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그런 해석을 넘어서서 70년 넘게 '전구하심'을 통해 사랑을 넘치도록 베풀어 온 성모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편안했고 위로를 주었다. 성당 내부 천장 원형 돔(Dome)이나 제대 양쪽의 4개 소제대, 기둥으로 구분되어 세개의 회랑으로 나뉘어진 신자석, 라틴 십자형 평면 구성은 국내 다른 옛 성당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성체신심'과 '성모신심'을 두 기둥으로 삼아 성장해온 복음화율 28.3%(2002년말 현재 주민수 9967명에 신자 2823명)의 감곡성당은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다. 명동성당과 비교하자면 3분의1쯤 될까 싶을 정도. 이처럼 조그마한 성당에 세워진 공동체가 어떻게 이처럼 큰 '사도행전'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에 대해 신 신부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감곡매괴성당은 한마디로 임 가밀로 신부를 통한 성모님 사랑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선교사 체취 고이 간직>
이윽고 성당을 나서 오른쪽 쪽문을 나서자 그 '사랑의 선교사' 임 가밀로(Bouillon Camill, 한국명 임가미) 신부의 동상이 나타났다. 감곡본당에서만 51년간 사목하다 1945년 10월25일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선교사는 여전히 감곡 공동체의 주춧돌로 남아 있는 듯했다. 둥근 차양의 선교사용 모자를 오른손에 들고 긴 수단을 걸친 채 매산기슭 성모광장의 로사리오 성모를 응시하는 듯한 임 가밀로 신부의 모습은 감곡 공동체에 드리워진 임 신부의 그림자를 그만큼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징표들은 1934년 건립된 옛 사제관을 개축, 지난해 10월 개관한 '유물관'에 풍부하게 담겨 있다. 1914년 국내 첫 성체거동 때부터 사용했던 성광과 금색 제의, 영대, 구두, 그리고 정약종(아우구스티노) 순교자가 지은 룗주교요지(主敎要旨)룘 1906년판 등 문서류, 본당사를 개괄한 각종 사진 등 50여점은 100여년간 신앙의 발자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더 대단한 것은 항온·항습시설이 완벽한 수장고에 수장된 나머지 250여점의 유물이었다.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제구와 서적, 심지어는 은행놀이판과 카드까지 각종 유물이 완벽하게 정리돼 유물번호까지 매겨져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돼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유물관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락방 성체조배실. 해거름 무렵의 얇은 햇살이 천장 창문을 통해 야트막하게 비겨드는 성체조배실에 들어서 한점 소음도 스미지 않는 다락방에서 무릎을 꿇고 빛나는 성광 속 성체를 바라보며 조배를 하노라니,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에 금세 빠져버릴 것만 같다. 역시 국내에서 첫 성체거동을 거행한 성당의 성체조배실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신앙의 현장이다.
"성인 신부가 되게 해주세요."
"(요한 사도가 성모를 모신 것처럼) 저도 평생 성모님을 모시고 사제로 살게 해주세요"(요한 19, 26-27 참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가 어려서 첫영성체 때 바친 두가지 기도는 감곡본당의 성모신심을 이해하는 열쇠다. 1869년 성모발현지 루르드에서 불과 20㎞ 밖에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 남서부 타르브교구 비에유 아되르에서 태어난 임 신부는 정기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루르드를 방문, 자신을 루르드 성모께 봉헌하며 성장했다. 1893년 사제 수품 후 그해 9월 조선에 입국한 임 신부의 성모신심은 감곡에서 기도의 응답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매산 중턱의 신사(神社) 건립 사건. 일본인들이 매산 중턱에 신사를 지으려고 한 것은 1943년. 이에 임 신부는 성당 뒷쪽 매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 두고 성모께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신다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공사를 진행하려 하면 여러 가지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큰 짐승이 출현하는 바람에 번번히 공사가 중단됐으며 결국 2년 뒤 해방이 되면서 공사는 완전히 중단됐다고 전해진다.
그 뒤 1955년 8월15일 매산 중턱은 성모광장으로 봉헌됐고, 이후 성모광장은 감곡본당이 1914년부터 해마다 거행해온 성체거동 행사의 장소로 자리잡았다. 올 10월에는 제85차 성체거동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따라서 감곡성당을 찾는다면, 성모광장을 중심으로 한 매산은 잊지않고 꼭 들려봐야 할 '기도의 산'이 됐다. 성당 교육관을 지나 묵주기도 15현의(玄義), 성모 광장, 십자가의 길 14처를 따라 매산 정상을 거쳐 성당으로 돌아오는 기도 행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도의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평일이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고 고요하면서도 평화스러운 매산 기슭에서 호젓하게 1시간 안팎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를 바칠 수 있는 매력적 기도처가 되고 있다.
매산 초입에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묵주기도 15현의'는 특히 묵주기도 15단을 조각으로 표현해 놓은 기도처로, 성모신심의 진수를 보여준다. "성모신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생활의 중심에 두고 성모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를 생활의 전부로 살아가는 데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성모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감곡 공동체는 올해 본당 설정 107주년을 맞아 임 가밀로 신부를 통해 성모의 사랑이 살아 숨쉬는 성당 일대를 '매괴 성모 순례지'로 개발하고 있다. 1896년 여주 부엉골에서 사목할 당시 임 가밀로 신부는 이곳 매산 언덕에 있는 명성황후 육촌오빠 민응식의 109칸짜리 저택을 보고 "성모님, 저 대궐같은 집을 주신다면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고 주보는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이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의 결실이 '매괴 성모 순례지'의 개발로 마무리되고 있는 셈이다.
매괴 성모 순례지 개발은 특히 '어머니의 품'이라는 주제 속에서 프로그램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도와 성체성사 적극 참여, 고해성사, 성체조배, 희생 및 금식 권면 등 성모께서 루르드나 파티마, 메주고리예 등지에서 발현해 남기신 다섯 가지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매달 첫 토요일 8시마다 진행되는 '기도와 찬미의 밤'은 매괴성모순례지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또 평일이나 주말 1일 피정 희망자들을 위해 미사와 감곡 매괴성당 소개, 매괴유물관 관람, 성체조배, 산상 십자가의 길 기도, 신종섭 주임신부가 직접 진행하는 음악피정 등으로 이뤄진 1일피정을 진행하고 있다.
감곡 매괴성당은 또 순례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30실 정도 소규모 피정의 집 건립과 노년에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노인복지관·어르신의 집(주간 보호 프로그램)·양로원 등 노인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며, 죽어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이 될 수 있도록 성당에서 오른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본당 묘역에 납골공원과 장례식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달말께 충북 음성군의 허가를 받아 본당 묘역 1만6000여평 중 1차로 3600여평 부지에 납골공원과 납골당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본당은 2004년 공사를 시작해 2005년부터 유해를 봉안키로 하고 최근 예약 접수에 들어갔다.
*** 감곡성당 가는 길 ***
중부고속도로 일죽IC를 거쳐 17km 떨어진 장호원을 거쳐 감곡면으로 들어가거나, 영동고속도로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빠져 장호원IC로 나와 약 3km를 가면 감곡면 소재지가 나온다. 감곡면에 들어서서 매괴여중·매괴고 골목길을 지나 성당으로 들어가거나 장호원에서 청미천 다리를 건너자마자 죄회전, 들녘 제방을 따라가면 성당 표지판이 나온다.
문의 : 043-881-2808, 감곡본당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