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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강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충남 천안시 병천땅에서 청주시 흥덕구로 흐르는 병천천 57km 강길이다.
병천천은 금북 정맥길의 부소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숭고한 역사의 땅 아우내 장터가 있는 병천을 지나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쌍청리에서 미호천에 합류하여 비단 금강으로 흐르게 되는 강이다.
병천(竝川:아우르는 강)천은 단순하게 아래로 흐르는 강이 아닌 아우르는 내(강)라는 뜻의 강이며,
나라를 다시 찾겠노라! 태극기 손에 들고 만세운동을 지켜본 역사의 강이기도 하다.
마침 클럽에서 진행하는 독립종주를 하는 날이라 회원님들의 얼굴도 볼겸 병천땅으로 가보기로 한다.
독립종주 코스:유관순 열사 생가터에서 만뢰산-성거산-흑성산 그리고 독립 기념관까지 50km를 걷는길
독립 운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면 근현대사를 공부 해야한다.
멀리 정읍의 동진강에 자리하는곳에 고부 군수였던 조병갑이 백성들의 힘으로 만석보(물을 막아 저수지를 만든것)를
만들고, 첫해에는 물세를 조금만 받기로 했지만 그해부터 물세를 터무니 없이 받게되자, 전봉준 아버지가 고부 군수인
조병갑을 만나 항의 하다가 몰매 맞아 죽게된다
이에 열받은 전봉준이 민중 봉기를 하게되니 동학농민 운동이다.
잠시 전봉준에 대해서 접고 "나는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것 같다
명성황후는 그렇게 좋은 국모가 아니며.그녀는 나랏돈 횡령과 매관매직,청일전쟁의 시초가 된 조선의 황후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매관매직을 하다보니,고부군수인 조병갑 같은 인간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세상을 만들어 준것도 그녀의 주연이며 역할이었다.
그동안 대원군이 비축한 국고를 일거(一擧)에 축내 버리니,전봉준의 동학 농민과 임오 군란(방산비리)이 명성황후가
최종 목표 였을지도 모를일
명성황후 하는짓이 워낙 미워 우리 백성들에겐 맞아 죽지 않았지만 결국 일본인 손에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1895년)
여흥 민씨(閔氏) 민영익(민씨 세도가의 중추적 인물)이 어찌하다 부상을 당하자 알렌이라는 서양인에게 민영익을
치료 해주자 그 댓가로 명성황후는 10만냥(현재 돈으로 약 70억)을 건낸다.
(조선 시대에 1냥의 가치는 지금의 7만원이라 할 수 있으며, 노비 한명 가격이 최소 5냥에서 최대 20냥 이었음)
민영익 또한 개인이 알렌에게 준돈이 약 70만냥 (490억) 합 560억이란 돈이 치료비로 쓰여졌다
나랏돈을 물쓰듯 써버린 황후 그당신 우리나라 1년 국가 예산 총 480만냥이었다고 하니,이렇듯 민비 일가 1명이
국가예산을 거의 5분의 1을 탕진했다고 볼 수 있겠다.
고기도 먹어 본놈이 먹고 뇌물도 먹어 본놈이 먹는다고 했던가! 쓴많큼 받아 내려니 고부군수 조병갑 같은 인간들이
전국에서 백성 등에 빨대를 꽂아 빨고 있었다.
민비의 악행이 하늘을 찌르니 매관매직으로 조병갑 같은 인간들을 지방 수령으로 임명하고
백성들을 마른 오징어 쥐어 짜서 물나게 하듯하여, 받은 재물은 모두 민비 뱃속으로 들어가니 동학 농민 운동이라할 수 있고
군인들에게 월급으로 줄 돈은 모두 민비 일가에서 해 쳐 먹었기에 월급을 무려 13개월동안 못주게 된다.
그나마 밀린 월급이라며 내민것이 쌀속에 겨와 모래를 넣어 이거라도 받으려면 받고 말라면 말고... 안 받으면 더좋고
안 그래도 힘든데 돌아버린 군인들이 일어나 민비를 죽이려고 한다 그게 임오 군란이다.
다시 전봉준으로 와서...
1894년 11월 공주땅 우금치에서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이 한판 붙지만 동학 농민군 참패하여 모두 해산하게 되며
전봉준은 순창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그해 12월 그믐날밤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다음해 4월 말 교수형 집행된다.같은 해 민비가 곤녕전에서 일본인 손에 살해 당했으니 하늘 나라에서 전봉준과 민비가
만나 무슨말을 주고 받았을지 "천년 만년 살것 같더니 왜 이리도 일찍 왔소"이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소산에서
명성황후가 열받은 동학 농민 운동을 진압하려 했지만 명성황후 일가가 그동안 모두 다 해쳐 먹었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월급을 준적이 없기에 제대로 된 군인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짓거리가 우리 백성을 죽이라며 청나라 군대를 불러 오게 된다.
삼국시대 642년(선덕여왕) 신라가 대야성 전투에서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이죽자 당나라에 17년간 외교를 펼치던것과
다를바 없는 청나라 끌여 들이기
청나라가 들어오니 이때다 싶어 "우리도 조선으로 가므니다"일본군이 조선땅에 상륙하게 된다.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박살나고, 명성황후는 러시아에 의존 하다가 1895년에 곤녕전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게된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이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쨋든 명성황후는 외국 군대를 불러 들여 국민을 학살하고, 한반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고, 그것도 모라자 불곰 나라
러시아 군대를 불러 들이는 과정에서 살해된다.
오래전 신라의 선덕여왕이 당나라를 불러 들였듯...조선말 국운은 이미 기울어 있고 명성황후가 청나라와 러시아 군대를
불러 들이며 시답잖은 외교란것을 하게된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나는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 민비에 붙여진 영화제목이다.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을 일본의 통치를 받는 부속 국가라며 을사 보호 조약을 발표하며
그로 부터 5년뒤 1910년 일본은 한일 합병 조약을 발표를 하니 이때로 부터 약 35년간 암울했던 식민지 생할의
기나긴 시간이 된다.
1919년 1월 고종 황제께서 갑자기 서거를 하시니 이때 나이가 향년 67세다
조선이 자주 독립 국가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 였으니, 황제의 죽음을 자연사냐 아니면 일본인들에 의해 독살이냐
지금까지 분명한 사인을 알길 없지만 일본인들에 의한 독살설이 끊이지 않는다.
황제의 장례식을 시작으로 3월1일 탑골공원에서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이어지니 고종 황제의 급작스런 서거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것이다.
생각해 보면 언제 독립이 된다는 기약도 없이 가족을 등지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독립운동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것 같다. 정확히 언제쯤 독립이 된다면 모를까!
....
병천(竝川)천은 아름다운 금강의 제1지류인 미호천을 이루는 강이며
아우를 병 (立立)설립자가 두개 들어가며, 아우내는 병천과 광기천이 만나서 아우른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금강은 전북 장수군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장수-무주-대청호-부여-군산으로 흐르며
굽이 굽이 돌아가는 사행천이 멋스러운 강이다.
금강이 서해로 흐르는 동안 백두대간 민주지산에서 발원하는 초강천,대덕산에서 발원하는 무주 남대천,한남-금북정맥길에
서 발원하는 미호천 같은 제1지류들을 담아 가지만,무주 남대천이나 초강천 물은 다른강 보다 더 깨끗함을 자랑하는 물이다
지나온 경로
강길 44개 누적거리 5,201km
자정무렵 60여명의 회원님들은 렌턴 불빛을 의지한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산이 지부장님과 함께 소청님 댁으로 가서
이야기 나누다 새벽녁에 잠시 잠을 자게된다.
5시무렵 일어나 소청님 댁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산이 지부장님 자가용으로 부수문이 고개에 도착해
금북정맥길 부소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 길도 정맥 두번, 그리고 오래전 독립종주때 지났으니 3번 다닌길인데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부소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기다려 밤새 달려오신 회원분들과 잠시 만나 인사 드리고
병천천 발원지에서 낙엽쌓인 길로 내려가니 또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 든다.
혹시나 클럽 분들이 지날까 정맥 마루금을 쳐다 보지만 조용 하기만 하고
지나온길
정맥 마루금에서 50여미터 내려오니 조그만 돌 아래로 물이 흘러 나온다.
물은 이렇게 찾았으니 마음 편하게 내려가면 될듯
발원지 바로 아래는 묏선생들이 목욕한곳이고
병천 좌측 마루금(만뢰지맥길)
내려온곳
겨울에는 춥지만 강길을 지나는데 좋고
여름에는 밖에서 잠자기는 좋지만 이런길은 얼반 죽는다.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묵은 텃밭
지금은 농사를 짓지않은 땅이니 묏선생들의 놀이터라 할 수 있겠다.
발원지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만나는 도원정사
아침 식사 준비를 하시는지 굴둑에 연기는 모락 모락 나고
느티나무 아래 댕댕이 몇마리만 집 지키느라 연신 짖어 대지만
누구하나 나와보지 않는다.
도원정사
지나갑니다...???
아무런 기척도 없고
마른 풀섶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아있고
천안시 동남구 북면 대평마을과 멀리 싸리재
주민과 함께하는 도랑 살리기
대평리 주민분들 덕분에 잠시지만 쓰레기 없이 깨끗하게 흐르는 물을 구경 할 수 있었기에
대평리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대평리 마을
대평리 마을 입구에 잘 정돈된 쓰레기 집하장
도랑으로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물은 당근 깨끗하고
대평이 마을 앞 도랑 물
대평 1리 마을앞을 지나며 소 키우는 축사가 길 양옆으로 자리하니
배 고픈날 구수한 소똥 향이 식욕을 자극하게 된다.
대평1리의 신광 맘맘스 축사단지
대평 1리
위 동네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했는데
아랫동네에서는 그걸 모르는듯
대평2리 마을 도랑 모습
북면 운용 마을
부소산 남쪽 병천천 발원지와 능선하나 차이로 흘러 내려온 운용천 물이 병천에 합류되는 곳이다.
이곳의 물은 아주 깨끗하게 흘러 내려와 병천에 합류 되면서 그나마 물이 조금 깨끗해진다.
멀리 성거산 동쪽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병천에 합류되는 지점
잠시 논으로 들어가서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진행하게된다.
밤나무 아래로 진행
북면 전곡리 전곡교 다리아래
제법 이름있을 것 같은 바위가 보인다.
물은 깨끗하고 물속 풍경은 점차 탁해지는 모습
내려온길
강따라 가는 길에 더이상 길이 안보여 잠시 도로따라
북면 양곡리
바랑산에서 흘러온 물이 병천에 합류되는 지점'
골골에서 흘러온 물이 모두 하나가 되지만
이녀석은 지저분하고 저녀석을 더럽고
또다른 녀석은 축사 오염물을 온몸에 덮어쓰고 흘러 오니
깨끗한 녀석은 어디로 가야하나
아래로 흐르는 동안 그나마 많이 정화가 되어
물은 물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물 한번 건너주고
천안 북면 계곡 야영장 인근
여름에 이곳에서 물놀이 하는듯 한데
어지간하면 가지 마시져~~~
이제부터 병천이 강과함께 아우내로 이어가게 된다.
강따라 난 아스길이 조화를 이루는 곳
어느분이 기획한건지 모르겠지만 병천따라 가는길에
일부 구간은 이렇게 갈대를 모두 제거해서 강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정비를 해 두었고
일부 구간은 갈대를 그대로 두어 물이 스스로 정화 되도록 해두었다.
정비된 강으로 모래가 보이고 멀리부터 갈대가 보인다.
이쯤에서 부소문이 고개에서 클럽분들 지원해 드리고 오시는 산이 지부장님을 만나 인사 나누고
산이지부장님은 독립 기념관으로 부릉 부릉~~
갈대를 모두 제거해서 그런지 물속으로는 모래가 많은 강처럼 보인다.
이곳은 갈대 구역
다시 정비한 구간
물이 한박자 쉬어가는 돌망태 구간에는 온통 더러운 찌거기가 달라 붙어있어
물이 깨끗하다 해야 할지 더럽다고 해야할지
강가를 지나다가 우연히 강을 본다면 아주 깨끗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물속 풍경은 이렇게 찌거기가 내려 앉아있는 강이다.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며
우리나라 강들은 대부분 이렇다.
깨끗해 보이나요
그렇게 보인다면
멀리 흑성산-태조산-성거산에서 흘러온 신방천이 병천에 합류되는 지점
뿌연 미세 먼지가 가득하니
강물속이나 하늘 아래 뿌연 세상이나 다를바 없어 보인다.
멀리 매봉산이듯
조금만 더가면 임란 3대 대첩의 주인공인 김시민 장군(1차 진주대첩 3천대 2만)의 생가터가 나온다.
찾아 봐야지 하면서 무작정 지나쳐 오다 보니...
다시 돌아 가기에 시간이 그렇고
다음강 영천강 할때 진주로 가니 그곳에서 김시민 장군을 뵙기로 하고
아쉽지만 ...뒤 돌아서서 잠시 고개만 숙여 인사 드린다.
병천과 매봉산이 보이는걸 보니 점심때가 다 되어 가는것 같다.
이곳까지 대략 25KM를 걸은듯
아우내 장터 기원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 운동
1919년 3월 31일 매봉산 봉화를 시작으로 4월1일 이곳 아우내 장터에서 3천명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순국하고 3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은 비폭력 평화주의를 원칙으로 최후의 일인이 최후의 시간까지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한 독립운동이다.
잠시서서 유관순 애국 시(詩) 낭송을 들어 볼까 하였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유관순 열사 표준 영정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니 생략
병천 읍내
잠시 강길에서 벗어나 유관순 열사 생가지로 가보기로 하니
기념일이라 차량과 나들이 나오신분들로 병천읍내가 마비 될 지경이다.
이런 막힘은 즐겁기만 하니 구경삼아 천천히 도로따라 이동한다.
아우내 장터에서 약 2km정도 떨어진 유관순 열사의 생가에 도착
잠깐 구경하다가 다시 왔던길로
유관순 열사 기념관에서
병천천과 광기천이 만나는곳에서 본 병천읍내
두 물이 만나서 빠져 나가는곳에 자리하니 나쁜 기운은 모두 다 물과 함께 흘러갈듯한 동네로 보인다.
병천읍내와 유관순 열사 생가터를 돌아 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발걸음이 급해진다.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부처님 코가 깨어져 시맨트로 땜질 처방을 해 두었다.
비슷한 재질로 깨끗하게 마무리 했으면 좋으련만
천안 홍대용 과학관을 지나며
홍대용 생가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1783) 이곳에서 출생하여 생활하던곳으로 남양 홍씨 집성촌이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숙부를 수행하여 고증학과 서양문물을 접하여 실학과 과학사상에 관심을 갖게되며
교유관계였던 박지원,이덕무,박제가등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천문에 관심을 기울여 지구의 자전설을 주장한 근대 과학의 선구자이다.
홍대용 생가지 터
주줏돌만 남아 있다.
잠시 강길을 벗어나 조선 단종때 수양대군의 장자방으로 계유정란을 주도해서 일등 공신이된 한명회 무덤으로 가본다.
한명회 신도비
조선초기 상당 부원군 한명회의 신보비
신도비는 조선시대 2품 이상의 관직을 한사람에게 한하여 무덤 입구에 세운비다.
신도비 위쪽에는 용인지 이무기인지
1등공신 네번이나 받았고 상당부원군에 봉해졌으니 용은 못되고 이무기 정도로 봐야 할듯하다.
날카로운 발톱이 세개 보이고 여의주가 없으나 구름속인지 물속인지 그곳에서 눈을 크게뜨고 다닌는 형상이다.
한명회 무덤
살아생전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사후 17년후 갑자사화때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 된다.
그당시 하늘을 나르는 새도 떨구던 한명회.
한명회 무덤은 풍수지리로 뭔가 부족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건지 모르겠지만
연산의 생모 윤씨의 패비에 동조하고 사약을 내리게 했다는 이유로 의금부가 이를 받아들여 청주에 있던 한명회 관을
쪼개고 머리를 벤다.
앞에는 칠삭동이 한명회 무덤 육중한 돌로 장방형으로 쌓아 둘러 놓았다.
뒤에는 그의 부인 무덤
한명회 부인 민씨 묘
1품 이상의 벼슬을 한사람만 세울 수 있는 석등과 무인석이 한명회를 지키느라 서 있다
하지만,한명회의 무덤은 경부고속도로가 자리하는 바로 옆에 있어 늘 소음에 시달린다
사후에 목이 잘리고 지금은 시끄러운곳에 누워 있으니 잠시지만 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한때는 스스로 용이 될 팔자였으나 결국 물속에서 1천년을 살아야 용이 된다는 이무기 처럼
지금은 무기하나 없이 무덤을 지키고 서있는 호위병들의 보호속에 누워있다.
청주한씨 한명회 재실
병천천을 지나며 꼭 찾아보고 싶었던 김시민 장군의 생가지를 스치듯 지나친게 마음에 걸리지만
많이 배울 수 있어 참좋은길이된다.
지나온 경부 고속도로와 멀리 한명회 묘가 보이고
3,1절 연휴 기간이라 고속도로는 거북이 운행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거북이 운행하는 고속도로의 차들과 잠시 달리기 하며
앞은 취암산과 흑성산에서 흘러온 승천천이 병천에 합류되는 지점
병천 하수 처리장을 지나고
하수 처리장에서 나오는 물은 짙은 간장색이다.
이렇게 질퍽이는 논바닥길로
천안땅을 지나 청주땅으로 들어와
성제 세월교와 경부 고속도로 한동안 경부 고속도로와 함께 이어지는 강길
오늘은 차보다 더빠르게 지나온길이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탁하며 물속 풍경은 찌거기만 가득 달라 붙어있어
물속 구경하기도 겁난다.
청주 휴게소 서울방향에 들러 물몇병 사서 나온다.
고속도로 옆으로
청주시 흥덕구 옥산리
고속도로 옆으로
젖소 키우는 축사
이곳에서 고개 넘어 옥산면 금계리로 진행
금계리에도 젖소 키우는 축사를 지나게 된다.
금계리 마을
먼길 돌아가기 싫어 물한번 건너주고
이른 봄이지만 물은 시원하다.
이런곳에서 물놀이 하는 분들 계시나 모르겠네
피부병 오를듯
옥산면 환희마을로 가는 환희교를 건너
굽이 돌아가는 길은 가급적 수중보나 물을 건너서 진행 하기로 한다.
신촌 터널을 지나며 본 병천천
이제 조금만 더가면 병천이 미호에 안기는곳이 나올테고
청주 박훈 신도비
조선 전기의 학자로써 홍문관 교리를 지내신 증영의 아들
중종때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으나 기묘사화때 화를 당하여 15년간 유배 생할을 하게 된다.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신촌리에서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쌍청교에서
해넘이가 시작 되려나
오송읍
택시회사에 전화를 해서 어느지점으로 20분뒤에 오라고 말씀 드리고
지난날 걸었던 미호천이 바로 앞이다.
미호천 발원지로는 백두대간 속리산 국립공원 정상에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길의 원 수계 발원지인 마이산(망이산)
남쪽 계곡(음성군 삼성면)과, 같은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의 충북 음성군 감우리 보현산에서 흘러오는 승주골-동음천-
초평천이 최장 발원지로 두 물 줄기는 초평댐 아래 초평면 화산리까지 각각 흘러와 만나게 된다.
화산리에서 미호천과 초평천이 만나면서 물의 세력은 커지며 조치원을 지나 금강품에 안기게 되는 92KM의 강이다.
아무도 없으니 인증은 내가 담아 보고
병천천 하루동안 재미나게 걸음 했는데 아싑지만
너도 이제 좀더 큰 물에서 편하게 흘러 흘러 금강에 도달 하기를
병천이 큰강을 만나면서 병천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없어지고 미호란 미름으로 흐르게 된다.
내가 없어지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곳
강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모든걸 다 담아 흐르지 못한다.
물속 찌거기는 그대로 두고 흐르며
물속의 물고기는 그곳에 살라며 두고 흐른다.
병천을 찾아서 역사를 느끼고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물속 풍경은 다른곳에 비해 더 나은것이 없다.
다음강은 금강 수계중 그나마 깨끗하기로 소문난 무주 남대천이며
무주 남대천은 절재된 아름다움을 간직한 강이기에 기대하셔도 좋을듯 하다.
첫댓글 설민석 강의보다 재밋었어요
강길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의 강들은 물속 풍경이 비슷합니다.
사람사는 동네가 다 그렇겠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건 그저 속담에 지나지 않음을 느낍니다.
물 아껴 쓰시구요 산행하다가 맑은물 보시면 10리를 못가서 더러워 지니 손이라도 한번 담궈
쓰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수능생각이ㅎㅎㅎ 국사 좀 잘했는데^^ 동학.임오.민비.흥선대원군...일케 들으니 색다르네요ㅎㅎㅎ 재밌어요^^♡ 고생하셨습니다^^♡
근현대사를 알려면 동학농민 부터 파고 들어야겠죠
조병갑과 민비 그리고 고종황제까지 글 감사드리구요
봄날 들꽃처럼 향기품은 나날 되십시요
처음 동네 물이 정말 깨끗하네요 주민들이 나름 의식이 있는분들같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보면 산악회 사람들 쓰레기 버리는것이나 다름이 없는것 같습니다
한명회가 4명의 임금을 모신걸루 기억합니다..
결국은 부관참시.. 죽어서도 죽은게 아닌게 인생사 인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우님 잘 계시죠
지난주에 덕유산인근으로 다녀왔고 이번주는 지리산 만복대 서쪽 계곡 서시천으로 가는데
그곳의 물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지리산 북쪽과 동쪽의 물은 모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데 드럽더군요
날잡아 대구 인근의 산이나 한번 갑시다.
@배병만 넵형님 잘다녀오십시요
다음강행기
기대됩니다
항상발걸음 응원합니다
의미가 있는 산행을 하셨군요.축하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어느 지역을 가면 항상 미리 찾아보고 외우게 되는데
걷다보면 자구만 잊어 버리게되네요
비오는 오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너무 재미난 역사공부였습니다^^~이렇게 점점 봄이 다가오네요^^
내일은 지리산쪽으로 갑니다.
구례 산수유꽃도 보고
좋은날 한번 봅시다.
어느 강이나 마찬가지인 듯, 윗물은 맑지만 내려갈 수록 지저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시골에서는 축사가 오염의 근원인 듯 싶습니다.
내 고향에도 위에서 소 키우는 바람에 개울이 똥물이 흐르면서 '가재', '게' 등을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지요.
수고하셨습니다.
방장님 강행기를 보면서 많은것을 배우는것 같습니다
역사공부 다시하는 느낌입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강길 걷는 방장님 참 대단합니다
아무쪼록 몸 잘 챙기시고요 강길 무탈하게 이어가세요
강행기라기 보다는 " 역사기행 "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가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것은
그당시 나라와 민족의 배신자들이 아직도 좀비로 남아
권력을 행사하며 올바른 교육을 방해하기 때문이라 들었습니다.
방장님은 불량한 동네 주민들과 낫들고 싸우시고...
독자들은 암울했던 우리 근현대사에 한숨만 나옵니다...
부수문이 고개에서 엉뚱한 지원장소 알켜줘서 감사합니다..ㅋㅋ
아우내 장터 산행 출발하며 뵙고 또 부소산에서도 뵙고 그게 다엿군요.
방장님 병천천 걸으며 주의 역사를 잘 설명 해주셔서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먼걸음 수고 많으셨습니다
방장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근헌대사를 명확하게 밝혀줄 인재는 모두 돌아가셨다고 보면 됩니다
무엇이 참인지를 아직도 모르는게 현실입니다.
아직도 막걸리 좋아하는 촌부지만 아파트 값은 우찌 막을는지 기대해봅니다
우찌되었건 건강 하시고 즐거운 걸음 바래봅미더
진주에서 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