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제로 숨가쁜 학교생활의 오아시스, 잦은 방학
한국은 지금 개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 연휴를 가졌을 시기다. 학기중에 비교적 긴 쉼이 이어지는 것은 한국에선 드문 일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잦다. 쉬지 않고 두 달 이상 학교를 다니는 법이 없기 때문. 한 학년을 마무리 짓는 여름방학은 6주, 겨울방학과 봄방학은 각각 2주, 그 외에도 3월과 10월에는 각각 1주씩 짧은 방학이 있다. 방학 이외에도 사이사이에 공휴일이 많은데 성금요일, 부활절, 성령강림절 등 대부분이 기독교 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잦은 방학과 공휴일은 교과 학습과 시험, 과제로 지쳐가는 학생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쉼을 준다.
방학, 공부와 ‘잠시만 안녕’
네덜란드의 여름방학은 그야말로 학생들이 완벽하게 공부에서 탈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역별로 여름방학을 시작하는 날짜가 다른데, 우리 가족이 사는 아인트호벤은 보통 7월 15일 이전에 방학을 시작한다. 6주 정도 쉬고 개학을 하는데, 중·고생들은 기말시험이 끝나면 사실상 방학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시험 일정이 끝나면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집에서 며칠 쉬다가, 기말시험 최종 성적을 확인하고 교과서를 학교에 반납하기 위해 방학 전에 하루만 등교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앞서 말했듯 네덜란드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기초 교과서를 배부하고 학기말 도로 거둬들인다. 고3, 즉 대입을 코앞에 둔 학생들이라도 예외는 없다. 방학식 전 교과서는 반납했고 선행 학습을 할 교재도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학교가 내주는 방학 과제 또한 없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네덜란드 학생들에겐 방학 동안 공부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우리 집 두 아이도 개학 일주일 전까지는 학교를 잊어버렸다고 할 만큼 여유를 즐긴다. 특히 여름방학은 길어서 할 수 있는 일들의 폭도 넓다. 유럽 대륙의 이점을 살려 가족이나 친구들과 독일, 프랑스 등 인근 나라로 캠핑이나 여행을 떠나는 일이 가장 흔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보거나,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기도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8월에는 네덜란드 거주민의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동네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이 돈다.
9월 고3이 되는 딸아이도 한국을 찾았다.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은 네덜란드에 남아 미뤄뒀던 책을 읽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고, 틈틈이 기타를 치고, 영화관에 가서 새로 나온 영화도 보면서 그야말로 여유로운 방학을 보내고 있다.
만나도 만나도 반가운(?) 방학
네덜란드에 갓 도착했을 때, 이 잦은 방학은 꽤 당혹스러웠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때 자녀와 여행을 떠나는데, 안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유럽살이에서 어린 아이 둘과 함께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했는데, 돌아서면 찾아오는 방학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급하게 여행 코스를 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지금은 익숙해졌는데, 오히려 중·고생이 된 두 아이가 학기중 짧은 장거리 여행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공부가 뒤처진 학생 또는 학년이 높은 학생일수록 짧은 방학을 이용해 학업을 보충하기도 한다. 방학 과제는 특별히 없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업 부담이 많아지고 시험 준비 등으로 바쁜 경우가 많기 때문. 잦은 방학 때 시험 공부를 미리 해두거나, 과제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다만, 그 어떤 학생도 학업에 매진하는 데 방학을 모두 쓰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일주일가량의 단기 방학 때 학습 보충에 매진하더라도 최소 2~3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시내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최신 개봉작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식. 휴식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휴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관심사다. 휴가를 가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기와 상관없이 휴가 경비로 상당한 금액을 지출한다. 가족 단위로 장기 휴가를 떠날 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기보다 한 곳에 머물며 여유 있게 책을 읽거나 캠핑장 또는 리조트에서 일주일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함께하며, 휴가 문화에 익숙한 중·고등 학생들 역시 한창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방학이 되면 자연스레 휴가를 즐기는 듯하다. 길고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지난 학년에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가물가물해져 있을 것이다. 개학 후 며칠은 잊은 것들을 다시 기억 해내느라 애를 먹지만, 충분히 쉬며 재충전한 학생들은 바쁜 일상에 다시 힘 있게 복귀한다.
지난해 가을방학, 드레스덴 여행 중 찍은 가족 사진
여름방학 중 아인트호벤 시내 중심가 풍경. 주민들이 휴가를 떠나 한산하다.
방학 중 여행을 떠나는 이들로 북적이는 네덜란드 스키폴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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